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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집값 폭등은 중산층 주거안정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에 거주하되 소유하지 않는 임대주택이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 주거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소득층 주거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박사를 만나 현재 공공임대주택정책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신문로 한국도시연구소 사무실에서 이뤄졌으며, 1.31대책 발표 뒤 전화 인터뷰를 추가했다. <편집자주>
▲ 지난 25일 열린 주공 주택도시연구원 연구성과발표회에서 임대주택 관련 연구결과를 살펴보고 있는 참가자들.
ⓒ 오마이뉴스 김시연
"2017년까지 340만호를 확보해 장기임대주택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20%로 높이겠다."

1월 31일 정부는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까지 예정된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외에 2017년까지 10년 만에 장기임대 260만호를 추가 공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여기엔 민간자금을 끌어들여 연간 7조원대 '국민임대펀드'를 조성하고 30평대 중형임대 50만호를 짓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뒤따랐다.

장기임대비율 20% 확보, 계층혼합(소셜믹스)을 통한 임대주택 이미지 개선 등 1.31대책의 면면만 살펴보면 한국도시연구소의 주거복지정책과도 맥이 닿은 듯 보인다. 매입 임대주택제도를 제안하고 주거기본법 제정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등 서민 주거권 연구에 오랫동안 매달려온 홍인옥 박사는 이날 정부 발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31대책] 임대주택으로 두 마리 토끼 잡겠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어떤 단체?

한국도시연구소는 1986년부터 도시빈곤지역에서 현장 활동을 주로 하던 <도시빈민연구소>가 기존의 현장성에 정책연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공간환경연구회>(현 공간환경학회) 등으로부터 진보적인 학자들을 영입하여 1994년 10월에 새롭게 창립되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우리나라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며, 시민이 주체가 되는 도시사회운동을 모색하고자 하는 순수 민간 연구기관(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설립 이후 매년 이러한 목적에 맞는 내부 기본연구과제 및 외부 수탁연구과제를 수행해 왔으며, 지역주민운동 등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운동단체들과 연계하여 현장운동이 관여하는 각종 사안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한국도시연구소 자료 발췌
"(1·31대책은) 민간 부문의 공급 위축을 공공 부문으로 보완하겠다는 것인데, 시장(민간)에서 공급할 계층과 공공이 담당해야 할 계층은 달라요. 지속적으로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의지는 바람직하지만 임대주택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정작 잡아야 할 토끼마저 못 잡게 될까 걱정이에요."

이번 발표가 서민뿐 아니라 전체 주택시장 안정에 초점을 맞춰 목표량을 상향 조정하다 보니 오히려 임대주택정책의 원래 목적인 서민 주거안정 측면에선 더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민간 임대시장이나 구시가지 정비계획을 고려하지 않고 그린벨트 해제나 국공유지를 활용한 신규 개발에 치중할 경우 부작용만 크다며 무리한 공급량 중심의 계획보다 택지 확보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31대책에 따르면 국민임대 역시 2012년까지 예정된 100만호 외에 2017년까지 50만호가 추가 공급된다. 홍인옥 박사는 '100만호 건설', '50만호 추가 건설'처럼 목표 물량에 얽매여 서민주거안정이란 국민임대주택의 도입 취지가 자꾸 왜곡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임대주택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70% 이하 서민에게 공급되는 분양전환 없이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다. 대한주택공사에 따르면 2006년까지 공급됐거나 사업승인받은 국민임대주택은 모두 47만호.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입주한 물량은 아직 10만호에 불과하다.

[국민임대] "몇 백만호식 물량 확보서 자유로워져야"

"물량에서 자유로워야 해요. 이미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나요? 역대정부가 몇 백만호 건설을 외쳤지만 항상 못 채우고 끝났어요. 늘 정치적 목적만 앞서고 서민주거안정은 구호로 그칠 뿐이었죠. 진정한 주거 안정을 위해선 물량 목표를 정하기보단 지역 사정에 맞게 임대주택 일정비율 확보를 법제화해야 해요."

국민임대 신규공급뿐 아니라 기존 민간 임대시장까지 고려한 매입 임대주택사업을 통해 물량을 점차 늘려 나가는 한편 저소득층 임대료 보조, 지역공동체 구성 등 다양한 주거복지정책을 함께 처방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린벨트를 훼손하는 국민임대 공급 대신 기존 다가구, 다세대 매입 임대주택 확보나 저소득층 임대료 보조에 치중해야 한다는 일부 환경단체나 진보단체의 주장에도 홍 박사는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선진국에 비해 임대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현실에선 임대주택을 어느 정도 확보한 뒤 임대료 보조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것.

"수도권, 특히 서울은 개발가능한 지역이 없어요. 도시 전체가 이미 개발된 상태여서 매입 임대주택만으론 당장 5만호 채우기도 어려워요. 그린벨트에 안 짓는 것만 능사는 아니죠. 결국 대규모 단지 조성도 같이 가야 해요."

