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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턴테이블.
ⓒ 이정근
복고풍을 타고 LP음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옛날이 그립고 옛것이 그리워서라기 보다도 현란한 영상 음악에 식상한 애호가들이 그림이 아닌 음악을 찾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음악이 있는데 그들은 그곳을 찾는다. 왜일까? 그곳에는 음악과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쌍방향 소통이 강점이라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살고 있는 그들이 아날로그 음악에 푹 빠져 있다면 뭔가 이상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들이 쌍방향 문화의 선구자였는지 모른다. 라디오에서 일방적으로 들려주던 음악에 목말라하던 그들이 음악다방에서 음악을 신청하면 즉석에서 들을 수 있는 길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 LP 폐인들의 아지트 '음악의 숲'.
ⓒ 이정근
가족들이 잠든 깊은 밤. 공부한답시고 책상에 앉아 심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갈증을 느낀 그들이 담배 연기 자욱한 음악다방 한 귀퉁이에서 메모지에 신청곡을 쓰고, 그 메모지가 레지의 손에 의해 뮤직 박스로 전달되어 자신이 신청한 음악이 톤 굵은 DJ의 짧은 멘트와 함께 흘러나왔을 때의 감격. 그 감동을 맛본 사람들이 LP시대의 중심에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매일 밤이면 모여든다는 아지트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섰다. 동대문운동장역 12번 출구로 나와 시청 방향으로 5분쯤 걸으니 불 꺼진 상가 모퉁이에 외롭게 불을 밝힌 간판이 있다. '음악의 숲'. 비좁은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입구에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의 빛바랜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사진만 봐도 가슴이 뛴다.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인 다 헤진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조명 아래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음악에 빠져 있는 군상들이 보인다. 일명 LP 폐인들이다. 60~70년대 소품으로 장식한 한쪽 벽면에 수많은 LP판이 꽃혀 있다. 흐르는 음악의 음색이 깔끔하다. 음악 문외한이 들어도 엠프와 스피커가 예삿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 한 시대를 풍미했던 LP음반.
ⓒ 이정근
복고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반가운 일이지만 저희들에겐 평범한 일이에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LP와 함께 할 것이니까요"라고 한다. 중학교 때 황인용, 차인태, 김기덕, 김광한씨 등 당대의 스타 DJ들이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팝 음악에 빠져 대학도 못 가고 음악과 함께 오늘에 이르렀다는 DJ 신민수(44)씨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한다.

"제가 DJ로 정식 입문한 것이 80년대 초 영등포였어요. 그때는 DJ 1세대라 할 수 있는 명동시대가 분화하여 종로에는 엘도라도, 천궁, 엘파소, 무학이 있었고 을지로 6가에 대광, 서소문에 코러스, 신촌에 독수리, 남영동에 아람, 라자, 미아리에 산울림, 영등포에 상아탑, 돌체, 푸른성, 미진, 대학 등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었어요."

그때가 좋았다는 표정이다.

▲ 그 때를 회상하는 신민수씨.
ⓒ 이정근
"황금시대의 중앙에 우리가 있었지만 우리는 고독했어요. 비좁은 박스 안에서 때론 슬픈 모습으로, 때론 기쁜 모습으로 음악과 신청자의 감정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얼마나 차가운 시선으로 멸시했구요. 딸 가진 부모들은 '판돌이'라고 결혼도 반대했거든요.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와 '판돌이'라는 이유하나로 헤어지게 된 것이 가슴 아픕니다."

지긋이 눈을 감고 그때를 회상하던 그가 말을 이어간다.

"88올림픽을 전후해서 음악다방이 갑자기 없어졌어요. 당국의 정책 때문인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인지 지금도 아리송하지만 그때 한꺼번에 없어졌어요. 그때 제가 종로 '천궁'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스모키 세대의 막내이자 음악다방 DJ 막내가 된 셈이죠."

▲ 벽면 가득히 꽂혀 있는 LP음반.
ⓒ 이정근
이렇게 많은 LP 판을 어떻게 모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LP가 좋아 한두 장 수집하다 보니 이렇게 많아졌어요. 처음엔 혼자서 듣기 위해 수집했지만 3000장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집안에서 보관할 수 없어 지하 창고를 임대하여 보관했었죠. 이사 다닐 때 제일 힘들었어요. 판이 깨질세라 휠세라 걱정하던 마음은 꼭 어린아이를 우물가에 내놓는 심정이었어요."

친구들이 찾아오면 어두운 창고에 들어가 차 한 잔씩 마시며 음악을 들었는데 그 횟수가 잦아지다 보니 미안해서 안 된다는 애호가들의 권유로 업소로 변신했다고 순박하게 웃는다. LP 음반이 자신의 보물 1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는 몇 년 전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때 자식이 물에 잠기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고 아쉬움을 털어 놓았다.

▲ 수북이 쌓이는 신청곡 메모지.
ⓒ 이정근
▲ 어, 그 곡이 뭐드라? 얼른 생각이 안 나는지 신청곡을 쓰다가 잠시 멈춘 마니아.
ⓒ 이정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신청곡 메모지가 수북이 쌓인다. 시애틀에서 잠시 귀국하여 음악실에 들렸다는 재미동포 이병천(45)씨는 "미국을 닮아가는 한국에 한국적인 멋이 풍기는 곳이 없어져 아쉬웠는데 여기를 알고부터는 공항에서 이곳으로 직행하여 머리를 가다듬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뮤직 박스 안에는 '테크닉스' 턴테이블이 돌아가고 진공관식 엠프가 자리 잡고 있다. 진공관식 엠프라고 다 엠프가 아니란다. 마니아들이라면 귀한 보물로 인정하는 서용기 장인이 제작한 귀한 엠프란다. 서용기 장인이 작고한 이후 희소가치가 높아져 부르는 게 값 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LP를 사랑하겠다는 박찬식씨.
ⓒ 이정근
혼자서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박찬식(38·서울 신내동)씨는 "요즈음 꽃미남 꽃미녀들이 음악을 음악으로 승부하지 않고 시각으로 승부하려 한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에요. 눈으로 들어야 하는 영상시대 음악은 음악을 모독하는 것 같아 싫어요. 음악은 귀로 들어야 하고 귀가 열린 다음에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이해 할 때까지 열심히 다닐 것 입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깊어만 가는데 일어서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더 많다. 음악이 뭐 길래? LP가 뭐 길래? 그들은 밤늦은 시간에 모여드는 것일까? 그들은 콘크리트 숲속의 외로운 나그네들로 몸과 마음을 쉴 곳을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렇게 깊어가는 밤과 함께 음악에 빠져들고 음악에 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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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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