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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구KYC'(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와 재일동포 3세들의 단체인 'KEY'(재일코리안청년연합) 오사카지부는 지난 1월 24~25일 양일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평화를 위한 호소' 행사를 열었다.

<오마이뉴스 대구경북>은 한국에서도 여전히 고통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원폭피해자 문제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히로시마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호소' 행사와 함께 몇회에 걸쳐 관련 기사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오마이뉴스 이승욱
"더~엉덩, 덩딱 쿵 따악"

59년전 원자폭탄(원폭) 투하로 '버섯'구름이 피어 올랐던 히로시마의 하늘 위로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풍물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온 몸을 움츠리게 했던 지난 1월 25일 오후, 일본 히로시마현(廣島縣)에 자리잡은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이하 평화공원)에 한국과 재일동포 3세 청년 30여명이 방문했다.

평화의 도시, 히로시마에 울린 풍물소리

▲ '세계평화' - 행사에 참가한 재일동포 청년들이 '세계평화'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이날 평화공원을 찾은 재일동포 3세들은 20~30대 젊은이들로 히로시마 인근 오사카시(大阪市)에서 재일동포 3세들의 단체인 재일코리안청년연합(KEY. organization of united KorEan Youth in japan) 오사카지부(지부대표 문성우)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다.

이들은 행사 전날인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동안 평화공원 등지에서 열리는 '평화를 위한 호소'와 강연회를 참석하기 위해 전세버스를 이용해 4시간 이상 소요되는 먼 거리를 달려왔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의 시민단체인 대구KYC(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 회원 4명도 함께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원폭투하와 해방 60주년, 그리고 한일회담 4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내년 2005년을 앞두고 재일·한국 청년들이 한 목소리로 평화의 메시지를 알린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평화를 위한 호소'에 동참한 젊은이들은 지난 1945년 8월 6일 수십만명의 희생자를 낳게 했던 원폭(핵)의 역사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등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정책으로 양산됐던 조선인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 최근 일본내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등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

오후 2시부터 열린 '평화를 위한 호소'는 재일·한국 청년들의 풍물 길놀이로 시작됐다. 평소 KEY 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익혀온 재일동포 청년들의 풍물 장단이 행렬을 이끌었다.

"더~엉덩 덩딱 쿵 따악/ 더~엉덩 덩딱 쿵 따악/ 더~엉덩 덩딱 쿵 따악"

길놀이 행렬은 철골 뼈대만 앙상히 드러낸 원폭 돔(겐바쿠 돔)을 출발해, 원폭 투하 표적이 됐던 '상생교'를 거쳐 평화공원을 가로지르며 이어졌다. 꽹과리, 장구, 북소리가 조화를 이룬 낯선 자진모리 장단이 평화공원을 찾은 내·외국인 참배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길놀이에 이어 참석자들은 원폭 돔 앞에서 회원들이 준비한 평화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선보이며 문화공연을 시작했다. 특히 회원들이 함께 부른 <히로시마가 있는 나라에서>(작사·곡 야마모토 사토시)는 일본내 원폭 피해자들뿐만 아닌 조선인 등 외국인 피폭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 KEY 오사카 회원들이 직접 조선인(한국인) 등 일본외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피폭자는 어디 있어도 피폭자" 전쟁 피해자의 시점에서 평화만들기

▲ 히로시마평화공원을 찾은 한 외국인 방문객이 평화의 메시지를 직접 종이위에 쓰고 있다. 이날 '평화를 위한 호소' 행사에 일본의 현지언론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사진 좌측)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금도 원폭의 피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일본에 있지만, 외국에도 똑같은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행사장 주변으로 평화공원을 찾은 참배객들이 직접 '반핵반전' '평화'의 내용을 담은 글귀 등을 적도록해 호응을 받았다. 재일·한국 청년들은 이날 '평화를 위한 호소'를 마치면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발표한 공동선언문은 일본의 재외 피폭자들에 대한 '성의있는' 대응을 촉구하고 있었다.

선언문에서 재일·한국 청년들은 "한국에 있는 원폭 피해자들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결과 일본에 강제적으로 끌려왔고 피폭을 당해 지금까지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일본의 잘못된 정책으로) 일본에 오지 않으면 피폭자라는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폭자는 어디에 있어도 피폭자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피폭자에 대한 피해조사와 성의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일본은 유일한 피폭을 당한 나라이면서도 동시에 아시아에 커다란 피해를 입힌 나라라는 양쪽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서 "일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동북아와 세계에서 핵이나 군사력의 공포를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대해 "이라크 파병은 자위대 발족 이후 전투지역에 대한 파병은 처음이며 일본 헌법 9조에 위반한다는 강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의 역사나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 나라와 전쟁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하고 평화주의를 내건 일본의 헌법이념에 따라 미국과 영국의 전쟁에 반대하고 비군사적인 (이라크) 지원을 하는 것이 일본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 한 일본인 소녀가 평화를 상징하는 새와 꽃을 그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물방울이 모여 바다 이루듯"

▲ KEY 회원과 일본인간에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놓고 즉석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평화를 위한 호소'에 참석했던 재일동포 3세 백정유씨는 "행사를 지켜보던 한 일본인이 '너희들의 주장은 알겠지만 현실성이 있냐'라는 말을 건넸다"면서 "하지만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이면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또 "행사장을 지나치던 일본인 한 아이는 평화라는 단어가 어려운지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새와 꽃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봤다"며 "이 아이의 그림처럼 새와 꽃으로 뒤덮인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한국에서 참석한 문소영(24)씨는 "먼 이국땅이지만 함께 풍물을 치고 슬픈 역사를 공유하다보니 한 민족이라는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완욱(20)씨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재일동포 청년들의 노력을 보면서 그동안 한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던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면서 "같은 젊은이로서 더욱 배우고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평화를 위한 호소는 행사는 2시간여만에 끝을 맺었지만, 재일·한국 청년들의 가슴에는 과거의 역사를 잊지말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들이 새록새록 자라나고 있었다.

