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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민주노총은 아직도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시대정신에 입각한 운동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20년 전과 비교할 때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변화를 주장하면 변절자, 개량주의, 어용이라고 매도된다. 민주노총은 운동방식에서 수구다."

민주노총이 정부의 폭력시위 불가론에 반대하며 총파업 총궐기 투쟁 방침을 밝힌 가운데,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25일 "전투적 조합주의에서 벗어나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집회문화를 창출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노사관계 로드맵을 둘러싸고 이미 불꽃 튀는 한판 싸움을 벌인 바 있는 두 노총은 이번에 집회시위문화를 놓고 제2라운드에 돌입하게 됐다. 지난 21일에는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향해 '파업 안하는 옐로 노조'라고 비난했고, 이에 맞서 한국노총은 '뒷골목 노조'라고 힐난했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날 오후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앞서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민주노총은 아직도 80~90년대에 천착한 운동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며 "20년 전과 비교할 때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회 모든 요소가 변화하고 있는데도 민주노총은 그때 그 사고방식을 지키고 있다"며 "변화를 주장하면 변절자, 개량주의, 어용이라고 매도돼 낡은 사고를 가진 그들과 대화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이 10~20년 전 수구적 행태를 보여 진보진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침체됐던 것처럼 지금은 민주노총이 마찬가지로 수구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노동계 집회에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정치민주화 시기에 형성된 전투적 조합주의가 아직도 작용되고 있다"며 "80년대에는 노동자-대학생-시민이 함께 어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공동의 사회적 목표, 정치적 민주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같은 목표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그는 "노동운동이 폭력시위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은 문제"라며 "언론이 폭력시위를 부각시킨다는 등 남 탓하지 말고, 스스로 정당성을 빼앗길만한 빌미를 주어서도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폭력시위 근절 조치로 일반 국민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며 "정부가 이 기회에 노동자와 농민, 다수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용득 위원장은 이날 전국노동자대회 대회사를 통해서도 "민주노총은 대안 없이 무조건 투쟁구호만 남발하고 폭력과 무단점거, 방화위협 등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반성이나 사과는 하지 않고 마치 독립운동하는 양 착각에 빠져 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시대착오적인 민주노총의 인식과 행동양식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연대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다음은 이용득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폭력시위, 우리의 정당성과 호소력 떨어뜨려"

▲ 25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조합원들이 '노사정합의 입법쟁취'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정부는 지난 24일 불법 폭력시위에 더 이상 관용은 없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노동계가 폭력시위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집회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다. 국민이 집회를 통해 요구사항을 밝히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당연히 보장돼야 할 권리다. 다만 우리 노동계 집회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정치민주화 시기에 형성된 전투적 조합주의가 아직도 작용되고 있다.

사업장 안에서는 권력과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이 합리적 선을 넘어서는 요구를 하기 위해 각종 투쟁을 전개해 생기는 문제가 발생하고, 길거리에서는 시위를 통해 공권력과 전면전을 치러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전투적 조합주의가 과거에는 국민들에게 먹혔지만 요즘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80년대에는 노동자-대학생-시민이 함께 어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공동의 사회적 목표가 있었다. 모두가 바라는 정치적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전투적인 투쟁이 먹혀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같은 공동의 사회적 목표가 사라졌다."

-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그야말로 사업장 현안에 집중하는 순수 노동문제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의 가치관도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가치관도 변화된 사회 환경에 따라 바뀌는데 대중운동인 노동운동이 과거의 생각만 갖고 대응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국민들이 노동운동에 관용적이었다. 집회에 대해서는 아직도 관용을 베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폭력시위를 함으로써 우리의 활동에 대한 정당성과 호소력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으며, 외부에 폭력적으로 비춰지니까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 최근 한국의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진단이 나온다. 같은 연유라고 보나.
"한국의 노동조합이 전 세계 최저의 조직률을 나타내는 노동조합 조직 후진국이다. 왜 그런가. 국민이 노동운동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요구를 잘 봐야 한다. 한 자리 숫자로 조직률이 하락한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국민과 함께 하는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사업장 이기주의로는 노동운동이 설 땅이 없다. 국민 대다수와 함께 가는 운동이 성공의 열쇠다.

이제는 순수한 노동운동으로 돌아가 집회시위를 통해 우리의 요구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 폭력을 사용하면 우리의 요구사항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폭력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 노동운동의 요구가 뭔지 관심이 없어진다. 자꾸 눈살을 찌푸릴 일만 생기면 안 된다."

