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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교육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안 쓰고, 이런 얘기만 쓰겠죠?"

박근혜 의원은 어제(1월 31일) 오찬 간담회에서 <오마이뉴스> 기자가 긴급조치 관련 사건들에 대한 정치인으로서의 의견을 묻자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BRI@박 의원은 "그 문제 얘기하면 교육에 대한 얘기는 묻혀버린다", "교육이 온 국민의 관심사 아니냐"며 답변을 피하다가 결국 문제의 '정치공세' 발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기사에 쓰지는 않았지만 박 의원이 이같은 흐름을 '한풀이 정치'라고 깎아내린 대목도 문득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오찬 자리에 있었던 언론사 기자들이 하나같이 <박근혜 "정치공세...">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으니 박 의원으로서는 집요하게 질문을 한 기자가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기자도 '박 의원과 측근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질문을 꼭 해야하나'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한 방송사 기자는 "기자라면 당연히 물어봐야 할 얘기지만, 당사자에게는 너무 아픈 질문 아니냐"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그럼에도 인혁당 재심 등으로 인해 유신시절 얘기가 다시 화제가 되는 마당에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정치지도자에게 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러나 박 의원의 답변을 듣는 과정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은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박 의원이 사무실에서 교육 분야 기자회견을 할 때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하려고 하자 한선교 대변인은 "(점심식사 자리에) 가서 하시라"고 만류했습니다.

인혁당 사건 재심 판결이 내려진 후 저로부터 두어 차례 전화를 받았던 한 대변인도 제가 무슨 질문을 하려는 지 충분히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박 의원의 명료한 답변만 받았더라도 제가 굳이 식당에 따라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제가 박 의원의 앞쪽에 자리를 잡자 이번에는 언론특보들이 "오늘은 여기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시죠?", "살살 좀 합시다"라고 눈치를 주더군요. 동료기자들이 "질문 좀 하게 놔둬라", "사무실에서 나온 얘기만으로는 기사 못 쓴다"고 항의하자 특보들은 마지못해 물러섰습니다.

<조선> 출신 '알 만한 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31일 낮 기자간담회를 마친뒤 식사자리에서 인혁당 사건 재심과 유신시절 판사 이름 공개 등 현안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이날 기자에게 가장 높은 '장벽'으로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박 의원 옆자리에 있던 안병훈 캠프 본부장이었습니다. 안 본부장은 <조선> 편집국장과 부사장, 신문편집인협회 회장 등을 지낸 언론계의 거물입니다. 언론인의 정치 참여에 비판적인 여론도 있지만, 정치권에 기자들의 고충을 잘 이해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기자들에게 썩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데 '알 만한 분'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기자 "(박근혜 의원에게) 정치지도자로서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안병훈 본부장 "이봐, 오늘은 교육 얘기만 해!"

기자 "의원님께 지난 번에도 여쭤보려고 했던 건데."
안 본부장 "(삿대질을 하며) 어허, 그만 하라니까."


▲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31일 낮 기자간담회를 마친뒤 안병훈 총괄본부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장소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안 본부장의 '태클'에 약간 짜증이 난 기자는 "그럼, 본부장님이 대신 답변하시죠? 유신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도 지내셨는데…"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제서야 안 본부장은 "내가 무슨…"이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오찬이 끝난 뒤 몇몇 기자들이 "왜 질문 자체를 못하게 하냐"고 안 본부장에게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한 일간지 기자는 "교육문제에 대한 기사만 나가길 바랐다면 보도자료를 뿌렸어야지, 왜 불렀냐?"고 볼멘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박 의원이 정책 얘기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언론에 거의 보도가 안되는 것에 대해 측근들이 서운해하는 심정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기자가 예민한 문제를 묻는 것을 막는다고 해서 바라는 대로 기사가 나올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도 오산입니다.

새해 들어 '4년 연임제 개헌'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청와대가 "대통령에게 '개헌' 문제 말고는 질문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다면 기자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박 의원이 혹시 청와대에 입성하더라도 "대통령에게 이런저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보도지침'을 내리는 참모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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