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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대림미술관' 입구 안내판과 전면 모습, 오른쪽은 내부 정원 모습. 자연미와 조형미를 다 갖추고 있다
ⓒ 김형순
2002년 5월 대전에서 서울로 이전한 사진전문 미술관

1996년 5월 대림문화재단에서 설립한 사진전문 미술관인 '대림미술관'은 원래 대전에 '한림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있다가 2002년 5월 서울로 이전하여 개편되었다.

프랑스 미술관 전문건축가 뱅상 코르뉘(Vincent Cornu)가 설계하였고, 1967년까지는 말레이시아 대사관저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경복궁 왼쪽 통의동 고궁 돌담길과 접하고 있어 운치도 있고 주변 주택가와도 잘 어울린다.

▲ 대림미술관' 2층 전시장에서 본 1층 모습. 작가 및 작품 소개하는데 벽면을 멋지게 활용하고 있다. 프론트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 김형순
입구를 들어서면 프론트가 보이고 밖에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정원이 있어 관람객을 반가이 맞이하는 듯하다. 왼쪽 하얀 벽에는 작가의 연혁과 작품 해설의 글이 보라색 글씨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다.

전시 공간만큼 휴식 공간이 많은 곳은 처음

2~3층 전시장 사이로 미로처럼 작은 통로가 있어 신비감을 자아내며 사방으로 넓은 휴식 공간이 있어 오래 머물게 싶게 한다. 휴식 공간이 이렇게 넉넉한 전시장은 처음이다. 이런 곳에 잠시 자리를 틀고 앉아 정원의 꽃과 나무와 연못의 돌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까지 감상하면 도시에서 겪는 시름과 답답함이 다 사라질 것 같다.

▲ 전시공간과 함께 사방 휴식공간이 이렇게 많은 전시장은 처음이다
ⓒ 김형순
사진 전문 미술관답게 조명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 자연광과 함께 실내조명도 직접조명을 거의 쓰지 않고 간접조명 효과만 주고 있었다. 전시물을 관람객이 있는 온도, 습도, 빛까지 고려하여 자연스러운 조명 속에서 감상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는 주제로 '장 보드리야르 사진展'이 지난 25일부터 오는 7월10일까지 열린다. 그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인데 사진이 아니라 그림처럼 보인다. 세잔의 정물화나 초현실적 기호를 연상시키는 70점 여점의 사진이 선보인다.

그의 사진을 보면서 첫 인상은 이런 것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찍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찍었다. 아무 데서, 아무렇게나" 아무 데서 아무렇게나 이열치열이라고 그는 이미지를 가식 없이 찍음으로 이미지의 폭력과 음모를 쓸어 내려고 한 것 같다.

▲ 왼쪽은 '생트뵈브'(Sainte-Beuve, 1986) 오른쪽은 '푼토피날-끝점'(Punto final, 1992)
ⓒ 보드리야르
'생트뵈브'와 '푼토피날-끝점'은 그가 강조하는 "이성적 사고는 시각적 재미를 반감시킨다"를 생각하면서도 초현실적이거나 전위적 그림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그의 사진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짧은 문장이 전시장 한 켠에 적혀 있다.

"사진은 침묵한다. 사진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현실과 그 이미지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다. 관람객이 사진을 보고 그 이미지에 관해 의문을 품고 있는데, 사진이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고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을 때, 그 이미지는 순수하다."

시장과 문화의 충돌

이를 읽고 보니 '무용한 것은 무용하다'라는 시장 원리와, '무용한 것도 유용하다'라는 문화 원리가 충돌하는 듯하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이런 관점을 이렇게 투덜대었다.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다. 그러나 써먹을 데 없는 것을 써먹는 것이 문학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

▲ '베르사유'(Versailles, 2000) 유리컵에 거꾸로 선 베르사유 궁이 보인다
ⓒ 보드리야르
보드리야르는 왜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에 "이론 체계는 한계가 있지만 사진은 다른 형태로 그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답한다. 그는 늘 답을 주어야 하는 철학자 노릇에 지쳤을 때 이를 잊기 위해 사진을 찍는 모양이다. 그는 절대 사진전문가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사진은 심상치 않다.

사실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요즘처럼 카메라 성능이 좋은 시대에 사진 찍은 법은 하루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찍으려면 그에 걸맞은 안목과 견해가 필요하다. 이를 얻으려면 10년이 걸릴지 20년, 30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 '런던'(Londres, 1990)
ⓒ 보드리야르
그는 이를 한마디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요약하고 있지만 그가 말하는 순수하게 본다는 것에 대한 이해는 각자의 독서량이나 교양의 범위, 문화와 사고 차이 그리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많은 사람들의 발상의 전환과 사고의 변화가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유리컵에 거꾸로 선 베르사유 궁이 보이는 '베르사유'와 장미전쟁과 런던의 빨간색 2층 버스를 생각나게 하는 '런던'은 그의 사진론 "사진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지의 시간이다"에 비추어 볼 때 당황스럽다.

