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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사립학교법이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이규택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 아이지키기 운동본부`(가칭) 본부장 등 의원 20여명은 12일 오전 11시께 국회의장 면담 형식으로 의장실을 방문한 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전국 초중고 교장회의 추천을 받아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당선된 김영숙 의원(맨 왼쪽)이 의장실에서 김원기 의장이 나간뒤 사학법 개정안 통과를 비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거의 치유가 불가능해 보이는 중환자, 이것이 우리의 사립학교이다.

말이 사립학교이지 그 대부분은 실제로는 국민의 피땀어린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고보조금과 등록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비상식적인 인사 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수십·수백억씩의 회계부정과 공금횡령 등으로 학교가 복마전처럼 되어도 끄떡없는 것이 사학 운영자들이 차고앉은 기득권이었다.

오죽했으면 이번 국회의 사립학교법 개정 소란 중에 어느 의원 입에서 '사학이 세긴 세구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지 않는가?

이제야 겨우 부패 사학재단과 비리 투성이의 사립학교에 우선 급한 대로 최소한의 감시와 견제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물론 이 정도로 중증의 병세를 당장 호전시키기는 어려울 테지만, 우선 응급처방은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던 사립학교법이 1년여 동안이나 국회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감옥'을 벗어나 겨우 출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악된 지 15년만에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나와 햇빛 조금 쐴 수 있는 문간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딘 것이다.

대명천지 빛밝은 광장으로 나오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첫 발을 내민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것이 국민의 일반 정서다. 역사의 진전이란 워낙 굼벵이 걸음이라지만 이렇게 힘들어서야 생전에 좋은 세상 언제 볼까 싶었는데, 수십년 묵은 체증이 풀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교육이 원래 100년을 내다보는 큰 일이라니 다시 기운을 내서 신들메를 고쳐 맬 일이다.

도둑·강도가 아니라면 '도둑 잡는 법'을 왜 겁내나?

애초부터 이 법이 개악되던 15년 전의 상황을 돌아보면 때가 늦어도 한참 늦은 느낌이 없지 않다. 여야의 관련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사학재단의 로비에 걸려들어 뒷돈을 받아 챙기는 식으로 놀아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0년 민자당 집권 시절이었다.

그렇게 해서 개악된 사립학교 법으로 제도적 뒷받침이 되자 가뜩이나 비리의 온상으로 악명을 떨치던 일부의 사학들은 신바람이 나서 온갖 비리를 자행하면서도 떵떵거리며 '교육자'연하는 위선들을 떨어왔다. 젊음을 다 보내고 퇴직을 눈 앞에 둔 30여 년 사립학교 교사로서 특별한 감회가 없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상대로 사학재단을 비롯하여 그들과 직간접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치권과 관련 단체들은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이 난리굿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행태가 거의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것은 "신입생 안 뽑겠다" "학교를 폐쇄하겠다" "순교하겠다" 등의 극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들이다. 국민과 학생과 교육을 두루 우습게 보는 그 기막힌 발상에 소름이 돋는다. 이것은 국민과 학생들에 대한 협박과 공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부패와 비리를 견제하는 장치를 만들자는데 왜들 저럴까' 하는 의아함과 함께 '뭔가 찔리는 게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의구심이다.

▲ 10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북한동포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촛불기도회'에 참석한 사학재단 관련 인사들은 9일 국회에서 통과된 사학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학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저 극단의 반응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뭘 생각할까? 개방사회의 민주시민을 양성한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실은 겉다르고 속다른 이들이었구나 하는 느낌일 터이다.

'그 중엔 틀림없이 유령 이사회 만들어 놓고 회의록 조작해 가면서 학교재단을 제멋대로 주물러온 이들도 있겠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펄펄 뛸 일이겠나' 이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게 지금 난리를 떨고 있으니 참으로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소수의 부패 사학들에게서나 있는 예외적인 비리 행태를 침소봉대하여 모든 사학들을 때려잡는 법을 만들었다고 항변하지만, 웬 '소수'가 그리 많은가? 걸핏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비리사학이 어찌 그렇게 자주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가? 아이들도 갸우뚱할 소리다. 설혹 부패사학이 소수라고 쳐도 그 소수를 발본색원하는 것은 우리 교육의 건강을 위해서 이로우면 이로웠지 해가 될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건전하게 운영해온 사학이라면 두 손을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이다. 왜냐하면 공연히 오해받고 매도당할 일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 있는 떳떳한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온 세상이 도둑과 강도로 들끓어야만 범법자들을 잡아들이는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범법자 잡아들이는 법이 있다고 해서 도둑이나 강도 아닌 이들이 겁을 내는가? 오히려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법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어른들이 이런 짓 하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따져보면 정말 창피막심한 일이다. 더구나 아이들 가르치는 학교의 운영 책임자들이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겨우 밀실에 유리창 하나 냈을 뿐...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내용을 보면 극히 일반적인 상식의 아주 작은 일부를 적용했을 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침소봉대하여 사학재단이 다 무너질 것처럼 떠들고 있는 개방 이사제 도입만 해도 7명의 이사 중 2명, 9~11명의 이사 중 3명 정도를 학교운영위원회(대학평의원회)에서 2배수로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실효성이 의심될 정도로 최소한의 개방 장치일 뿐이어서 이걸로는 기존 이사회의 전횡을 막을 수 없어 보인다. 다만 무슨 일을 하는가를 들여다볼 수는 있을 듯하고, 바깥의 눈이 있으니까 막가파식 비리를 견제하는 간접 효과는 기대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인 것이다.

