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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동차산업이 어쩌고 저쩌고, 좋은 이야기인데... 솔직한 심정으로 우리들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요. 다른 곳(자동차회사)보다 월급이 높길 하나 (생산) 환경이 좋길 하나, 병 걸려가면서 열심히 해서 수천억원씩 이득도 냈는데... 이제 중국에서 우릴 먹겠다고 나서는데 자동차 경험도 없다고 하고..."

▲ 지난 6일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관건물 앞 국기 게양대에 란싱그룹 실사에 맞춰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걸렸다.
ⓒ 오마이뉴스 김종철
정아무개(39)씨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시간 없다', '할 말 없다'며 기자와 이야기를 극구 사양하던 그는 쌍용자동차 입사 11년차다. '그래도 회사가 팔리면 좋아지지 않겠느냐'라고 묻자, 그제서야 반응이 온다.

“책상에 앉아서 주판알만 튕기는 사람들(채권단)이 빨리 자기들 돈 받아내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 아니냐. 당장 뭐가 좋아지나. 우리는 솔직히 기대보다 걱정이 많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 기업이라는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나'라고 묻자, "솔직히 그런 부분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공장 옆으로 길게 세워진 재고 차량들 사이로 사라졌다.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칠곡동 쌍용자동차 본사 공장. 이날 공장과 인근에서 만난 쌍용차 직원들의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기자에 대해서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언제 언론이 우리(노동자) 이야기를 제대로 써주기나 하나'라는 반응부터 돌아왔다.

정문 출입구 주변에는 '매각 반대'와 '독자 생존'이 담긴 여러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정문 바로 뒤로는 쌍용차 노동조합의 '매각반대' 천막 농성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농성장 내부에는 사수대가 썼던 것으로 보이는 10여개의 쇠파이프도 보였다.

이날 회사 주변은 하루 종일 긴장감이 나돌았다. 지난해 말 쌍용차를 인수하겠다고 제안서를 냈던 중국 란싱그룹 쪽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공장을 직접 보러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문 입구에선 평상시보다 출입자들에 대한 통제가 심했다. 본관 건물 주변에는 회사 쪽 총무와 노무담당직원들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삼삼오오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왔다. 오후 2시께 흰색 체어맨 리무진 차량 한대가 회사 정문을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란싱의 왕장 부사장 등을 태운 차량은 농성장을 뒤로하고 본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건물 앞 국기 게양대에는 중국 오성기(五星旗)가 내걸렸다. 자동차 산업과 큰 인연이 없던 란싱의 한국 쌍용차 공장 실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 중국란싱그룹 대표로 참석한 왕장 자동차그룹 부사장(맨왼쪽)이 쌍용자동차 정완용 부사장으로부터 쌍용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종철
"화학기업이 왜 자동차를... 중국식 문어발 아닌가"

란싱 쪽의 현장 실사는 노조가 지난 5일 대의원대회에서 '실사 수용'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공장 생산 현장 노동자들의 란싱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가웠다. 이유는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본사 건물 밖 주차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화학이 전문이라고 하던데, 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드나"라며 "100개나 되는 기업과 수만명의 직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전형적인 문어발식 확장 아닌가. 매출 규모를 봐도 우리보다 훨씬 적은데 어떻게 수조원의 돈을 투입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오히려 기자의 생각이 궁금하다며 답을 물었다.

'많이 알고 계신 것 같다'며 웃으며 말하자, "일부 언론은 벌써부터 우리가 무작정 떼를 쓰면서 반대부터 하고 있다는 식으로 쓰는데 그런 것을 읽고 있다보면 화가 치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 지도부의 란싱쪽 실사 허용에 대해 반발하는 현장 노동자들도 많다"면서도 "'견학' 정도라고 알고 있고, 따라서 지도부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끼기도 했다.

실제로 실사단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부터 렉스턴 1호차 등 차량 2대에 나눠 타고 체어맨 차체와 도장, 조립 생산 라인을 돌아봤다. 이어 쌍용차의 핵심부분이라 할 수 있는 연구개발 시설까지 둘러본 시간은 대략 2시간정도. 이 정도 시간이면 직원의 표현대로 '실사'라기보다는 '견학'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른다.

이에 대해 란싱 쪽 대표로 나온 왕장 자동차그룹 총괄부사장은 "시간이 너무 짧아 서운했다"고 말을 했고, 일부 매각주간사 관계자의 다른 시설 가동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회사쪽 한 임원은 "돈 되는 곳만 보여드렸다"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쌍용차 매각을 바라보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위기감은 본사 공장직원보다 더 높았다. 이날 오후 정문 옆 휴게실에서 만난 김아무개(38)씨는 이같은 이들의 고충을 그대로 털어놨다.

