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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와 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사회에서 흑인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 흑인들에게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자유롭게 주어지지 않았으며, 식당이나 극장도 흑인들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없었다. 버스도 백인좌석과 흑인좌석이 따로 있었다. 학교도 백인학교와 흑인학교가 구분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교회나 감옥조차도 흑백에 따라 나뉠 때였다. 이 시대에 흑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천형(天刑)'에 다름없었다.

이 이야기는 그 당시에 시작된 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1959년, 오하이오의 백인 중산층이 사는 동네에서 주디 하트만과 빌 마이어스라는 백인 한 쌍이 웨딩마치를 올렸다. 그들은 결혼한 지 5개월만인 1960년 2월 28일 아이를 출산했다. 그런데 둘 다 백인인 이들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놀랍게도 피부색이 까만 사내 아이였다. 빌은 처음에는 아이가 황달이거나 병원에서 바뀌었다고 생각했으나, 주디는 이를 부인하며 "아이의 피부색이 까만 것은 피부병의 일종인 흑색종(melanism)때문"이라며 의사에게서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백인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흑인아이

▲ 플로리다 지역신문 <올랜도 센티널>이 지난 9울18일 보도한 데이비드 마이어스 관련 기사. 사진은 빌과 주디의 두 딸과 어린 데이비드.
전통적인 루터 기독교 신자였던 빌은 이를 그대로 믿었으며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빌은 인정 많고 친절하며 유순한 성품의 소유자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자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이들 부부는 아들 데이비드(데이브)에게도 이를 믿도록 했다. 엄마 주디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데이브의 피부병은 다른 사람들처럼 갈색 반점이 아니라 몸 전체에 퍼져 있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빌은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갖고 다른 세 딸, 아들과 똑같이 데이브를 귀하게 키우려고 애썼다. 빌의 태도는 데이브와 다른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이들 가족 안에서 피부색이 다른 것이나 인종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됐다.

보통 백인들뿐인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외곽의 백인 중산층 지역인 스토우에서 마이어스 가족이 볼 수 있었던 흑인은 신문이나 TV뉴스에 나오는 것뿐이었다. 당시 흑인들은 클리블랜드 동부지역의 열악한 환경에서 '게토'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언젠가 데이브가 텔레비전을 보며 그의 엄마에게 "왜 앨라배마 주 경찰들이 흑인 시위자들에게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 곳이 덥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데이브는 오하이오와 뉴욕 주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흑인으로 태어나기보다 피부병을 가진 백인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데이브는 스스로를 백인이라고 믿으며 오하이오와 뉴욕의 백인 중산층 동네에서 그렇게 성장했다.

그러나 데이브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1967년, 초등학교 2학년인 데이브에게 같은 반의 한 친구가 "넌 니그로야!"라고 소리치더니 당시 백인 아이들이 흑인을 비하할 때 부르던 동요를 부르며 놀려댄 것. 소리 내어 울던 그를 발견한 선생님은 "걱정 마, 넌 갈색 피부의 백인이야"라며 달랬지만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큰 변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엄마는 데이브가 동네에서 사람들 앞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고, 집에서도 점차 그를 따로 놀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거친 행동 때문에 사고가 빈발하자 어떤 때는 양부모에게 맡겨지기도 했고 집에서 쫓겨나 차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차별받는 한 마리의 '검은 양'이라고 생각했다.

26년 만에 벗겨진 '허위의 세월'

▲ 데이브의 생부 퍼본 베켓과 그의 이복형제들. 데이비드가 보여준 사진을 찍었다.
ⓒ 김명곤
그러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데이브뿐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 어머니 주디도 불행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주디는 항상 뭔가 모를 분노에 가득 차 있었고 이를 참느라 힘들어했다.

증세가 심해지자 어느 날 그녀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그녀를 진단한 의사는 "이제 거짓말을 그만 두고 가족들에게 사실을 말하라"고 조언했다. 번민 끝에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결혼 전에 한 흑인으로부터 강간당했었다고 털어놓았다. 데이브가 26세 되던 해였다. 결국 데이브는 피부병을 가진 백인이 아니라 흑인과 백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이었던 것. 다행히 남편과 아이들은 이를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녀가 26년 동안 가지고 있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된 사실에 대해 기뻐했다.