'시뮐라시옹(가상 세계)'와 '시뮐라크르(가상 이미지)'

장 보드리야르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시뮐라시옹(가상 세계, simulation)'와 시뮐라크르(가상 이미지, simulacre)이다. 이미지의 폭력, 예술의 음모, 미디어의 횡포 등도 이에 포함된다. 그는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모호해지는 시대에 시각 예술 비평의 지평을 연 것이다.

▲ 왼쪽은 '코르비에르'(Corbières, 1997) 오른쪽은 '바르플뢰르'(Barfleur, 2005) 사진 제목은 프랑스의 지명인 듯하다
ⓒ 보드리야르
'가상(거짓, 가짜)과 진상(진실, 진짜)의 구분이 어렵다'하거나 '가상(시뮬레이션, 시뮐라시옹)이 진상보다 더 진상(하이퍼리얼리티)같다'라고 할 때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대성의 특징이고 우리가 엄청난 복제 기술과 그런 종류의 문화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코르비에르'와 '바르플뢰르'는 프랑스 시골 동네 이름 같은데 그가 말하는 "사진에서 빈자리의 흔적과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를 생각하게 한다.

▲ '룩셈부르크'(Luxembourg, 2003)
ⓒ 보드리야르
지난번 내한했을 때 교육방송을 통해 본 보드리야르의 모습은 철학자답지 않게 심성이 풍성하고 감성이 예민해 보였다. 이번에 내한해서도 역시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경을 사라지게 하고 국가 간의 장벽을 무너져 부, 자본, 재화, 인력 등의 배분을 이루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부자와 빈자, 차별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그의 주제는 폭력에 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현대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공격적인 폭력보다 더 교묘한 것, 즉 만류(단념 유도), 중재, 중화, 통제의 폭력 같은, 소리 없는 말살의 폭력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보, 미디어, 이미지, 스펙터클의 폭력이다. 요즘 악과 폭력은 투명하기까지 하다.

룩셈부르크 공원의 가을 풍경을 연상시키는 '룩셈부르크'를 보면서 그가 언급한 "시각적 이미지는 단절되기 쉽고 일시적이고 즉흥적이고 예외적이다"라는 말을 되씹어 보게 된다.

▲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2002)
ⓒ 보드리야르
도시의 쓸쓸함을 생각나게 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그의 사진론 "이미지는 사물에서 나온 빛과 시선에서 나온 빛이 교차하면서 생긴다"에 대비시켜 본다.

▲ '조각 같은 사람들'(Homotypie,1999) 시리즈
ⓒ 보드리야르
'조각 같은 사람들' 시리즈는 "사진은 찍는 주체가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찍히는 객체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의 해석이 본의 아니게 반대로 간다 해도 어떠하랴. 그러나 여기서 '그렇다 아니다' 혹은 '옳다 그르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성찰하고 대안을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선언 '예술은 죽었다'

장 보드리야르(1929년 생) 소개
20세기 뛰어난 모더니티 해석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며 모더니티에 대한 뛰어난 해석자 중의 한 사람이다. 초기에는 맑스주의자였으나 1970년대 중반부터는 포스트모던 이론가가 되었다.

파리 10대학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미국의 뉴욕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박사 학위논문 '사물의 체계'에서부터 최근의 '불가능한 교환'에 이르기까지 약 30년간에 걸쳐 20여권의 저작을 냈다.

대표 저서로는 '소비 사회'(1970),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1972), '생산의 거울(1973),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 아래서'(1978),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 '숙명적 전략'(1983), '악의 투명성'(1990), '완전범죄'(1994), '완전한 화면'(1997) 등이 있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바르트는 '작가의 죽음'을, 보드리야르는 '예술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예술은 너무 많기 때문에 예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니체는 "춤추지 않는 신을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 말을 보드리야르 식으로 패러디하면 "폭력성에 숨긴 이미지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정도는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지 왜곡의 원천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것을 하지 못하면 언어는 가시성의 조작자가 되고 이미지는 그 독창성과 순수성을 잃게 된다. 재미와 소비가 현대적 삶의 우상이자 통로이지만 재미에 생동하는 감동을 소비에 생산적 창조를 덧붙일 때 이미지는 순수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홈 주소: http://www.daelimmuseum.org
이메일 : seoul@daelimmuseum.org 
주소   :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35-1(경복궁 서문방향) 
전화   : 02) 720-0667, 팩스 02)720-0665 
전시   : 매일 오후2시, 4시 전시설명(월요일 휴관) 
연주회 : 재즈콘서트 6월4일, 6월18일, 7월2일, 7월16일 오후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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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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