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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영상장비의 역사가 뇌 연구의 역사이다."

인류의 마지막 도전으로 불리는 뇌연구에 있어 뇌영상장비가 갖는 중요성을 나타낸 말이다.

20세기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하여 인류는 지구를 넘어 먼 우주 공간으로까지 그 대상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그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던 '뇌'에 대해선 이제서야 출발선을 넘어섰다고 할 만큼 뇌는 여전히 미지의 대상이다.

신비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온 이유도 있겠지만 과학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뇌를 볼 수 없다'는 것. 좀더 덧붙이면 '뇌의 반응을 볼 수 있는 장비가 없다'는 것이다.

조장희 박사, 75년 원형 PET 최초 개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을 보는 것을 초능력이라 생각하듯 기계도 마찬가지.

▲ 의료영상기술의 발전 역사
ⓒ 사이언스타임즈
1895년 뢴트켄이 물질을 투과하는 전자기파의 일종인 X선을 발견했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X선은 발명이 아닌 발견이었기에 장비가 개발되기까지는 더욱 오랜 시간이 흘렀다.

X선 발견 이후 80여년이 지나서야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가 개발됐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최초의 영상장비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X선을 발견한 뢴트켄, CT를 개발한 코멕과 하운스필드 모두 노벨상을 수상했다. 인류 과학사에 있어 새로운 전자기파의 발견과 그 장비의 개발이 가져다 준 의미만으로도 수상의 이유는 충분했다.

이후 1975년 한국의 조장희 교수와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마이클 터 포고시언이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 Positron Emission Tomograph)라는 새로운 영상장치를 선보인다. X레이가 아닌 방사선동위원소를 쓴 새로운 개념의 영상장비. PET는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하는데, 물리적 반감기가 짧아 시간이 지나면 방사능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가속기(싸이클로트론)을 통해 생성한다.

이렇게 동위원소를 만들어 포도당 같은 것과 섞어서 인체에 투과한 후 뇌의 어느 부위가 포도당을 많이 쓰고 있는가를 관찰한다. 활성화부위가 포도당 소비가 많으므로 이 동위원소를 측정함으로써 뇌활성화부위를 영상으로 얻는 것.

▲ 최초의 원형 PET
ⓒ 사이언스타임즈
75년 당시 미국 UCLA 교수였던 조장희 박사는 세계 최초로 독자적인 원형 PET를 개발해 세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조 박사가 처음 발표한 최초 원형 PET는 '조스 펫(Cho's PET)' 혹은 '조스 링(Cho's Ring)'이라고 불리며,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는 PET 개발에 이론적 실체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장희 교수가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으로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장비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fMRI 장비 개발로 동양의학 신비 입증

이후 79년엔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자기적 성질을 이용해 측정하는 MRI(자기공명영상장치)가 나왔다. 인체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인체에 자기장을 걸어 주면 물을 구성하는 수소원자는 공명 현상에 의해 외부의 고주파로부터 특정한 진동수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흡수된 에너지가 다시 방출될 때까지 시간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 차이를 가지고 영상을 얻는다. MRI장비를 개발한 로터버와 맨스필드는 2003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웬만한 병원에서 다 갖추고 있는 MRI장비는 뛰어난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정지영상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1992년 일본의 세이지 오가와 박사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 인체 내 산소소모량을 통한 국부적인 기능적 영상이 가능한 fMRI를 개발하며 생생한 뇌영상장치를 전세계에 선보였다.

이후 이 fMRI 장비를 활용한 논문이 앞다투어 쏟아졌다. 특히 동양의 명상(Meditation)과 침의 효과에 대해 과학적 검증과 연구가 활발해짐으로써 동양의 신비가 서양 과학으로 입증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1992년 미국립보건원(NIH)의 침 연구비가 200만달러였는데 2000년엔 50배 증가한 1억달러에 달할 정도. 1998년엔 조장희 교수가 fMRI로 침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미 과학전문지인 <디스커버>지에 실리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뇌영상장비는 현재 원리적 개념은 어느 정도 완료된 상태로 기기별 장점만을 융합화하는 단계를 지나고 있다. PET의 낮은 해상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PET와 CT를 결합한 PET-CT 기기가 최근 개발됐다. 이 기기는 암 진단에 주로 사용된다. PET로 암세포를 찾아낸 뒤 CT를 이용해 암세포가 어디로 전이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PET-CT로는 복잡한 뇌 영상을 모두 잡아낼 수는 없다는 한계점도 지닌다.