이제 주디는 새 세계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상성격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자신감을 가진 그녀는 어느 날 밤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던 데이브에게 전화를 걸어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에는 그의 생부가 퍼몬 베켓 시니어라는 사실도 남겨 놓았다.

▲ 10월 1일 플로리다 올랜도의 한 식당에서 만난 데이브 마이어스(44).
ⓒ 김명곤
그러나 데이브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주디의 고백이 주디를 해방시켜 주었을지는 몰라도 데이브는 그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됐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사실을 듣고 나서 3년간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는 흑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흑인이었다. 그의 가족은 물론 그의 이웃도 흑인이 아니었고, 그의 학교친구들도 흑인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었을 때도 그의 친구들 중에서 흑인은 거의 없었다.

현재 45세로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테니스 강사를 하고 있는 데이비드는 지난 1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흑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 나는 백인의 가슴과 머리를 가지고 살았다, 백인이 입는 대로 입었고 백인이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며 "흑인을 상대하기도 싫었다"고 고백했다.

뒤틀린 이야기 ... "강간이 아니었다"?

데이비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섰다. 그는 이제껏 배운 적이 없던 흑인의 역사, 문화, 인종문제 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흑인문화의 파괴> <인종과 인종주의 이론> <통합의 환상과 인종의 현실> <차별화된 사회에서의 성장> <선생님께 들은 거짓말> 등의 책을 독파하며 이를 정리해 나갔다.

데이비드는 정체성을 찾아 나서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생 역정이 '위선의 백인미국' '억압과 차별의 흑인미국' '인종문제를 논의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미국'의 이야기임을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흑인 가족들도 수소문했다. 그는 이복형제가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전화하고 서로 사진을 교환했다. 데이비드는 그를 통해 지난 6월 22일 드디어 생부 퍼몬 베켓 시니어를 처음으로 만났다.

▲ 데이비드가 즐겨 읽고 인용하는 인종문제 서적들
ⓒ 김명곤
그 자리에서 그는 생부 퍼몬 베켓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퍼몬 버켓이 "강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디와 몇 차례 데이트하면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져 너를 낳게 됐다"고 주장한 것. 퍼몬 베켓은 당시 주디 하트만이 간호학과 학생으로 있었던 병원의 정신과 병동 조무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20세였고 자신은 30세였다고 고백했다.

은퇴한 제강 노동자인 77세의 베켓은 아들에게 "그건 진부한 남부식 거짓말이야. 그녀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사실을 부인했을지는 안 봐도 뻔해,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그 사실을 숨겨야만 했을 거야"라면서 "네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당신을 꼭 빼 닮았다'는 말까지 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주디는 퍼몬 버켓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서 펄쩍 뛰었다. 그녀는 어떤 강간범도 여자가 먼저 원했다고 이야기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완전히 가짜"

데이비드는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내 친구들은 내게 가장 백인같이 말하는 흑인이라고 말한다"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완전히 가짜"라고 말한다. 데이비드는 그의 중서부 오하이오 억양을 남부 흑인 사투리로 바꾸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데이비드는 흑인에 대한 허위의식 속에 빠져 사는 미국인들의 가장 가까운 예가 바로 자신의 가족이라고 믿고 있으며, 가족들이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의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의 이 같은 집착을 끔찍이도 싫어해 그와 의절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

그의 어머니 주디는 "인종주의가 자신을 그 꼴로 만들었다는 그의 주장이 나로 하여금 더욱 흑인에 대해 편견을 갖도록 했다"면서 "그는 내 아이도 아니고 더 이상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누구보다도 데이비드를 감싸주려 했던 아버지 빌 마이어스도 "그는 항상 인종문제나 '가엾은 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며 "현실이나 자신의 미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더러운 물을 계속 휘저으려고만 한다"고 불평한다.

