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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타계한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을 기리며

▲ 고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
ⓒ 한글학회
어제군요. 1월 26일 허웅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918년에 나셨다니 여든 여섯 해를 살았습니다. 아내를 먼저 저승으로 보낸 뒤 혼자 살아온 여러 해. 이제 당신도 아내 곁으로 따라가시는군요.

한글 연구에만 온 삶을 바쳐도 해낼 수 없는 일이 많으나 한글 연구만으로는 살아가지 못하게 한 기나긴 세월이었습니다. 눈뫼 허웅 선생이 처음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스승들이 더 가르칠 수 없어서 독학을 해야 했고, 해방 뒤에는 국한문혼용 시비에다가, 국립국어연구원을 비롯한 관변학자들이 제멋대로 맞춤법을 바꾸는 일과 싸우느라 학문에 제대로 몸 바치기 어려웠을 줄 압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주해 용비어천가>를 비롯, 15~20세기 중세 우리 말을 갈고 닦아 책으로 부지런히 엮어내셨습니다.

저는 혼자서 우리 말글을 공부하면서 헌책방에서 눈뫼 허웅 선생 책을 꾸준히 사서 읽고 배웠습니다. 옆에서 가르치는 스승이 없어서 어렵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도 많았으나, 눈뫼 허웅 선생이 엮어낸 책들을 한 권씩 헌책방에서 만나며 읽는 동안 많이 배우고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읽은 눈뫼 허웅 선생 책 가운데 학술 책은 말고 우리 말과 글 이야기를 대중성 있게 쓴 세 권 이야기를 펼치며 돌아가신 분 뜻을 기려 보고 싶습니다.

우리 말글과 한자 문제

▲ <한글과 민족문화> 겉그림입니다.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아무래도 우리 글과 한자 문제를 먼저 꺼내야지 싶군요. "자나 깨나 우리 말과 글 생각"이었다는 눈뫼 허웅 선생은 쉰 해가 넘게 우리 말 운동과 얽힌 글을 써서 내놓았습니다. 참 많은 글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글과 민족문화>(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첫, 1999고침)와 <우리말과 글의 내일을 위하여>(과학사, 1974)와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샘 문화사, 1987) 세 권에 실은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 이름은 한자 아니고서는 절대로 안 될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서양으로 갈 때는 로마자의 명함을 찍어 간다. 우스운 일이다. 로마자로 써서는 다른 사람이 될 염려는 없을까? 어떠한 체계의 글자를 쓰거나 그 알맹이인 언어 기호는 바뀌어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한자가 없어지면 한자말이 없어진다거나, 아니면 뜻이 잘 파악되지 않을 것이라고 염려하는 사람은 언어 기호와 글자의 임의성을 잘 생각해 볼지며, 또 어린아이들이 한자의 매개 없이도, 한자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해 보시기 바란다 ..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44쪽

무척 중요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대목이기도 해요. 우리들 이름에는 저마다 다 다른 뜻을 담아요. 우리뿐 아니라 일본사람도 미국사람도 프랑스사람도 브라질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 사람이 쓰는 이름 말밑을 따지지 않아요. 라틴말이든 또 무슨 말이든 헤아리지 않고 듣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이름도 그렇고요.

제 이름 석 자 '최종규'라고 했을 때 '종규'에 무슨 뜻이 있는지 한자로 '鐘圭'를 따져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종규'는 그냥 '종규'이고 'Jong-Gyu'입니다.

한자말을 굳이 한자로 적지 않아도 되는 까닭은 어린아이들이 한자를 꼭 알아야 한자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님을 헤아리면 잘 알 수 있고요. 한자 시험 0점을 맞는 아이들이 한자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거나 못 쓰지 않거든요.

한자말을 굳이 한자로 안 쓰고 한글로만 쓸 때는 누구나 알아듣지만, 한자말을 한자로 구태여 쓰면 알아듣거나 읽는 사람이 팍 줍니다. 더구나 한자로 쓰지 않거나 한자말로 쓰지 않아도 될 말을 일부러 한자로 쓰거나 한자말로 쓴다면?

.. 우리말의 문학 작가들은, 그것으로 관료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사회적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소위 점잖은 선비들은 우리말로 글쓰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 있어서는 국어의 문학 활동이 활발해질 리 없고, 따라서 말을 다듬는 창조적인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리가 없었다 .. <우리말과 글의 내일을 위하여> 13쪽

.. 그러나 이 한자어들을 검토해 보면, 꼭 필요해서 차용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고, 순우리말로 변통해 쓸 수 있을 만한 것까지 한자어를 빌어서 표현한 것이 매우 많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지나치게 중국 문화를 숭상해 온 데서 빚어진 결과임은 물론인데, 오늘날 우리들의 눈으로 볼 때는 이런 한자어들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 <우리말과> 247쪽



꼭 써야 하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쓰는 한자말은 사실 얼마 안 됩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대학원을 거치는 동안 학문에서 쓰는 낱말이라며, 또 시민운동과 사회단체와 운동권에서 쓰는 말이라면서, 어설픈 일본 한자말을 마구 들여오기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들어와서 쫓아내지 못한 말도 참 많고요.

우리 말로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라는 말로 역 간판을 세운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참 오랫동안 '入口'와 '出口'를 썼고, 아직 우리들 입과 눈은 '입구-출구'가 더 낯익어요. 지난날엔 죄다 '밥상'이었지만 이제는 '식탁(食卓)'이 되었고, '둠'이라고 쓰던 곳도 '주차장(駐車場)'으로 이름을 바꾸고, '세모-네모'가 '삼각형(三角形)-사각형(四角形)'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 지은 서울 고속철도역은 '대합실(待合室)'을 '맞이방'이란 살가운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애쓰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요.

