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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속도 중심의 현대 사회는 오래 된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오늘 산 컴퓨터가 한달 뒤에는 낡은 것이 되고 기능이 더 좋아진 핸드폰이 수시로 쏟아져 나온다. 전자 제품과 가전 제품에 이어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부산까지 3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게 된 것이다.

▲ 한-칠레 FTA 비준 반대집회에 참석한 노인들.
ⓒ 마동욱
빠른 변화와 속도를 사랑하는 현대 사회는 젊음과 연관되는 원기와 생식력을 찬양한다. 이와 반대로 노년이 주는 쇠약과 생식 능력의 고갈을 두려워한다. 노인 공경이라는 말 뒤에 우리 사회는 노년을 마치 일종의 수치스러운 비밀처럼 여긴다.

노년의 입구에 들어선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느 드 보봐르는 당시 프랑스 사회를 “팽창과 풍요의 여러 신화 뒤에 몸을 숨기는 그 무사 태평한 의식은 노인들을 천민 계급으로 취급한다"라고 그녀의 저서 <노년>에서 말하고 있다. 그만큼 노년은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계층이자 가보고 싶지 않는 또 다른 나라일 뿐이다.

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하여 평소 생각한 노년의 모습과 달리 밝고 활기차게 취미 활동과 자원봉사 활동으로 당신들의 하루를 꾸며 나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는 젊은이들을 종종 보게된다. 칙칙한 회색 빛만 가지고 있을 줄 알았던 노년에게서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색채와 개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하루는 복지관 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요즘 돌아가는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에서 국을 떠드시던 어르신 한 분이 나를 보며 “선생들도 촛불 집회 나가나?”하고 물었다.

순간 마음 속으로 ‘아차!’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복지관에서 점심 식사를 사 드시는 어르신들은 하루 평균 500명 정도인데 그 속에서 답답한 마음에 정치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한 자책의 탄성이었다.

“촛불 집회에 나가는 직원도 있고 안 나가는 직원도 있어요.” 탄핵 반대를 위해 촛불 집회를 거론한 우리들을 훈계할 것이라 지레짐작한 나는 애매하게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도 저번 주에 나갔거든. 정말 사람들이 많더라고. 추워서 1부만 보고 왔지만” 하며 웃으신다. 그러자 옆에서 식사하던 어르신이 “나는 우리 며느리가 촛불 집회 가야한다고 빨리 와서 손자 봐달라고 하지 뭐야. 그래서 결혼식 갔다 헐레벌떡 집에 갔잖아”하며 맞장구를 치셨다.

그 순간 내 안에 뽀얗게 먼지 낀 채 자리잡고 있는 노년에 대한 편견을 다시 한 번 발견했다. 6.25 전쟁을 경험한 어르신들은 혼란스럽더라도 잘못된 것을 고치고 개혁하는 것보다는 현재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탄핵 반대를 외치는 촛불집회도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주 후 정동영 의원의 ‘60,70대 노인 투표 안 해도 된다’라는 말이 매스컴에 나오기 시작했다. 복지관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섭섭한 마음을 저마다 표현하셨다.

휴게실 복도에서 어르신들의 언성이 높아지자 한 어르신이 “어이~ 여보게들. 그래도 바로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나. 그런 것 아니라며 발뺌하는 것보다 지 잘못 인정하잖아”하며 웃으셨다.

그 말이 떨어지자 “그게 진심이어야지”하며 혀끝을 차는 어르신부터 “늙은이를 우습게 알아”하며 역정을 못 푸는 어르신과 “젊은이들이 우리 보다 투표를 안 해서 그런 말 한거래”하며 두둔하는 다양한 어르신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정치도 젊은 사람으로 교체해야 개혁되고 기업도 젊은 사람이 이끌어야 성공한다며 급속도로 나이든 사람들을 퇴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젊은층도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르신도 탄핵에 반대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다. 물론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나 이미지는 존재한다. 젊은층이 창조적이고 모험적이라면 어르신들은 성실하고 안정적이다.

주어진 의무에 항상 성실한 어르신에 비해 즉흥적이고 모험적인 젊은이들의 투표를 독려하려다 우리들이 흔히 흘려버리는 노년의 다양성을 정동영 의원은 잊었던 것 같다. 또한 이것을 세대간의 대결로 만들어 당리당략에 연결시키려는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 보도를 보면 정말 안타깝다.

본인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정동영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이번 일이 노년의 개성과 다양한 색채를 젊은층도 알려고 노력하고 인정하는 사회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노인복지 하는 사람으로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프루스트(proust)는 ‘청춘기는 꽤 여러 해 동안 지속된다. 인생은 바로 이런 청년들을 노인들로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노인은 청년의 연장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졌던 인간의 자질과 결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즉 우리들과 다른 존재가 아닌 젊은이들과 똑같은 욕망과 감정 그리고 욕구를 가지고 있다.

노년을 칙칙한 잿빛에서 가을을 물들이는 단풍의 빛깔로 볼 때 그 안에 감춰진 다양한 역동성에 놀랄 것이다. 그것을 볼 수 있을 때 내가 곧 걷게될 인생을 예습하는 귀중한 경험도 함께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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