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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학교로의 복직 여부를 놓고 세간의 주목을 받고있는 양성우 시인.
“각종 언론보도는 이미 복직이 확정된 것처럼 나오고 있는데, 정작 나와 복직에 관한 논의를 해야 할 학교(광주중앙여고)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3월말이 학교가 내게 이와 관련한 최종 통보를 해줄 시점인데, 이제 얼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답답하다.”

지난 5일 기자와 만난 시인 양성우(62)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30년간의 기나긴 해직기간 동안에도 낙관과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그늘진 얼굴이 안타까웠다.

양성우와 ‘겨울공화국’ 그리고, 유신정권의 분노

1975년 2월 23일자 동아일보는 한 젊은 교사 시인이 학교로부터 사표제출을 종용받고 있다는 기사를 ‘기도회서 겨울공화국 시 낭독한 詩人敎師(시인교사) 辭表(사표) 강요’라는 제목 아래 실었다. 그가 사퇴 압력을 받은 이유는 보도 열하루 전 광주 YWCA가 주최한 '민청학련 관련자들을 위한 구국금식기도회'에서 유신정권의 폭압을 은유한 시(겨울공화국) 한 편을 낭송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교장은 “주위의 압력과 상부기관의 압력으로 양(성우) 교사를 더 이상 재직시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1970년대 시대상황으로 유추할 때 그 ‘주위’와 ‘상부기관’이라는 게 박정희 독재의 주구 역할을 하던 중앙정보부 등의 기관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같은 해 2월 28일자 중앙일보에는 자진 사퇴를 거부하고, 파면 위험에 처한 서른두 살 시인의 슬픈 얼굴이 실렸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싶었고, 진실과 정의는 어느 역사에서건 위대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젊은 국어교사 양성우씨. 그 시절엔 박정희 유신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시 한 편을 읽은 것도 ‘쳐 죽일 죄’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조금 지난 1975년 4월 12일 양성우 시인은 파면된다. 같은 해 4월 14일자 동아일보는 ‘批判詩(비판시) 낭독 말썽...양성우 교사 파면(罷免)'이란 제목으로 '...시 '겨울공화국'을 낭독한 것이 말썽이 되어 2월 22일 학교측으로부터 사직을 권고 받았으나 불응하자 교내징계위에 회부'되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됐다는 사실을 보도 하고 있다.

양성우씨의 표현대로라면 "그 엄혹한 시기에 광주라는 도시에서 가혹하게 추방당한" 것이다.

30년의 세월... 그러나, 여전히 그의 꿈은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는 것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게 세월이라 했던가. '교사' 양성우가 '해직자' 양성우가 된지 30년이 흘렀다.

▲ 교사 양성우가 사표를 종용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1975년 2월 23일자 동아일보.
광주에서 전남 구례 다시, 서울로 '추방'당한 양성우씨는 그간 시집의 고료와 보잘 것 없는 강연료 그리고, 원고를 써서 번 돈으로 근근히 살아왔다. 잠시잠깐 평민당 국회의원으로 정치판 외도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도 이 땅의 아이들에게 '진실과 정의'가 가진 무한한 힘을 가르치고 싶다는 그의 꿈은 변함이 없었다.

그 꿈을 바라는 마음이 이뤄진 것일까? 지난 1월 말 양성우씨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는다. '관련법률에 따라 해직 당시의 근무처(광주중앙여고)에 복직을 권고하기로 의결했다'는 서면 통보였다.

보상심의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28일엔 광주중앙여고에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다가 해직된 민주화운동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조치를 통해 국민화합을 도모하는데 목적이 있는 (권고이므로) 해당자에 대한 복직권고를 적극 수용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30년간 기대했던 상황이 도래한 듯 보였다. 도하 일간지들은 '겨울공화국 양성우 시인 광주중앙여고 복직' '양성우씨 30년 만의 교단 복귀' 등의 제목으로 이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렸다.

양성우 시인 "아직은 기다리고 있을 뿐, 아무 것도 확정된 건 없다"

하지만, 5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만난 양성우씨는 "(학교측에서) 복직결정 통보를 이 달 말까지 해준다고 그래서 기다리고 있을 뿐, 현재까지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1일 한 차례 (학교측과) 면담을 가졌을 뿐 이제까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면서도 "30년 전 박정의 군사독재정권의 명령 한마디로 나를 파면시킨 학교(재단)이니, 노무현 정부의 복직권고도 당연히 이행하리라 믿는다"는 말로 상황을 희망적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3월 2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복직의 논의 상대자인 광주중앙여고측은 '최근 일부 언론이 마치 복직이 확정된 듯이 보도하는 데 대해 교직원들의 불만이 크다'며 양성우 시인의 행동이 ' 이사회 차원에서 본격적인 (복직) 논의를 하기도 전에 언론에 복직이 확정된 것처럼 인터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목적을 가진 순수하지 못한 언론플레이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보상심의위원회의 복직 권고에 대해 광주중앙여고와 학교법인 죽호학원(이사장 안준)은 3월 31일까지 양성우 시인에게 가부를 통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학교와 죽호학원측은 오는 3월 25일 경 이사회를 열고 복직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중앙여고와 죽호학원은 양 시인이 해직 당한 직접적인 사유인 '1975년 2월 광주 YWCA 구국금식기도회' 사건이 가지는 상징성을 외면할 수 없지만, 복직에 따른 보상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 현재까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여고와 죽호학원측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가 얽혀있어 난감하다"