▲ 데이비드가 오픈한 디스커스레이스 사이트.
얼마 전 데이비드는 플로리다 올랜도 남부의 한 공립도서관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그러나 세미나 당일 참석자는 단 두 명이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는 "미국인들이 인종문제와 그 신화, 비밀, 거짓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얼마나 꺼려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이런 노골적인 주제를 피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데이비드는 아버지 빌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하고 있지만 미국사회에 감춰져 있는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거부한다. 그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을 부인하는 어머니 주디처럼 미국사회가 질병을 앓고 있다고 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작업에 일생을 걸겠다는 각오다.

"흑인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일생 바칠 것"
[인터뷰]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만난 데이비드 마이어스

▲ 데이브 마이어스가 책을 들고 있는 모습. 그는 현재 '인종문제 전문가'로 여러곳에 초빙되어 강연을 하러 다닌다.
ⓒ김명곤
기자는 지난 10월 1일 오후 2시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 길목에 있는 한 백화점 안의 식당에서 데이비드 마이어스(44)를 만났다. 그의 삶의 궤적으로 미루어 거칠고 어두운 얼굴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측과 달리 그는 매우 밝고 유순한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스토리에 "최초의 반응을 보인 아시안"이라며 무척 반가워했다. 그는 1981년부터 약 2년간 미 해군으로 진해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며 몇 년 전에는 모 종교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을 다시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 요즈음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지난 9월 18일 <올랜도 센티널>에 나의 삶이 소개된 이후로 갑자기 바빠졌다. 지난주에는 한 고등학교 초청으로 나의 경험과 '흑인문명의 진실'에 대해 강의했다."

- '흑인문명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고대 아프리카나 남미 문화 등을 살펴보면 흑인은 고도의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백인들은 이를 은폐 또는 조작하거나 복사하여 자신들의 문화인 것처럼 선전해 왔다. 백인들뿐 아니라 흑인들조차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 이 같은 일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흑인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가족들이 왜곡된 흑인문화의 피해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흑인들에 관련된 많은 허위의 '신화'에 속아 살아 온 것이다. 나는 이 신화를 깨뜨리고 싶었다. 나는 과거를 들추어내서 인종간의 갈등을 부추기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 구체적으로 이 같은 '신화'의 예를 한 가지 든다면?
"현재 미국사회에서 인식되고 있는 '위협적인 존재'의 순위를 말한다면, 흑인 남성, 흑인 여성, 백인 남성, 백인 여성의 순이다. 백인들은 흑인이 항상 위협적이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랫동안 형성돼온 사회적 기만에 불과하다."

- 아직도 미국사회에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보는가?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에게 사회적 또는 정치적 사망이라는 형벌을 가해 왔기 때문에 노골화 되지 않고 있을 따름이지 교묘한 형태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의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등이 바로 살아 있는 증거물이다."

-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어머니를 증오하나?
"아니다. 나는 그녀가 언제든 진실을 말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어머니가 나의 생부로부터 강간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사회의 흑인에 대한 편견에 압도당해 살아 왔다. 사람들이 나의 부모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데이비드는 정확히 짚어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에 대해 혼합된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그리고 성인이 된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데 대한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빌 마이어스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그는 어머니가 '더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며 내 사진을 벽에서 떼어낼 때도 이를 반대했으며 한번도 나를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아버지를 자신의 삶의 '모델'이라고 지칭했다.

데이비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종적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웹 사이트 '디스커스레이스닷컴'(DiscussRace.com)을 오픈했다. 그는 이 사이트를 통해 미국사회에서 인종에 대한 기만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스토리가 언론에 소개된 이후 '디스커스레이스닷컴'은 접속자가 폭주해 지난 8월 7500건의 접속에서 9월 16만5000건으로 늘어났다.

그는 언젠가 '오프라 윈프리 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기 가족의 비밀, 미국의 인종문제 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털어놓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하여 스스럼없이 진실을 고백할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 김명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리아위클리> 마이애미 주재원 안태형 기자의 도움을 얻어 9월 18일자 <올랜도센티널>, 웹사이트 'DiscussRace.com'을 참고하고, 데이비드와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하여 엮은 것입니다. 
koreaweeklyfl.com(코리아위클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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