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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니 빠진 아이들의 미소는 맑기만 합니다.
ⓒ 송성영
앞니 하나를 비워 놓고 치과에 갔더니 치과의사가 그랬습니다.

"옆에 있는 것도 가망이 없는데요."

얼마 전 앞뒤로 흔들리던 아래쪽 앞니 하나가 뽑혀 나갔습니다. 어떤 선배가 펑퍼짐한 낯판대기에 덥수룩한 턱수염의 날 두고 그랬습니다. 소도둑놈 찜 쪄 먹을 만큼 우악스럽게 생겼다고요. 거기에다가 앞니 하나까지 빠졌으니 이제는 영락없이 뒷골목 '깍두기 군단'의 일원쯤으로 보일 것이었습니다.

혹시 치과 의사가 참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나온 앞니를 챙겨들고 곧바로 치과로 달려갔습니다. 빠진 치아는 전혀 필요치 않았습니다. 의사는 빠진 치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임시 치아를 끼워 달라는 내 주문을 받고 이빨 틀을 만들어 어디론가 보냈습니다. 두 시간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단지 빠진 앞니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빠져나간 앞니의 좌우에 박혀있는 다른 앞니들 역시 조만간 뽑혀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아날 가능성은 없나유?"
"너무 늦었네요. 가망 없습니다."

의사는 별일 아닌 듯이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지만 내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다고 믿었던 치아들이었습니다. 3년 전, 오른쪽 사랑니를 뽑을 때도 다른 이빨은 멀쩡할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충치를 갈아내고 가짜 치아로 덧씌울 때도 다른 치아는 멀쩡한 줄만 알았습니다. 앞니가 맥없이 빠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올 봄 왼쪽 사랑니와 그 사랑니가 밀어붙여 흔들거리는 어금니까지 뽑아내야 했습니다. 앞니가 빠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멀쩡하던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에게 앞니가 흔들린다고 말했더니 뽑아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역시 의사는 앞니 좌우 전체가 위험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단지 흔들리는 앞니 하나만 뽑혀 나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다들 멀쩡한 치아들이었으니까요.

두 개의 사랑니를 제외하고 그동안 3개의 치아를 뽑거나 손질했습니다. 치아를 손볼 때마다 의사들은 최후 통첩만 내렸습니다.

"너무 늦었네요. 뽑아야겠습니다."
"어떻게 살려낼 방도가 없을까유?"
"없겠는데요"

살아오면서 네댓 군데의 치과를 다녔는데 의사들은 한결같이 당장 뽑아야할 이빨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뽑혔거나 뽑힐 운명에 놓인 내 치아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방책을 마련해 준 의사는 없었습니다.

단지 뽑아 줬고 갈아 끼워 줬을 뿐이었습니다. 줄지어 기다리는 환자들을 생각해 보면 아래 위 치아가 한두 개도 아닌데 그걸 다 일일이 살펴보고 경고하고 예방책을 알려주기에는 무리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내가 만난 치과 의사들은 치아를 무리 없이 잘 뽑아 주었지만 건강하도록 지켜준 의사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자업자득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의 나이에 앞니가 빠졌다는 것은 뭘 뜻하겠습니까? 살아오면서 술과 담배를 비롯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탐해 왔습니다. 양치질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치아는 그동안의 무절제한 생활을 감당해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40줄이 되어 처음으로 치과 문을 두들겼을 정도로 치아에 대해 자만해 왔습니다. 한창 팔팔한 청소년기에는 내 주변에 병따개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소주병 뚜껑쯤이야 가벼운 입 운동에 불과했습니다. 숟가락으로도 쉽지 않은 콜라 병조차 거뜬하게 이빨로 따냈습니다.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듯이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부메랑처럼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을 벌이면 좋은 일로 다가올 것이고 좋지 않은 일을 벌이면 좋지 않은 일로 되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 "너 앞니 빠졌지 이~ 해봐" 얼떨결에 "이~" 하다가 사진 찍힌 이란성 쌍둥이 신일이
ⓒ 송성영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빨 빠진 녀석들로 득실거렸습니다. 주말마다 아내에게 그림을 배우러 오는 녀석들이었습니다. 다들 치아가 한 두 개쯤은 빠져 있었습니다.

나는 녀석들과 '동료의식'을 느끼며 특히 앞니 빠진 녀석들을 차례대로 붙잡아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표정들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녀석들은 치과를 떠올렸는지 겁을 냈고 어떤 녀석은 장난기를 내세웠고 또 어떤 녀석은 새침한 표정으로 사진 찍기를 즐겼습니다. 녀석들은 모두 다 이빨 빠진 해맑은 미소들을 내보였습니다.

