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농촌에서는... 농촌의 완행버스와 정류장 모습. 승객이 많지 않아 한적하다. (이 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박도·오마이뉴스 조호진

요즘 약 40분 거리의 원주 집과 사슴농장을 매일 출퇴근하고 있다. 아내가 최근 서울에서 식당을 개업하신 장모님의 일을 돕느라 한 달 동안 주말부부로 떨어져 있게 돼 아이들을 돌보게 된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라 마음을 놓은 탓인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서둘러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주고 하루 일과를 점검해준 뒤 농장으로 향했다.

할머니 손짓 외면한 버스기사, 그리고 승용차의 호의

@BRI@원주군 소초면 소재지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신호대기로 멈춰섰는데 맞은편 버스정류장을 막 출발하는 버스 뒤로 할머니 한 분이 열심히 손짓을 하며 뛰어가는 광경을 보았다.

말이 '뛰는' 것이지 발걸음은 더뎠다. 연세가 팔십은 족히 됐을 그 할머니는 마음만큼 발이 따라주지 못하는 듯 했다. 버스를 세워보려는 급한 마음에 열심히 손만 휘저으실 뿐이었다.

출발하는 버스 기사의 얼굴을 보니 흘깃 뒷거울을 통해 할머니를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냉정한 표정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할머니는 버스가 백여 미터나 더 갔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손을 휘저으며 버스 뒤를 따라가다가 난감한 표정으로 멈춰섰다.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농촌 지역은 버스를 한 번 놓치면 다음 버스를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 대개의 버스 기사들은 먼 곳에서 달려오는 승객이 있으면 잠시 기다렸다가 태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할머니가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않고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댄 것도 혹시나 버스기사가 기다려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을 것이다.

실망한 표정으로 버스정류장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할머니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멈춰섰다. 신호가 바뀌어 출발할 때 보니 잠시 머뭇거리던 할머니가 그 차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멀리서 할머니가 버스를 향해 손흔드는 광경을 본 사람이 고맙게도 할머니를 태운 모양이다.

1~2분만 기다려도 충분히 태우고 갈 수 있는데도 매정하게 출발해버린 버스 기사, 반면 기꺼이 생면부지 할머니의 발이 되어준 승용차 운전사의 상반된 인정을 한 순간에 목격한 셈이다.

정류장 간격·배차시간 조정이 그렇게 힘든가

대중교통의 불편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웬만한 농촌 세대에도 차 한 대 정도는 있다. 그러나 운전을 할 수 없는 노인들만 사는 세대는 읍내 나들이가 여간 큰 행사가 아니다. 버스시간을 잘 숙지해야 하고 또 약 1㎞ 간격으로 지정돼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가야 하니 넉넉히 시간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서야 한다.

날씨라도 궂은 날이면 더욱 고역이다. 눈·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을 곳곳에 설치하고, 정류장 간격도 융통성 있게 조정하는 것이 왜 그리 힘든 일인지….

서울에서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앞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면사무소 앞마당에서 실시하는 노인 무료 이동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 장터에 오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놓쳐 오후 2시 30분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어디쯤 왔느냐는 것이다.

아침에 오면서 목격한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더니 부모님은 다투어 불만을 쏟아내신다.

아버지는 엊그제 마을에서 볼 일을 보시고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 버스가 와서 세웠더니 버스기사가 "왜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차를 세우냐"고 짜증을 내더라며 마을 중간쯤에 정류장을 하나 더 지정해 주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 하셨다.

어머니는 며칠 전 안흥에서 버스를 탔는데 승객들이 대부분 노인인데도 버스기사가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며 "나이든 노인들도 차에서는 담배를 안 피는데…"라고 혀를 차셨다.

세심한 행정 있으면 불편함 줄일 수도

농촌인구가 줄고 노령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대중교통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도회지에 비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장날을 빼고는 고작 서너 명의 승객만을 태워서 운행해야 하는 버스회사의 고충과 행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주 승객으로 상대해야 하는 버스기사들의 어려움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는 여유를 가진다면 불편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또 농촌 특성을 고려한 세심한 행정도 농촌을 불편함만 가득 찬 곳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버스, #승용차, #서울, #정류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