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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맞이 길의 계수나무
ⓒ 김대갑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어릴 때 자주 불렀던 '반달'이란 동요의 도입부이다. 윤극영이 1923년에 작사, 작곡한 이 동요는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동요라 할 만하다. 음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무려 8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들어도 새벽의 맑은 정감이 물씬 풍겨난다.

윤극영이 누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었다는 이 동요엔 달에 있다는 상상 속의 나무, 계수나무가 등장한다. 이 계수나무를 해운대 달맞이 길에 가면 볼 수 있다.

▲ 가까이에서 본 계수나무
ⓒ 김대갑
해운대 해수욕장의 끝자락인 미포에서 송정 해수욕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이 고개는 15번이나 굽어야 하므로 일명 15곡도라고도 부른다. 이 작은 고개는 예로부터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고 하였는데, 달맞이 길을 굽이굽이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해안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라 할 만하다.

▲ 송정 방향으로 가는 길.
ⓒ 김대갑
달맞이 길은 ‘동양의 몽마르트’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화랑과 훌륭한 디자인의 카페,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특히 국내 유일의 추리소설 전문 도서관으로 ‘김성종 추리문학관’이 있다.

▲ 추리문학관
ⓒ 김대갑
‘여명의 눈동자’, ‘제5열’ 등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을 선보인 김성종씨의 추리문학관은 순수하게 김성종씨가 사재를 털어 1992년에 설립한 것이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이 도서관은 일종의 북 카페로서 구경은 무료이며 소정의 찻값을 지불하면 앉아서 책을 마음껏 골라 볼 수 있다. 소유 장서는 약 3만5000권 정도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국내 유일의 이 전문 도서관이 매년 엄청난 재정적자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종씨의 순수한 열정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 행여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적으로 이 도서관을 특화, 개발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달맞이 길 정상에 가면 해월정이란 해맞이 정자가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 해월정 전경
ⓒ 김대갑
▲ 해월정에서 바라본 동해
ⓒ 김대갑
해월정 앞엔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으며, 2000년 1월에 설치된 새천년 해시계가 일종의 출입문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문을 통해 새로운 세기로 진입하자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해월정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유료망원경이 있는데, 이 망원경에 500원을 넣고 각도를 잘 맞춰 보름달을 보면 달의 분화구까지 볼 수 있다.

해월정에서 해운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 장소였던 흰색 건물 카페가 등장하는데, 그 카페 맞은편에는 얼마 전에 조성된 ‘연인의 광장’이 있다. 날씨가 추워 아쉽게도 벚꽃이 피지 못해 다소 썰렁한 느낌을 주지만 이 연인의 광장 주변은 평일이면 아주 한산해서 갓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한 연인들에겐 더 없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할 것이다.

▲ 영화 '엽기적인 그녀' 촬영 카페.
ⓒ 김대갑
▲ 왼편에 보이는 목재 시설물이 연인의 광장.
ⓒ 김대갑
달맞이 길에서 송정으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한 또 하나의 흰색 건물 4층엔 고즈넉한 분위기의 재즈 바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엔 재즈계의 살아있는 전설 ‘루이 암스트롱’이 있으며, 푸른 동해와 마티니의 향, 레인보우 칵테일의 색감이 묻어난다.

그리고 이 달맞이 길엔 부산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이 있는데 처음 가본 사람은 그 규모의 웅대함에 다소 놀랄 것이다. 건물 외관은 스위스풍인데, 실제로 이 건물의 설계를 스위스에서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부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카페는 달맞이 길에 몽땅 몰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년 여름이면 달맞이 길에 흩어져 있는 카페와 화랑, 문화단체들이 연합하여 달맞이 축제를 개최하는데, 작은 음악회, 전람회, 무용 발표회, 문학제 등 볼 거리가 풍성한 편이다.

▲ 놀이마당인 어울림 광장. 다양한 야외 공연이 펼쳐진다.
ⓒ 김대갑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달맞이 길에 속속 들어서있는 아파트와 빌라의 무리들이다. 왜 이 땅의 사람들은 국토의 문화적, 자연적 가치를 쉬이 찾지 못하는지. 달맞이 길만 해도 몇 년 전에야 겨우 건축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을 뿐, 무차별적으로 들어서는 자본의 논리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였다.

뒤늦게 조치를 취한들 이미 운치와 예스런 멋은 사라진 뒤이니 통곡한 들 무슨 소용이랴. 달맞이 길의 원형이 잘만 보존되었다면 몽마르트를 훨씬 능가하는 문화의 거리가 되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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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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