▲ 다영이가 이쁘게 빠진 앞니를 내보입니다.
ⓒ 송성영
빠진 앞니에 대해 개의치 않는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미소는 청량제였습니다. 앞니 빠진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니 치과 의사들에게 품었던 부질없는 불만조차 접어 둘 수 있었습니다.

'앞니 빠진 갈가지'들 중에서 단연 으뜸은 우리 집 작은 아이 송인상이었습니다. 녀석은 앞니 3개가 헹~ 허니 비워져 있습니다.

그 날 저녁 나는 칫솔질을 하다가 임시 치아를 뽑았습니다(임시 치아는 언제든지 끼워 넣을 수 있습니다). 낯선 이물질이 내 몸에 박혀 있다는 것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임시 치아를 뽑아놓고 보니 귀걸이나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처럼 다가왔습니다. 필요에 따라 장식하고 다니는 7만원짜리 '이빨걸이' 액세서리에 불과했습니다. 내친김에 근엄한 사람들 앞에 허여 멀건한 턱수염 불쑥 들이밀어 볼까? 빠진 앞니 씨~익 열어놓고 "영구 없다" 장난이나 쳐볼까?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먼저 우리 집 식구들에게 느닷없이 '영구없다'를 선보였습니다.

"헤헤, 이제부터 그냥 앞니 빠진 영구처럼 살까?"

다들 썰렁한 표정들이었습니다. 식구들을 집요하게 쫓아 다니며 빠진 앞니를 눈앞에 들이밀어대도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징말루 이렇게 하구 다닐껴, 괜찮지?"

누구보다도 질색을 할 줄 알았던 아내는 단지 썰렁하다는 표정으로 이맛살만 찌푸렸을 뿐이었고 큰 아이 인효 녀석은 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보더니 짤막하게 한마디 툭 던져 놓았습니다.

"에이그, 아빠가 알아서 판단해."

뒤늦게 아빠의 '흉측한 코미디'를 목격한 작은 아들 인상이 녀석만큼은 달랐습니다. 내 썰렁한 코미디에 잘도 넘어가 주었습니다. 평소 세상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못 봐주겠다며 손사래까지 쳤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고개를 꺾어 하늘을 향해 탄식까지 내 질렀습니다.

"아, 안돼, 절대 안돼!"
"왜? 왜 안되는디, 이게 니 이빨여 아빠 이빨이지."
"창피해 안돼. 그러구 다니지 마"
"너는 자식아, 앞니가 3개나 빠져 있잖아."
"뭐?"

▲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많은 3개의 앞니가 빠져있는 우리집 작은 아이 인상이.
ⓒ 송성영
인상이 녀석은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지 헹~하니 허전한 앞니를 혓바닥으로 한번 쓸어 올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에이, 그래두 안돼."
"안되긴 뭘 안돼 임마, 넌 3개씩이나 빠졌어도 그냥 다니잖아"

앞니가 휑한 약점 때문에 인상이의 전의가 상실되자 저 만치서 무관심하게 책을 보고 있던 큰 아이 인효 녀석이 은근슬쩍 나섰습니다.

"에이, 아빠는 어른이잖아, 인상이 앞니는 새로 날 거구."
"너는 빠져 이눔아, 아빠 앞니 빼놓고 다녀도 상관없다며."
"에이, 언제 그랬어, 아빠가 알아서 판단하라구 했지."
"그려? 그람, 좋다, 아빠 이제부터 이빨 빼놓고 영구처럼 다닌다 잉."

인효 녀석의 '못 말리는 아빠' 설득 방식은 막무가내인 인상이 하고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아빠가 그랬잖어. 스스로 생각해 보라구, 그게 좋은 일인지."

인효 녀석 말대로 내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인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앞니 빠진 모습을 사진으로 놓고 보았더니 내가 보아도 썰렁했습니다. 이빨 몇 개에 집착을 보이면서도 태연한 척, 호들갑을 떠는 중년 사내의 모습이 추레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쓸쓸해 보였습니다. 허전하게 비어있는 이빨 사이처럼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습니다.

썰렁한 코미디가 비교적 잘 먹혀 들어가는 작은 아이 인상이를 붙들고 짐짓 슬픈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 아빠는 이제 어떻게 살지? 앞니가 하나 둘씩 빠져나가 더 이상 이빨이 나지 않을 것인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아빠 그거, 내 이빨처럼 지붕에 던져 놓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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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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