"전쟁 피해자의 시점에서 평화 만들기...일본은 과거 반성부터"
KEY 오사카지부와 대구KYC가 공동을 발표한 평화선언문 전문

ⓒ오마이뉴스 이승욱

다음은 KEY 오사카지부와 대구KYC가 공동 발표한 '평화선언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원폭 피해자(피폭자)들에 대한 성의있는 대응을 요구합니다

1945년 8월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 국가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참한 교훈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반세기를 넘는 오늘날에도 (일본 밖에 거주하는) 재외 피폭자들은 병고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재한(한국인) 피폭자들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 지배한 결과, 일본에 강제적으로 끌려온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분들입니다. 피폭후 상처를 입은채 조국으로 돌아가고 어쩔 수 없이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오지 않으면 피폭자로 인정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피폭자는 어디에 있어도 피폭자'입니다. 모든 피폭자에 대한 피해조사와 조기 지원을 일본 정부에 요구합니다.

전쟁 피해자의 시점에서 평화 만들기를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피폭을 겪은 나라라는 측면과 동시에, 아시아에 커다란 피해를 일으킨 전쟁 가해자의 나라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그 양쪽을 마주보는 것 자체가 군사력에 의거하지 않고 참된 평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일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동북아시아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핵이나 전쟁의 공포를 없애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적극 나서야 합니다.

재일 코리안인 우리들은 전쟁피해자(피폭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성을 배우고 전후 보상문제 해결을 호소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히로시마 땅에서 다시 전쟁의 역사를 마주보고, 일본 및 남·북한의 피폭자들을 비롯한 전쟁피해자를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핵이나 폭력에 의거하지 않는 대화로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다짐을 합니다.

동북아의 비핵화와 세계의 핵폐기를 호소합니다

동서냉전 시대에는 미국·소련 양국은 끝없는 핵군비 확장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세계에는 언제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미·소 양극체제가 붕괴된 지금에도 핵폐기의 길은 길고 험난합니다. 핵보유국의 핵관리에는 미흡한 점이 많고 미국이 끝까지 핵이나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굴복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핵폐기나 국제적인 안전보장 체제 만들기가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위기로 긴장감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핵보유를 외교수단으로 사용하는 북한의 행동이 주변나라의 불안을 부치기는 것이란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북한을 위협대상으로 삼아서 일본과 한국, 미국이 군사력으로 맞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립된 북한이 대화를 바탕으로 한 외교를 전진시키는 환경을 정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칭하고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며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벼랑끝 외교'를 하면서 북미 양국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남과 북,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가 참가하고 있는 6자회담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북일수교를 계기로 동북아 지역에서 교류를 진전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평화구축의 바탕이 되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들은 핵무기나 군사력에 의존한 대응을 철회하고 동북아에서 비핵화를 진전시키고 대화에 의한 나라간의 신뢰를 조성해 나가는 것을 요구합니다. 동북아에서 핵위기를 평화적으로 극복하는 것으로 세계의 핵폐기를 향한 걸음에 힘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합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과 복구사업은 현지 시민들의 환영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라크 현지에서는 격렬한 저항이 있기에 전쟁상태 빠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미국의 강한 (파병) 요구 받아들이고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자위대 발족 후 전투지역에 대한 파병은 처음이며 일본 헌법 9조에 위배된다는 강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이 결정된 것은 일본 정부가 (태평양) 전쟁 후 60년 동안 과거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나 피해를 받은 아시아 각 나라와 전쟁 피해자들에게 성의있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일본 정부가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은 역사를 성의있게 청산해 왔다면 비폭력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평화만들기를 위한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본 정부는 과거의 반성과 더불어 평화주의를 내건 일본 헌법의 이념에 따라 먼저 미국과 영국의 전쟁에 반대하고, 나아가 미국을 위한 파병이 아닌 참된 국제협력의 바탕에서 비군사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일본이 해야할 역할일 것입니다.

2004년 1월 25일

'평화를 위한 호소' 참가자 일동

덧붙이는 글 | 한국청년연합회 대구본부(대구KYC)는 다가오는 2005년 원폭투하 60주년을 앞두고 원폭 피해자들의 생애를 기록하는 ‘평화길라잡이’ 사업에 참여할 자원활동가를 모집합니다.  

평화길라잡이 자원활동가는 원폭 피해자와 일대일 결연을 맺고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고, 스스로는 인권의 소중함을 배워 나갑니다. 또한 일본과 한국 정부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의 삶을 직접 들으며 이를 기록하는 구술증언 활동을 벌입니다. 

대구KYC는 오는 2월말까지 평화길라잡이 자원활동가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평화길라잡이 자원활동가는 사업 취지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구KYC는 원폭 피해자들의 구술증언을 기록하는 평화길라잡이 사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후원도 받고 있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대구KYC 053-477-0515 / www.tgky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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