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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꽝과 논이 친하다. 둘이 친구다.
ⓒ 느릿느릿 박철

7년 전 교동으로 이사 왔을 때 한창 못자리 설치 작업으로 분주하던 때였다. 사람들 얘기 중에 생전 들어보지 못한 말이 나오는데 그게 ‘물꽝’이라는 말이었다. ‘물꽝에 물이 있느니, 없느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얼마 지나서 모내기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 일하는 모습도 볼 겸, 새참도 얻어먹을 겸, 모내기하는 논엘 나가 보았다. 그런데 논배미마다 조그만 연못이 있지 않은가? 이상도하다 싶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게 바로 ‘물꽝’이라는 거였다.

물을 받아두었다 논에 물을 대주는 저수지인 셈이다. 무척 신기했다. 물꽝이 큰 것은 몇 백 평도 훨씬 넘고, 작은 것은 5,60평정도 하는 규모도 있다. 물깊이는 가장 깊은 데는 사람 키 정도라고 한다.

▲ 우렁이가 많은 물꽝이다. 우렁된장국은 강한옥 할머니가 잘 끓이는데. 아 먹고 싶다.
ⓒ 느릿느릿 박철

“목사님, 우리 모내기 다 끝내놓고 그물질 한번 합시다. 그물질 한번하면 고기 엄청 많이 나와요.”
“어떤 고기가 잡히는데요?”
“붕어, 잉어, 가물치 피라미 별거 다 나와요. 가물치 잡아 회 쳐 먹으면 맛이 끝내줍니다. 뇌를 맑게 해준다나 뭐라나. 그거 먹으면 오줌발이 소 오줌발처럼 굵게 나와요.”


교동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는 섬이다. 서해안 최북단으로 황해도 연백을 지척에 두고 있다. 바다건너 연백의 너른 평야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집들도 보이고 사람들 움직이는 것도 보인다. 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대남 선전방송을 하더니 요즘에는 대남방송도 거의 하지 않는다.

▲ 첨벙 뛰어들어 멱이라고 감을까? 널찍하고 규모가 크다.
ⓒ 느릿느릿 박철

“목사님. 연백에는 일제시대에도 수리조합이란 게 있어 물 걱정 안하고 농사를 지었어요. 들이 넓고, 그러니 옛날부터 연백평야하면 땅이 비옥하기로 유명하고 쌀 품질이 좋고 그랬지요. 6.25 전쟁 전에는 지석리 밧머리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 연백에서 품 팔고 그랬어요.”

“그럼 당시 교동은 살기가 어떠했나요?”
“말 마시겨. 교동은 저수지가 있나 뭐가 있나.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짓는 거지. 그때는 모내기를 지금처럼 안하고 마른땅에 직파를 했어요. 물이 없으니 물을 제때 대주지 못해 지금 수확량 삼분의 일도 안나왔어요. 비가 안 와서 농사도 못 짓고 작파할 때가 많았시다. 지금은 땅을 뚫어 관정을 해서 물을 퍼 올려 농사를 짓게 되었으니 세월 좋아졌시다.”


▲ 이준용 씨가 모내기를 하다 잠시 쉬신다. 허리가 아프신 모양이다.
ⓒ 느릿느릿 박철

지하수가 없고 지금처럼 고구리 저수지나 무학리 저수지가 없었을 때, 물꽝은 교동의 생명의 젖줄 역할을 했다. 비가 올 때 물꽝에 물을 가둬 두었다가, 그 물로 모내기를 하고 농사를 지었다. 물꽝이 없었으면 그나마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물꽝이 있는 논배미는 당연히 값도 더 나갔다. 물꽝을 팔 때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식수는 동네 우물에서 길어다 먹고, 농사는 물꽝에 저장해놓은 물을 이용했다. 선조들의 삶의 지혜였다. 저수지는 없고, 제 때 물을 대줄 수는 없고, 하는 수 없이 선조들은 땅을 깊숙이 파서 개인 저수지를 만든 것이다. 지금처럼 무슨 장비가 있었겠는가? 삽이나 괭이를 이용해서 구덩이를 판 것이다.

▲ 물고기 한 마리가 한가롭게 놀고 있다. 저 혼자인가?
ⓒ 느릿느릿 박철

물꽝이 없었으면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교동사람이 살 수 없었다. 그러니 물꽝은 교동 사람들의 생존에 가장 큰 일등공신인 셈이다. 또 물꽝은 옛 추억이 담겨있는 공간이다. 여름철 애들은 물꽝에 가서 수영을 하고 여자들을 한밤중에 삼삼오오 물꽝에 몰려가 멱을 감았을 터이다.

가난하고 늘 허기졌던 시절, 물꽝은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모내기를 마치고 물이 줄어들면 그물이나 뜰채를 들고 들어가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고, 어쩌다 가물치라도 잡히면 남자들은 회를 쳐 그놈을 안주로 막걸리를 자셨을 게다. 사람들 얘기로는 물꽝에서 물놀이하다 익사하는 사고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경지 정리가 안된 구간에서는 물꽝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 펌프가 물꽝의 물을 논에 대고 있다. 작은 것이 힘들겠다.
ⓒ 느릿느릿 박철

동네 젊은이들이 그물질을 해서 가물치를 잡으면 꼭 나를 부른다. 짓궂은 농을 해가면서 가물치회를 먹는다. 그 맛도 좋거니와 인심도 좋고, 정을 나누는 모습도 좋고 물꽝은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참 고마운 물꽝이다.

무학리에 수십만 평의 대형 저수지가 생기고, 교동일대가 경지정리 되면서 이제 남아있는 물꽝도 머지않아 다 사라지고 만다. 그 생각을 하니 잠이 안 온다. 경지정리로 인해 물꽝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데,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내년이면 다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누가 물꽝에 대한 기록이나 사진을 남겨놓을 사람이나 기관이 있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백년 동안 교동사람들의 생명을 지켜 준 고마운 물꽝이 세월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아침 일찍 달려가 물꽝 사진을 찍었다. 가능한한 교동에 남아 있는 모든 물꽝을 사진으로 남겨 놓으려고 한다.

▲ 지난해 갈대가 쓸쓸하다. 숨어서 연애하기 안성마춤이다.
ⓒ 느릿느릿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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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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