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생님 "'살피꽃밭'이 무슨 말이죠?"
이승일 학생 "예, 꽃밭의 꽃을 살피는 것이…."(전체 웃음)
선생님 "틀렸어요. (별하나 달고) 다음 학생 말하세요."
강한슬지 학생 "예, 담장이나 도로 밑에 길게 만든 꽃밭입니다."
선생님 "맞았어요. 다음 학생 일어서세요."


▲ 송지은 학생이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란 국어수업 중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서종규
광주 경신중학교 3학년 국어시간입니다. 내일이 한글날인데 우연히 <중3 생활국어>에 있는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란 단원을 모둠별로 이해하여 답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단원에는 '갈무리(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함)', '곰비임비(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계속 일어남을 나타내는 말)', '꽃보라(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많은 꽃잎)' 등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 약 150개 정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수업방법은 4명이 모둠별로 앉아서 서로 토론을 벌입니다. 한 반의 인원이 35명 정도여서 9개의 모둠으로 편성됩니다. 이 단원은 총 2시간으로 짜여져 있는데 첫 시간에는 모둠별로 단어들을 이해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단원 특성상 암기 위주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단합된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첫 시간의 모습은 왁자지껄 시장통 같습니다. 모둠원끼리 갖가지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여 준비합니다.

요즈음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의 흉내를 내어서 모둠장이 문제를 내면 깔때기를 귀에 대고 귓속말로 답하며 한 시간을 준비하는 모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명이 인상을 가득 쓰고 책에 시커멓게 칠을 해 가며 외우고 있는 막무가내형 모둠도 있습니다. 모둠장이 문제를 내면 단체로 크게 외치는 합창형 모둠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열심인 것은 아니겠지요. 끄덕끄덕 졸고 있는 학생이 있는 모둠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지요. 서로 격려하며 함께 물어보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줘도 흐지부지 소극적으로 준비하는 모둠도 많지요. 조는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책을 보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둠도 발견됩니다. 이런 모둠은 모둠활동 불량으로 적발되어 감점을 받는데 말입니다.

두번째 시간은 모둠별로 겨루기 수업을 갖습니다. 즉 퀴즈대회 형식을 갖지요. 그런데 일반 퀴즈대회 형식이 아니라 모든 모둠원들이 번갈아가며 대답을 해야 합니다. 첫번째 문제를 1모둠의 1번이 대답하면, 두번째 문제는 2모둠의 1번이 대답합니다. 9모둠까지 한 바퀴 돌았으면 다시 1모둠의 2번이 대답하고, 만일 답을 하지 못하면 틀린 답으로 별을 받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대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1시간 동안 계속하여 질문하면 모둠별 모든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대답하고, 대답을 가장 많이 하지 못한 모둠은 모둠활동 불량으로 수행평가에 감점을 받는 형태입니다. 가장 많이 대답을 한 모둠은 가산점을 받겠지요. 그러니 학생들이 긴장해 대답할 수밖에 없지요.

▲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이란 국어수업 광경. 제가 진행하고 있는 수업입니다.
ⓒ 서종규
학생들은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들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아서 아주 힘들어 했습니다. '돌꼈잠(한 자리에 누워 자지 않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자는 잠)', '등걸잠(옷을 입은 채 아무것도 덮지 않고 아무 데나 쓰러져서 자는 잠)', '나비잠(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편히 자는 잠)', '새우잠(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자는 잠)', '누루잠(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놀라 깨는 잠)', '여윈잠(충분하지 못한 잠)', '사로잠(염려가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바심하며 자는 잠)' 등 잠에 관한 우리말도 많았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대답들이 많이 쏟아졌는데 '곰삭다(젓갈 따위가 오래 되어서 푹 삭다)'라는 말을 '고리삭다(젊은이다운 활발한 기상이 없고 하는 짓이 늙은이 같다)'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더펄머리(더펄더펄 날리는 더부룩한 머리털)'를 '대머리'라고 말하여 온통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슴베(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 이란 문제에서는 아주 큰 웃음이 번졌습니다. '슴베'의 발음이 3학년1반 담임 선생님의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꼬지(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가삼이 모이는 일)', '모르쇠(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다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 '신소리(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 '덤터기(남에게 넘겨씌우거나 넘겨받은 험루이나 걱정거리)' 등 학생들이 많이 들어 보았을 것 같은 단어들에 대하여 의외로 틀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괴발디딤(고양이가 발을 디디듯이 소리나지 않게 가만히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는 짓)', '너나들이(서러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대거리(상대편에게 언짢은 기분이나 태도로 맞서서 대듦),' '도란도란(여럿이 나직한 목소리로 정답게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 '보듬다(사람이나 동물을 가슴에 붙도록 안다)', '아망(아이들이 부리는 오기)', '열구름(지나가는 구름)', '보람줄(책 따위에 표지를 하도록 박아 넣은 줄)', '손사래(어떤 말이나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에게 조용하라고 할 때 손을 펴서 휘젓는 일)' 등 아름다운 우리말을 새삼 좋아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정다은 학생은 이렇게 소감을 말했습니다.

"재밌어요.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발표하니 지루하지 않아요. 우리말인데도 낯선 말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이 수업을 통해서 우리말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내일이 한글날인데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을 배웠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앞으로 컴퓨터 용어나 은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서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