- 언론이 일부 폭력시위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부정하지 않는다. 언론의 편향된 보도행태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조 조직률이 최하위로 전락한 것도 언론의 탓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폭력시위를 하지 않았다면 언론이 그렇게 호도할 리도 없다. 군사독재 하에서 언론이 정론직필하지 않았어도 국민들은 정권의 문제가 뭔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해도 국민들이 보고 듣고 알게 되는 사실이 있는 것이다.

언론 탓만 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이 폭력을 사용해서 일반 국민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을 바꿔나가야 한다.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 민관공동위원회는 얼마 전 사회협약을 통한 문제해결의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회협약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나.
"집회문화를 주도하는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대화의 공간에 참여하면서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모를까, 협약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억지로 나가서 협약에 서명한다고 한들 문제가 해결되겠나. 또 외부가 협약을 하라고 압박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겠나.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해당 단체의 문제의식에 변화가 생기면 그런 사회협약이 없어도 집회문화는 바뀔 것이다."

"민주노총은 운동방식에 있어 수구"

-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민주노총과 함께 나설 의향은 없나.
"운동기조가 다르다. 민주노총은 아직도 80~90년대에 천착한 운동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20년 전과 비교할 때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사회 모든 요소가 변화하고 있는데도 민주노총은 그때 그 사고방식을 지키고 있다. 변화를 주장하면 변절자, 개량주의, 어용이라고 매도된다. 낡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변화하자는 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는 없다. 대화가 어렵다.

민주노총은 운동방식에서 수구다. 한국노총이 10~20년 전에 수구적 행태를 보여 진보진영으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때 진보진영과 함께 하지 못해 침체됐다. 마찬가지로 민주노총이 지금 수구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미래에 대핸 부분으로 방향을 설정해 주도해가고 있다. 나도 예전에 그 대열이 있지 않았나. 20년 전 내가 했던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다."

- 지난 한미FTA 집회를 계기로 정부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29일 예정된 범국민운동본부의 모든 집회를 불허했다. 정부의 처벌과 단속 위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다소 우려스럽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그래서 노동자나 농민들도 정부에 빌미를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미FTA 저지가 목적이지 폭력이 목적은 아니지 않나. 성숙된 시위문화를 통해 요구를 관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 기회에 노동자와 다수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 25일 집회는 어떻게 된다고 보나.
"오늘 집회도 솔직히 우려된다. 나로서는 모험이다. 우리 조합원들이 한번 모이면 공권력과 부닥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뭐 그런 게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장 조합원들이 내 말에 공감하고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평화집회가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다수 조합원들이 이게 틀렸다고 한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 방향이 옳기 때문에 다수 조합원들이 평화집회 노선에 따른다고 생각한다."

"한국노총, 암환자도 배려했으면"
노동자대회에 밀려난 호스피스 법제화 캠페인

▲ 암시민연대(대표 염창환)가 2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호스피스 법제화 캠페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장윤선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노동조합 활동도 중요하지만 암환자들의 인간다운 죽음을 위한 법제화 활동도 중요합니다. 내 밥그릇만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아픈 처지에 놓인 환자들도 좀 배려해주세요."

유예진 암시민연대 사무국장은 2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호스피스 법제화 캠페인' 행사를 준비하다가 <오마이뉴스>와 만나 한국노총에 대해 성토했다. 지난 1일부터 무려 1개월여 전국의 병원과 호스피스 단체를 대상으로 홍보활동을 해온 캠페인 장소를 갑작스레 변경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었다.

당초 25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는 암시민연대(대표 염창환)의 '호스피스 법제화 추진 캠페인'이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서울광장에서는 한국노총의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유 국장은 지난 15일 서울시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한국노총이 노동자대회를 치르기 위해 남대문서에 장소사용을 신청해서 부득불 한국노총과 장소 협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유 국장은 한국노총측과 두차례 전화통화를 협의했다. 지난 20일 한국노총은 암시민연대측에 "노동자대회 장소를 바꿀 수 없으니 딴 데로 옮겨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대신 한국노총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아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암시민연대측은 이같은 한국노총의 요구를 거절하고, 행사장소를 청계광장으로 바꿨다. 규모도 대폭 축소했다. 내빈으로 참가하겠다고 밝혔던 저명인사들도 여러 이유를 대고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고대구로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권해연(50)씨는 "약자가 어쩔 수 있겠냐"며 "한국노총이 데모한다는데 힘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답답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권해연씨는 "그들이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지만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온국민이 다같이 잘살기 위한 방법이라면 뭐든지 찬성하겠지만 이렇게 나오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측은 암시민연대와 장소문제로 시비가 붙자 전국노동자대회에 시민연대사를 끼워넣어 발언권을 주었으나, 염창환 대표는 이를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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