▲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표는 "모든 당력을 사학법 무효투쟁에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사회의 의결과정에서 개방 이사 두어 명이 무슨 결정력을 발휘하겠는가? 2배수 추천을 해보았자, 그보다 훨씬 많은 '밀실' 이사들의 전횡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이나마 제대로 할 수 있는 외부 이사의 선임은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다.

이밖에 친인척 이사 수의 제한이나 이사장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교장 임명 금지 등 사학의 족벌운영 제한 등은 15년 전의 개악된 것을 다시 복원시킨 내용들이고, 개방형 감사제도의 도입과 예산, 결산의 공개 등은 민주사회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최소한의 상식적인 내용에 불과한 것들이다.

이걸 마다하는 이유로 들이대는 논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논리인데,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추앙해 마지않는다는 선진 민주국가에서 이런 걸 문제 삼는다는 얘길 들어본 일이 없다.

더구나 이게 친북세력의 음모라는 말에는 기어이 배꼽을 잡고 웃음보를 터뜨리게 된다. 초등학교 수준의 아이들도 믿지 않을 그 무모한 억지가 참으로 놀랍다. 최고의 지성을 자랑할 만한 이들의 입에서 이런 해괴한 망발이 터져 나오다니,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에 깊은 회의가 든다.

한술 더 떠서 '전교조가 학교를 말아먹으려 든다'는 식의 구호로 국민들을 기만하려고 하고 있으니 그 비상식에 기가 막힐 뿐이다. 그런 걸 보면 전교조 죽이기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게 수지맞는 전법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전교조가 처음 생길 때도 이런 식으로 전 국민을 기만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전교조 조합원이 전체 교사의 1/4 정도쯤 된다는데, 아직 사학비리가 근절되지 못한 걸 보면 고우나 미우나 아직은 이 나라 교단의 양심세력을 자처하고 있는 전교조 정도로는 끄떡없는 게 사학의 막강한 힘인 모양이다.

학교문 닫겠다는 사람들, 이 참에 교육에서 손 털기를

교사의 입장에서 이번 사립학교법에는 아직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종전에 횡령, 뇌물수수·회계부정을 저지른 사학재단의 임원과 교장은 2년이 지나면 다시 복귀할 수 있게 되어 있던 것을 이번에 임원은 5년, 교장은 3년으로 개정했다고 한다. 국민들에게 물어보자. 그런 이들이 재단과 학교로 다시 복귀해야 되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교육기관에는 영구히 복귀할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신입생 뽑지 말고 학교 문 닫겠다는 이들은 이 참에 교육과 관계되는 일에서 깔끔하게 손을 털기 바란다. 우리 사회는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수상한 소수의 인물들이 밀실에 들어앉아서 교육을 빙자한 채 수십억, 수백억씩 주물러대는 부패와 비리 행각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이런 짓을 비호하고 나서는 정치인들의 속내야 국민들이 어항 속처럼 꿰뚫어보고 있다. 정신들 차려야 살아남을 것이라는 점도 함께 깨우치기 바란다.

▲ 이명주 교사
이런 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조용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갈피에 차곡차곡 기록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경계로 삼을 좋은 교육 자료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마나 미흡한 채로라도 사립학교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대체로 국민의 7~8할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우리 교육에 미래가 완전히 골병이 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불행 중 다행이다.

이제 첫 발을 뗐다. 내용으로 보자면 밀실에 유리창 하나 겨우 낸 것이다. 겨울도 깊어가는데 햇빛 무서워들 말고, 엄살들 떨지 말고, 개과천선하라!

덧붙이는 글 | 이명주 교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1973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됐다. 전국국어교사모임 회장, 전국교과모임연합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 고명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리움의 작은 나라>, <너희를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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