[중형임대] "5·6분위 중산층은 시장에 맡겨야"

▲ 어떻게 주공 임대아파트 질을 확보할 것인가도 과제다. 사진은 주택공사의 판교 신도시 견본주택 전시장 모습
ⓒ 오마이뉴스 안홍기
중산층을 위한 30평대 중형임대 50만호 공급계획 역시 부정적이다. 중형임대가 늘면 '임대=가난'이라는 등식에선 벗어날 수 있겠지만 물량만 늘린다고 '소유 중심'의 주거문화를 바꿀 순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득 5·6분위에 해당하는 중산층의 주거문제는 민간이나 각 지자체에 맡기고 정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저소득층 주거안정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참여정부는 소득수준에 따라 계층을 10분위로 나눈 뒤 7분위 이상 고소득층은 시장에 맡긴 상태에서 최저소득층인 1분위에겐 다가구 매입임대나 소형 국민임대, 2~4분위에겐 국민임대, 중산층인 5~6분위에겐 중소형주택을 싸게 공급하거나 주택구입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써왔다. 1·31정책의 특징은 중형임대를 크게 늘려 임대공급 대상을 5·6분위까지 확대하겠다는 것.

"임대주택이 규모가 작고 방수가 적어 안 가려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경제적 여건도 되고 가구원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 중형임대도 전체의 10% 정도는 필요해요. 하지만 중산층 대상 중형임대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민간 시장에서 할 일이에요."

한 발 더 나아가 홍 박사는 앞으로 주택 문제는 중앙정부나 주공이 아닌 각 지자체에서 책임지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까지 공공주택정책을 중앙(주공)이 너무 좌지우지하다 보니 지자체와의 갈등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

중앙정부는 주택청을 설립해서라도 주택경기활성화대책 등 경제문제를 배제한 상태에서 주택정책을 주거복지개념으로 접근하는 한편 지자체 권한을 분산시켜 그만큼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층갈등] "임대주민 위화감은 기우...섞어 살수록 갈등 없어져"

공공임대주택정책의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계층 갈등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분양단지 안에 일부 포함된 임대주택이나 서로 이웃한 임대-분양단지 주민간의 학군 갈등, 통학로 폐쇄 등이 많이 부각됐다.

하지만 도시연구소에선 이웃한 주민들 간의 직접적 충돌은 장기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영구임대단지처럼 지역적으로 고립될 경우 슬럼화 등 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아직 검증되진 않았지만 한 단지 또는 한 동 내에 임대와 분양을 일정 비율 섞어 짓는 '계층혼합(소셜믹스)' 방식 도입은 바람직하게 받아들인다.

"계층혼합에 대해선 전문가들 의견도 엇갈려요. 오히려 섞어놓으면 계층간 위화감 때문에 저소득층에 더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해요. 하지만 위화감은 누구의 입장일까요? 오히려 분양주민 쪽에서 그렇게 추측하는 건 아닌가요?

분양 주민 쪽에서 봤을 때 교육 문제에서 극명하긴 하지만 일상적인 갈등 요인은 없어요. 오히려 집값이 가장 큰 문제겠죠. 임대 쪽에 맞벌이나 결손가정이 많다 보니 아이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확률적인 것일 뿐인데 접촉 자체를 꺼리는 건나 편견일 뿐이죠. 분양 주민들은 우리끼리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주거안정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거죠."

홍 박사는 주민간 계층 갈등은 상당 부분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한다. 단적으로 임차인대표회의는 임의 조직이고 입주자대표회의는 법적 조직이다 보니 관리사무소에서도 임차인회의를 소홀히 해 분양과 임대주민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임대주민과 분양주민이 섞여 살면 서로 역할모델이 돼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요. 실제 중계동 50년공공임대와 분양단지 사이에 1년을 싸우더니, 좀 지나고 나니 분양단지에선 임대주민들 화합하는 게 부럽다, 임대단지에선 분양은 단지 관리가 잘 되더라, 하며 서로 보고 배울 게 있다고들 해요."

[뉴타운정책] 취지 못 살리고 개발이익 욕구만 키워

▲ 서울 신림동의 한 주공 임대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남소연
"뉴타운이 사람들에게 잠재돼 있던 개발이익에 대한 욕구만 일깨웠다고 그래요. 취지나 계획 자체는 참신했지만 운용과정에 잘못이 있었어요."

홍 박사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뉴타운 정책 역시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애초 취지는 생활 단위별 특성에 맞게 장기적 계획이 이뤄져야 했는데 전부 대규모 아파트단지 건설로 인식되다보니 상태가 양호한 지역까지 포함시켜 원주민 세입자들이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균형개발 취지에 맞으려면 원주민 생활이 바뀌는 개발이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달라진 공간에 적합한 주민만 살아남고 원주민들이 다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오히려 예전엔 단독, 다세대나 연립처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존재했는데, 그나마 개발되면서 저소득층이 아예 갈 곳 없어진 거죠."

홍 박사는 뉴타운에 아파트단지만이 아니라 저렴한 소형주택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을 살린 타운하우스나 저소득층 주거와 상가를 결합한 형태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

"우린 재건축, 재개발, 주거환경개선 말고는 없어요. 정책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급하게 진행된 거죠. 느리게 가야 하는데, 이젠 주민 표를 의식해 어쩔 수 없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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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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