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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에게 발송된 압류통지서
ⓒ 오마이뉴스 허지웅
지난 12일 의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평호(57·서울 공릉동)씨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서울시 세무 38 기동팀’이라는 발송자 이름에 불안감을 느낀 이씨는 황급히 내용을 확인하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편지는 ‘공릉 1, 3동 주민들에게 지급된 가지급 원금과 이자의 상환이 늦어져 이씨 집을 지난달 30일 압류조치 했다’는 내용의 압류 통지서였다. 가지급된 원금과 이자의 상환이라니, 대체 공릉동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원고들은 가지급금과 이자를 상환하라"

문제의 발단은 7년 전인 9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8년 8월 6일, 중랑천 범람으로 노원구 공릉 1, 3동 일대 1350여 세대가 완전침수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수재민들은 서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2000년 9월 6일 일부 승소했다. 2002년 6월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승소, 두 차례에 걸쳐 총 18억 4000만원의 가지급금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2003년 10월 23일 대법원에 의해 파기환송 됐고, 지난해 8월 25일에 최종 기각됐다. 공릉동의 침수피해가 서울시 관리소홀로 인한 인재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였던 것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원고들은 이미 지급된 가지급금 18억 4000만원과 3년 10개월간 이자 5%는 물론 판결시점으로부터 가지급금이 모두 상환될 때까지 년 20%의 고리대금을 서울시에 지불하게 됐다.

원고인 110명 가운데 가지급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한 사람은 단 15명. 나머지 원고인 가운데 외형상 재산 소유자들은 지난 6월 30일자로 재산을 압류당한 상황이다. 주민들은 법원의 최종 판결에도 모순점이 있지만, 서울시의 상환요구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데 더욱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 공릉동 수해민모임 대책위원장 오만탁(54)씨
ⓒ 오마이뉴스 허지웅
"무조건 '법대로'만 하겠다고?"

공릉동 수해민모임 대책위원장 오만탁(54)씨. 오 위원장은 중량천 범람으로 인한 공릉 1, 3동 수해 이후 7년간 수해민모임 대책위원장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애초 피해가구가 1350여 가구였음에도 원고인이 겨우 110명밖에 안된 것은 대부분의 피해 주민 형편이 소송을 준비할 만큼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수해로 순식간에 알거지가 됐던 주민들에게 지급된 보상금을, 그것도 이자를 포함해 상환하라는 요구는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그는 못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실 재판과정에서 원고 주장이 삭제되고 꼭 필요한 입증이 생략되는 등 많은 사실관계가 왜곡됐다. 하지만 판결내용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원금을 상환할 테니 연 20%의 고리대금과 5%의 이자에 대해서는 선처를 부탁한다는 말”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수재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참여정부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이미 복구자금으로 소요된 보상금을 이자를 포함해 돌려달라니 차기 대권주자를 꿈꾸는 서울시장이 그 정도 융통성도 없이 어떻게 행정을 총괄할 수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압류조치를 당한 주민은 모두 33명. 외형상 재산소유자로 분류된 이들은 대부분 주택을 압류당했으며 전세입자 혹은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대지압류 조치를 겪었다. 주택압류 조치를 받은 박해준(45)씨는 "수해 이후 악몽같은 7년이 흘렀는데 이제는 아예 길 바닥에 나앉게 생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용탁(48)씨는 “원금 3300만원에 이자 990만원, 그리고 1년에 550만원씩 불어나는 20% 고리대금 앞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심정이 갑갑하다”며 "가혹한 상환절차로 미뤄볼 때 서울시가 공릉동 수해소송 건을 일종의 본보기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 98년 8월 6일, 중량천 범람 현장사진
ⓒ 오만탁씨 제공

서울시 "안타깝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서울시 치수과의 임재영씨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법부에서 이미 판결이 끝난 사항을 집행하고 있을 뿐"이라며 "현재 다각도로 대안을 모색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치수과로부터 이 사안을 이관받은 서울시 세무28기동팀의 백성훈씨도 6월 말 압류조치에 대해 “법적으로 당연히 받아야 할 금액이 상환되지 않아 채권확보 차원에서 행한 것” 이라며 “안타까운 일이지만 배정된 업무를 규정대로 처리할 뿐이다”라고 밝혔다.

백씨는 ‘보상금 이자율 적용이 너무 지나치다’는 주민들 주장에 대해 서울시가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되더라도 같은 수준의 이자율을 적용받는다고 답변하면서 "중요한 것은 110명의 주민들에게 지급된 금액이 ‘보상금’ 차원이 아닌 그들의 변호사가 요구한 ‘가지급금’이었다는 사실"임을 강조했다.

한편 주택과 대지의 압류통지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지난 19일 서울시를 항의방문하고 이명박 시장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날 오종석 서울시 건설교통국장은 ▲이자를 제외한 원금 분할상환 ▲압류조치 해제 등 주민들 요구를 적극 검토해 오는 28일 답변하기로 했다.

▲ 오만탁씨가 98년 수해현장을 둘러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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