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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은 노 대통령 10.26 재선거 여파가 열린우리당 지도부 총사퇴로 번진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루마니아 확대정상회담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 노 대통령.
ⓒ 연합뉴스 백승렬
그것은 반란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은 동요하지 말고 정기국회에 전념해달라"며 사실상 문희상 체제 지지를 선언한 바로 다음날, 열린우리당 연석회의는 문희상 체제를 무너뜨렸다. 노 대통령의 주문은 무시되었고, 연말까지는 문희상 체제가 유지되리라던 일반의 예상을 뒤엎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저변에는, 노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쇄신 요구를 차단하려한데 대한 반감이 깔려있었다. 연석회의에서는 노 대통령을 향한 직설적인 비판들이 쏟아져나왔다.

"대통령이 신이냐", "재선거 패배의 근본적 원인은 청와대에 있다", "대통령은 정치문제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은 당을 부속물로 생각한다"…. 심지어 "오만의 극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전에 없던 광경이었다. 그동안 맺혀있던 불만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모습이었다. 청와대를 향한 열린우리당 내부의 정서는 심상치않은 수준에 도달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터져나오는 청와대 비판 가운데는 시류에 편승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는 이해가 되는 항변들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지못하는 청와대

문희상 체제가 민생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직후, 노 대통령은 느닷없이 대연정 제안을 꺼내들었다. 대연정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여당이 시도했던 민생정치·양극화 해소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여당은 고작해야 대통령의 말만 뒤쫒고, 할말조차 못하는 무기력한 정당으로 취급당했다.

물론, 여당의 책임도 존재한다. 그러면 여당은 무엇을 했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대연정론이 나오기 전에도 23대 0의 참패를 당한 것이 열린우리당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열린우리당의 근원적 허약성도 선거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의 지지도가 여당 지지도보다 높다"며 청와대 책임론을 반박하는 청와대쪽의 이야기는 듣기 거북하다. 청와대 쪽은 아직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분위기이다.

노 대통령은 "재선거 결과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라고 밝혔지만, 이 말이 인적 쇄신이나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내 책임'이라는 것은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고, 지금까지 하던대로 계속 가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보는 청와대와 여당 사이의 거리는 무척 멀어보이고, 청와대와 국민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보인다. 아직도 민심의 소재,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내놓을지 모르는 '비장의 카드'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민심이 떠나간 마당에 무슨 비장의 카드가 있을 수 있을까. 당적이탈, 개헌제안, 거국내각 제안…. 그 이상의 '깜짝 카드'가 나온들 민심을 다시 잡을 수 있을까.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해답은 정도(正道)를 걷는 길밖에 없다. 어떤 '깜짝 카드'로 국면을 반전시키기에는 골이 너무 깊어졌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길밖에 없다.

그 구체적인 표현은 청와대의 쇄신으로 나타나야 한다. 청와대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쇄신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론이 나온다.

청와대 쇄신의 요체는 두가지이다. 우선 노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그래서 고집스러움으로 비쳐지기까지 하는 모습을 변화시켜야 한다.

노 대통령이 누구의 얘기도 잘 안듣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정치권 안팎에 회자된지도 오래이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람들이 흔히 드러내는 고집스러움을 노 대통령도 그대로 보여왔다. 좀더 몸을 낮추어 귀를 열고 많은 사람들의 소리, 국민의 소리를 듣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독선과 고집에 대한 정서적 반감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청와대의 인적 쇄신이다. 현안이 생겨날 때 청와대는 종종 국민정서와 엇박자를 보여왔다. 대연정 논란의 와중에서 청와대 사람들이 보인 모습은 단적인 예였다. 국민 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대연정론을 청와대 사람들은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의 뜻을 무조건 따르며 옹호하는 것이 청와대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청와대와 국민 사이의 거리를 더욱 멀게 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10.26재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28일 총사퇴를 결정했다. 문희상 의장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함께 총사퇴를 발표한 뒤 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코드'를 맞출 수 있는 청와대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의 코드보다 국민과의 코드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많이 있도록 인적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도 대통령 자신이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는 전제가 성립할 때만 의미가 있는 일이다.

침몰인가, 부활인가

어지간한 대응책으로 여권의 위기가 극복될 것 같지는 않다.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여권이 민의의 냉정한 심판을 받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다른 묘책이 있을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백지상태에서 당을 다시 만드는 자세로 근본적인 쇄신을 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 역시 민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한 자기쇄신없이 정동영·김근태 두 장관이 당으로 복귀한들 무슨 효력이 있을까.

여권은 이제 침몰해버릴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 자기를 버리려는 마음과 결단이 있어야 침몰을 막을 수 있다. 변화는 청와대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청와대 쇄신에 달려있다. 노 대통령의 사고전환과 결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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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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