중앙여고와 죽호학원은 광주광역시교육청이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협의 요청은 하지 않았다. 학교법인 죽호학원 박정욱 법인과장은 "양성우씨 입장에서는 명예회복 차원의 복직이 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며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겨울공화국'은 어떤 시?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라고 시작되는 양성우의 시 '겨울공화국'은 박정희 유신독재가 지배하는 1970년대를 매서운 바람과 혹한의 추위에 모든 사람이 움츠러드는 '겨울'로 은유하고 있는 80여행의 장시다.

양 시인은 '등덜미에 찍혀 있는 우리들의 흉터'로 당시의 아픔을 노래하는 동시에 '한강도 무등산도 말하게 하고 산새들도 한번쯤 말하게 하자'며 말과 글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수 없는 시대를 질타하고 있다.

'사랑하는 모국어로 언땅에서 진달래를 피우고 싶었'던 양 시인이 '겨울공화국'을 낭송했던 1975년 늦겨울. 그는 반독재·반유신의 깃발을 든 문인단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청년회원이었고, 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서른 두 살 젊은 교사였다.
논의의 진척정도를 묻는 질문에 박 과장은 "지난 2월 이사회측이 양 시인을 만나 의견을 청취한 바 있다"면서 "결국은 해직기간 30여년 동안의 보상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고만 말했다. 그는 또 "이 문제 때문에 난감하다. 여러 측면에서 연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교육청과의 협의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재열 중앙여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교사정원이 다 차있고 보상과 퇴직금 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면서 "교육청이 이러한 문제 중 일정한 부분을 해결하는데 관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이 법인과 학교측이 난감해 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전국교직원노조 광주지부 등은 현실적인 문제만을 앞세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광주 전교조 "현실적인 문제만 앞세우면 안돼"... 결국 해결열쇠는 학교와 법인측에

정희곤 전교조 광주지부장은 "부당한 이유로 해직됐으니, 복직은 당연한 것이다"며 "학교와 법인측이 보상문제 등을 들어 난감해 하고 있지만 1차적으로 복직을 시키고 이후 문제에 대해서는 재단측이 안고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지부장은 "복직은 과거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인데 현실적인 문제와 이후 예상되는 어려움을 내세워 이를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라며 "교사 과원 문제 등은 교육청과 충분히 협의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의견과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결국 해결의 열쇠는 양성우 시인의 복직여부를 결정할 광주중앙여고와 죽호학원(이사장 안준)이 쥐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양 시인을 파면했던 학교와 재단은 노무현 정부의 '권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추방당한 자의 눈물 어린 귀향 막아선 안돼"
[미니인터뷰] 복직여부 결정 앞둔 양성우 시인

아래는 3월 5일 광화문에서 가진 양성우 시인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의 복직권고 결정을 들었을 때 심경은.
"이미 몇 해 전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복직)신청을 했다. 2004년 연말에 법 통과 이후 보상위원회가 학교로 서면통지를 보냈고, 나는 지난 1월말에 관련 통보를 받았다. 그와 관련해 2월 1일에는 학교 관계자와 면담을 했다. 기분이 어땠냐고. '사필귀정'이란 말이 떠올랐다."

-복직 여부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스스로는 복직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또, 재단과 학교측에 하고 싶은 말은.
"이건 내가 요청하기 전에 해결됐어야 할 문제였다. 학교측으로부터 무슨 거창한 대우를 받고싶은 것이 아니다. 이제는 학교가 내가 명예롭게 복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역사적 시점에 왔다고 본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거부하면 안된다.

30년 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명령 한마디로 나를 파면시킨 곳이니, 노무현 참여정부의 복직권고도 당연히 이행하리라 믿는다. 아직 그 학교에 군사독재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 남아있어, 가해자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런 사람과 일일이 맞설 생각은 없다."

-만약 학교측이 복직을 거부할 경우엔?
"수많은 그 학교 출신 학생들과 교사와 국민적들이 관심을 가진 사안이다. 부정적으로 예단하고 싶지 않다. 긍정적 해결을 통해 학교당국도 명예를 얻었으면 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 거부될 경우 법정투쟁도 불사할 것이다."

-해직 후 30년 세월이 흘렀다. 교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미래사회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교사고, 그에 관한 배움과 가르침이 이뤄지는 곳이 교실이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인격을 가르치고 정의와 진실의 힘을 가진 사람만이 참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 없다.

내가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30년만의 복직인 동시에 강팍한 시기에 광주에서 추방당한 사람의 눈물겨운 귀향이다. 학교와 재단은 이를 막으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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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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