차세대 의료영상장비 PET-MRI 개발에 세계 주목

그렇다면, 21세기를 이끌어갈 의료영상장비는 과연 무엇일까? 20세기 의료영상을 꽃피웠던 장비는 바로 MRI(자기공명영상기기)와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기기). PET는 인체 내의 동적변화를 감지할 수 있고 MRI는 뇌의 구조, 즉 뇌 속의 형태만을 볼 수 있어 이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장비가 융합될 경우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PET-MRI 융합장비개발이 만약 성공한다면 인류의 뇌질환 정복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중풍에서 정신분열증까지 다양한 뇌질환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ET-MRI 개발나선 조장희 박사
ⓒ KIBS
바로 이 꿈의 장비개발에 한국인 과학자가 나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뇌영상분야의 3대 석학인 한국인 조장희 박사. 조 박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PET와 MRI를 모두 개발한 과학자로 손꼽힌다.

1975년 PET의 세계최초 개발자인 동시에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초빙교수로 재직할 당시 단독으로 2.0T MRI를 개발해 의학계를 놀라게 한 MRI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최초였고 세계에서 10번째 정도였다.

이 꿈의 장비개발을 위해 가천의대가 5년간 640억 원을 투자하고, 세계 최고의 의과학 장비업체인 독일 지멘스사가 합작 형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독일 지멘스는 이를 위해 전 세계에 몇 대 밖에 없는 7.0T(테슬라·자장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를 갖는 MRI(자기공명영상)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7월이면 이 기기가 한국에 들어온다.

또 8월에는 75년 개발된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이후 성능이 급격히 개선된 최첨단 HRRT-PET가 들어올 예정이다. 이 제품 역시 세계적으로 6대 밖에 공급되지 않은 뇌과학전용장비.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조장희 박사는 40여년간 외국에서 활동한 재미과학자로 75년 PET 세계최초 개발, 85년 한국최초 MRI 개발 등 뇌과학 분야에서의 세계적 권위자. 그는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2500여명 중 단 한 명만을 선정하는 '최우수 교수'로 뽑히는 등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했다.

이렇게 탁월한 업적과 권위를 인정받던 그가 2004년 돌연 한국으로 영구귀국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바로 현재 마무리공사가 한창인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의 소장으로 부임하며 PET-MRI 장비를 개발함으로써 한국을 세계 뇌과학연구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실제 과학계에선 줄기세포혁명을 이끈 황우석 교수보다 이미 새로운 영상분야의 혁신을 이끌어낸 조장희 박사가 한국인 최초 노벨과학상 수상시기가 더 빠를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 노벨상 수상의 큰 이유가 새로운 학문의 창출과 인류복지에의 기여가 현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75년 PET를 개발한 조 박사가 더 근접해있다는 평.

실제 X-ray, CT, MRI 등 의료영상역사를 이끈 개발자 모두 노벨상을 수상했다. 현재 PET를 개발한 조 박사와 MRI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fMRI(기능성장기공명영상기기)의 개발자인 일본 오가와 박사 등이 의료영상장비개발자로 노벨상 후보로 대두되고 있다.

뇌영상장비의 개발 역사가 뇌 연구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해 온 것을 보며, 꿈의 뇌영상장비라는 'PET-MRI'의 개발을 우리나라의 과학자가 시도하고 있음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40여년간의 외국생활 동안에도 한국 국적을 유지한 조 박사에게 이제 한국인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의 영예가 주어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타임즈(ScienceTiems)>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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