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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국감 술자리 추태 파문의 주역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구 술자리 폭언 파문을 일으킨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지난 27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이번 사건은 오마이뉴스가 조작한 사건’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주 의원은 이 자리에서 “사건의 본질은 ▲오마이뉴스의 사건 조작 ▲위장 시민단체의 진실 왜곡 ▲대구 동구을 재보궐선거와 관련한 추악한 배후가 있다는 것”이라면서 “만일 내가 제시한 이 세 가지 사안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의원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규명에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친 주성영 의원의 발언에 대한 책임감이 주목되고 있다. 그런데 주 의원의 대구 사건에 대한 대처방식이 지난 98년 전북 전주에서 발생한 주 의원(당시 전주지검 검사)의 도지사 비서실장 폭행사건 처리과정과 묘하게도 닮은꼴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단 무조건 부인하고 본다?

주 의원은 대구 사건이 불거지자 처음에는 ‘무조건 나는 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수 시간 후 주 의원은 손님을 대접하는 입장에서 준비가 소홀함이 미안해 ‘야 XX 너무하는 것 아니야~’라는 말은 했다고 시인했다.

전주지검 공안부 검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98년 당시 술자리에서 언쟁 끝에 도지사 비서실장이었던 박모씨를 술병으로 때려 전치 4주의 중상을 입혔을 때도 주 의원은 ‘말다툼이 있었을 뿐 폭력은 없었다’고 일단 부인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눈이 너무 많았다. 당시 술자리는 전북지역 공안 관계자 회의를 마치고 도지사가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주 의원은 술에 취해 도지사를 부여안고 스킨십을 시도하는 등 추태를 연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보다 못한 박모 전 비서실장이 주 의원의 행동을 저지했고, 이 과정에서 주 의원은 술병을 들어 박 실장의 머리를 내려쳤다.

이후 주 의원은 이 사건 자체를 부인했다. 일단 부인하는 폼이 첫 번째로 닮았다.

내 탓이 아닌 네 탓으로 돌려라?

처음엔 ‘무조건 안했다’던 주 의원이 ‘소홀함에 대한 무안함의 표시로 약간의 대접성 발언을 한 적은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선 이튿날엔 아예 당시 술자리에 동행한 정 모 검사를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렇게 지목된 정 검사는 ‘술자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했다. 사건 일부분의 책임에 대해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술자리가 파하는 시점에서 빚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사과이지, 앞선 술자리에서의 폭언사건에 대한 사과가 아님’을 정 검사는 분명히 하고 있어 여전히 주 의원의 술집 관계자에 대한 폭언 부분은 의혹으로 남았다. 전주에서도 그랬다.

주 의원은 당시 자신의 폭력 행사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비서실장이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며 사건 발발의 책임을 비서실장에게 돌렸다.

당시 지역방송과 지방 일간지 등을 보면 ‘내가 먼저 때리지 않았다’는 주 의원의 주장이 실리는 등 사건을 박 실장에게 전가하려 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런데 비서실장에게는 증거가 있었다. 먼저 맞아 피로 범벅이 된 넥타이가 그것이었다. 물론 주위의 증언도 있었지만 말이다. 박 실장은 이 증거를 당시 모 방송 기자에게 전달했고 이 사건의 진상은 바로 알려질 수 있었다.

결국 주 의원의 두 번째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남에게 미루기’ 이것이 두 번째 닮은꼴이다.

마지막 카드는 지역정서 활용

주 의원은 지역 연고를 마지막 카드로 내세웠다. “비서실장이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발언을 하길래 한 수 가르쳐 주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망국병인 지역감정을 추스르고 봉합하는 애국자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래야 비서실장에게 행사한 폭력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 의원은 또 잘못 짚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생운동과 농촌봉사활동에 열심이던 박 실장은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활동 또한 열심이었다. 그런 활동의 인연이었는지 박 실장은 경북대 졸업생인 부인 김모씨를 만날 수 있었다. 김씨는 당시 지역감정 해소의 선봉에 서 있었던 학생서클 ‘쌀패’의 단원이었다.

이 같은 사실로 인해 주 의원의 해명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서로 척을 지지 않은 다음에야 처가동네를 비난하고 자극하는 사위는 흔치 않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주 의원의 마지막 작전도 호응을 얻는데 실패했다.

주 의원의 지역감정 유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주 의원은 ‘전주 사건’이 선거이슈로 등장하자 ‘박 실장의 지역감정 유발론’을 또 꺼내 들었다. 이런 주 의원의 호도에 박 실장은 강력히 항의했다. 주 의원은 이른 아침 박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히 사과해야 했다.

이랬던 주 의원이 대구 사건에 대해 ‘재보궐 선거를 겨냥한 추악한 음모설’을 제기했다. ‘동, 서’전략이 ‘정략적인 음모’로 바뀌었다는 것일 뿐, 전주 사건에서 ‘폭력’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지역’을 들먹거리며 물타기와 발뺌으로 일관하려 했던 전법이 세 번째로 닮았다.

주성영 의원은, 아니 당시 주성영 검사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 하려는 이 세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박 실장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27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피해자였던 박 실장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인의 신분을 망각하고 항상 이런 추태 사건에 주 의원이 등장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주 의원은 이유야 어쨌든 국민을 실망시키고, 물의를 일으킨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 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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