"중국의 싼 노동력으로 부품조달하면, 우리는..."

▲ 경기도 평택시 칠산동의 쌍용자동차 본사.
ⓒ 오마이뉴스 김종철
그는 "란싱에서는 이미 쌍용차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현재의 원가를 낮춰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그들이 당장 공장 설비를 이전하지는 않겠지만, 원가를 낮추기 위해중국에 협력업체들과 부품공장을 지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부품을 조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씨는 특히 "이렇게 되면 쌍용차 협력업체들의 국내 공장 경쟁력은 떨어지게 되고, 결국 중국으로 넘어가게 될 수밖에 없다"면서 "솔직히 쌍용차 노조보다 우리가 파업이라도 해야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란싱이 최종 인수자로 선정될 경우 김씨의 이같은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란싱쪽도 이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원가 절감 방안으로 자체적인 부품 조달 의사를 밝힌바 있다. 이어 궁극적으로 쌍용차가 가지고 있는 독자 엔진과 모델 개발 능력을 인수 받아, 향후 중국 자동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허완 이사는 "쌍용차의 중국 매각으로 자동차 업계 부품에 대한 대 중국 의존도를 크게 높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매각에 앞서 산업적인 측면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충고다. 이같은 이야기에 일부 쌍용차의 경영진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이날 기자와 만난 쌍용차의 한 고위 임원은 "우리나라 채권단은 해당 기업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산업구조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되는데, 이를 포기한 지 오래된 것 같다"며 비판하면서, "이번 매각과 관련해 노조의 주장 가운데 국내 자동차산업 차원의 접근 방법은 새겨 들을 만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대신 "그렇다고 노조가 무작정 매각을 반대하고 나서면 우리의 입지가 줄어드는 등 불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어떻게 보면 이번 건의 경우 '매각이라는 것보다 투자유치'라고 봐도 되고, 중국 안방 시장 공략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실사가 끝난 후 마무리 미팅에 참여한 란싱 왕장 부사장은 "쌍용차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으며, 회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돼 기쁘다"며 만족을 나타냈다.

그는 또 자신이 자동차 회사 출신이며, 여러 공장들도 둘러봤다고 말하면서, "개인적으로 (쌍용차의) R&D(연구개발)의 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동차의 디자인 등 외형 면에서도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쌍용차 노조의 매각반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민감한 질문에 대해선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 회사 쪽에서는 이날 기자들의 실사단 동행취재를 거절했다. 생산라인 실사과정에서 자칫 현장 직원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궁색한 이유가 전부였다.

지역주민들 "미군부대는 오고 쌍용차는 가고?"

▲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정문에 바리케이드가 쳐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김종철
쌍용차 매각을 바라보는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쌍용차 공장 인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아무개씨는 전반적으로 경기가 너무 안 좋아 매상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저녁에 쌍용차 직원들이 소주를 먹으면서 매각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면서 "'매각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니까 대부분 손님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들이 쌍용차 생산직 직원이라는 개인택시 운전기사 정아무개씨는 "텔레비전에서 쌍용차 매각을 놓고 직원들이 파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에게 하지마라고 했다가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면서 "아들 말로는 잘못했다가는 쌍용차 주변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평택에서 조그만 기계조립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윤아무개 사장은 "평택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 도움 안되는 미군부대는 늘어나고, 도움되는 쌍용자동차는 떠나고...'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돌 정도"라며 "매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중국기업이 우리나라 쌍용차까지 넘본다는 것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2년전 구로쪽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가, 중국의 저가 제품들과 경쟁이 안돼 평택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품질로 그동안 중국제품과 경쟁하고 해오고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제 공은 다시 중국 란싱 쪽으로 넘어갔다. 현장 실사를 마친 란싱은 이번달 말까지 구체적인 인수 가격을 적어서 채권단에 제출해야 한다. 중국정부의 추가적인 공장 실사도 예정돼 있다. 만약 별다른 탈 없이 채권단에서 계획대로 진행되면 3월말까지 매각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쌍용차의 구체적인 인수 가격이나, 투자 일정과 고용안정 등을 둘러싼 노조와 채권단, 란싱쪽과의 협의 내용에 따라서 자칫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는 과정을 보면, 꼭 우선협상대상자가 최종인수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대우차의 우선협상대상자는 포드였다. 그리고 GM은 대우차를 인수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정문 바로 뒤에 '매각반대 독자생존'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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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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