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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부터 27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7차 검토회의가 핵보유국과 비핵국가의 첨예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로써 35년째를 맞이한 NPT 체제는 중대한 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핵 선제공격 채택 및 신형 핵무기 개발, 북한의 NPT 탈퇴 및 핵보유 선언,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 등 전례없는 핵위기 속에서 열린 이번 NPT 회의는 그 만큼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회의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사회의 집단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놓쳤다”고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9월 유엔 세계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회의의 의장을 맡았던 브라질 외무장관 출신 세르지오 퀘이로즈 듀라테는 참가국의 이견을 모으면 “몇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짤막한 의장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이란의 상호 비방전

이번 회의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핵보유국과 이란 및 이집트로 상징되는 비핵국가 사이에 현격한 이견이 드러난 자리였다.

미국은 이번 NPT 회의를 북한과 이란을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NPT를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비난 결의안을 추진했으나, 중국 및 비핵국가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또한 미국은 핵보유국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아예 농축 및 재처리 자체를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이용해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란은 자신의 핵 프로그램은 전력 생산용이라고 주장하면서, NPT 제4조에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양도할 수 없는 권한"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만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이용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이와 관련해 주 유엔 이란 대사인 자바드 자리프는 세계평화의 가장 큰 위협은 미국 등 핵보유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며,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고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서명을 거부하면서 비핵국가에 대한 핵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했으며, 이스라엘과 핵이용 협정을 맺은 것 등을 거론하면서 미국을 강력 성토했다.

또한 60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악몽을 재론하면서 “이러한 역사에 비춰볼 때, 핵무기는 가장 위험한 사람들의 손에 있다”고 말해, 미국을 궁지에 몰기도 했다.

이집트 역시 이전 NPT 검토회의에서 ‘중동 비핵지대’를 촉구하는 특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을 근거로 이스라엘의 핵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이스라엘은 NPT 미가입국으로서, 미국의 묵인 하에 수백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문제가 의제로 올라오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미국, 일방주의 강화의 구실로 삼나?

이처럼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사이의 이견은 이번 NPT 실패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양측의 이견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1995년 5차 검토회의에서는 핵보유국들이 비핵국가에 대한 핵무기 사용 및 위협을 하지 않고 핵무기 폐기를 약속함으로써 NPT의 무기한 연장을 이끌어냈다. 2000년 6차 회의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거듭 확인되었고, 핵 페기를 위한 13개 이행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7차 검토회의는 회의 개막 이전부터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2003년 1월에 북한이 NPT를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이란의 핵 개발 의혹도 불거지면서 ‘비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는 이번 회의의 실패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때 합의된 핵 폐기 약속 및 이를 위한 13개 이행 조치의 재확인을 거부했고, 이스라엘 핵문제가 이번 회의에서 논의되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NPT 회의 기간에 미국 의회에 ‘벙커 버스터’용 소형 핵탄두 개발 예산의 승인을 요청해 회의 참가국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한 비핵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장받은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미국이 아예 불허하는 방안을 관철시키려고 한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중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에 대한 국제적 통제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이는 합리적인 통제 및 고강도의 검증 체제 마련을 통해 접근했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아예 불허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합리적인 토론조차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IAEA가 제안한 ‘5년간 핵분열 물질 생산 중단’에 대해서도 자국의 핵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자신의 핵 패권주의는 강화하면서 다른 나라의 핵 이용에는 제한을 가하려고 했던 일방주의가 다시 한번 확인되는 대목이다.

우려되는 점은 이번 NPT에서 최소한의 합의 도출에도 실패함에 따라 각기 다른 이유로 NPT의 무용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비핵국가들은 미국 등 핵보유국의 핵 군축 및 폐기 의지가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이전 회의에서는 핵보유국들이 ‘립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을 했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이조차도 거부함으로써 비핵국가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반면 미국은 NPT가 핵확산을 방지하는데 그 한계를 드러냈다며, 합의 도출 실패를 일방주의 강화의 구실로 삼고자 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강화하는 한편, 핵공급그룹(NSG), G-8 등 강대국 중심의 체제를 통해 핵확산 방지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핵확산 및 핵전쟁의 위험도 커지게 된다. 냉전의 해체와 함께 핵전쟁의 공포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인류 사회 앞에 경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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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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