그런데 '값'이면 될 말을 '가격(價格)'이라 쓰고, '속옷'이란 말을 '내의(內衣)'라 쓰며, '배앓이'란 말을 '복통(腹痛)'이라고, '외아들'을 '독자(獨子)'라 하고 '흰밥'을 '백반(白飯)'이라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안 쓰면 안 될 말이라면 한자말이든 미국말이든 일본말이든 폴란드말이든 다 좋습니다. 하지만 구태여 쓰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한자말로 써온 우리들이며, 요새는 미국말로 바꿔 쓰는 우리들이에요.


참된 한국 문학을 바라며

▲ <우리말과 글의 내일을 위하여> 겉그림입니다.
ⓒ 과학사
말밥(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눈뫼 선생은 우리 말과 글자로 쓰지 않은 문학은 한국문학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거든요.

.. 비록 서포 자신의 이 글이 한문으로 되기는 했으나, 이 말은 천하의 명언이다. 우리 나라의 양반 귀족들은 고대 중국어의 변형인 '조선 한문'으로써 문학 활동을 해 왔다. 이로써 시도 짓고, 이로써 소설도 써 보려 했다. 그러나 한 민족의 생활 감정과 사고 방식은 그 민족이 쓰는 언어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어서, 이러한 한문으로써는 우리 민족의 생활 감정이나 사고방식을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한문에 능하다 해도 이것은 한갓 앵무새의 말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지껄이는 한문은 자기 자신의 사상 감정의 토로가 되지 못하고, 그 형식에 끌려, 자기도 모르게 중국적인 사상 감정을 토로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
<한글과 민족문화> 166~167쪽



"작가와 내용에 의해서 그 작품의 국적을 따진다면, 한국사람이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쓴 영어 소설도 국문학에 넣어야 할 것이 아닌가(위 책 165쪽)"하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다산 정약용이 남긴 숱한 글이나 연암 박지원 글 또한 한국문학이 될 수 없겠죠? 똑부러지게 나눈다면 그래요. 그리고 맞는 말입니다. 다만 그렇게 나눌 때는 우리 문학이 너무 엷어지고 홀쭉해지기 때문에 다산 글도, 연암 글도 한국문학으로 껴안습니다.

.. 한문은 상당히 어려운 외국어에 속한다. 동양학 한국학을 전공하는 몇몇 학자의 양성을 위해서, 국민 전체가 한자의 무거운 멍에를 짊어질 필요는 없다. 만일 동양적인 사고, 한국적인 생활 방식을 이어받기 위해서 우리 국민 모두가 그 어려운 한문의 원전을 읽어야 한다면, 우리는 옛날의 양반계급처럼, 한 평생을 한문이나 읽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먼 옛날에 지나갔다. 우리들은 필요 있는 한문 문헌만 가려서, 그것도 번역을 통해서 읽으면 족하며, 전문 학자들은 지금보다 더 과학적으로 한문을 연구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이삭을 줍는> 47쪽


눈뫼 선생도 '한문 없애기(폐지)'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전문 한학자를 과학적으로 길러야 한다'는 주장을 함께 했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한자로 자기 이름을 쓰고 책을 읽고 신문을 읽어야 할 까닭이 없다며, 소중한 우리 옛 문헌은 전문 학자를 길러서 우리 말로 옮기도록 나라에서 뒷배를 하고,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번역 작품을 요새 사람들이 읽어서 더 나은 학문 배움길로 나아가야 옳다고 외쳤어요.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한문으로 남긴 옛 어르신들 문학 작품을 우리 문학에 넣는 일을 달갑잖게 여겼지 싶습니다.

한국사람이 지어내고 빚어내는 한국문학이라면 한국사람 마음과 삶을 담아내야 할 테고, 우리네 마음과 삶을 담아내자면 한문이나 일본말이나 미국말로는 제대로 담아낼 수 없잖아요.

.. 외국어를 번역함에 있어서 느끼는 불편은 언어 자체의 일반적인 본질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며, 결코 우리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반대로 우리말을 다른 말로 번역할 때에도 꼭 같은 난관이 있으리라는 것은 미리 예언할 수 있는 일이다 .. <우리말과 글의 내일> 210쪽


"하늘하늘 내려오다"라는 말을 다른 나라 말로 옮기기 힘들거든요. 마찬가지로 스와힐리어 사투리를 우리 말로 옮기는 일이라면? 어느 영국문학 고전을 우리 말로 옮기며 전라도 사투리로 옮기기도 하는데, 이렇게 옮기는 일이 영국문학 고전 맛을 제대로 살려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뫼 선생은 지난날 옛 어르신들이 훌륭한 문학 작품을 남기면서 우리 글자로 남기지 않았던 일을 무척 안타깝게 여겼고, 그렇게 남긴 문학에서 어떻게 우리네 얼과 마음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일들

▲ <이삭을 줍는 마음으로> 겉그림입니다.
ⓒ 샘 문화사
우리들 모두가 우리 말글 운동을 하는 사람일 까닭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모두가 한문이나 미국말을 훌륭하게 익혀서 옛 문헌과 미국말로 된 책을 술술 읽어내려가야 할 까닭도 없어요. 좋은 옛 문헌이나 좋은 미국말 책이라면 잘 번역된 책으로 읽어도 넉넉하니까요.

.. 사전을 뒤적여 보면 우리말에도 이런 말이 있었던가 하고 탄복할 정도로 우리말의 어휘는 빈곤하지 않다. "엇셈, 붐비다, 배앓이, 눈치레, 눈웃음, 눈비음, 설빔, 사니, 사래, 배웅" 등등. 우리들이 그다지 잘 쓰지 않는 말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우리말의 어휘가 모자란다고 한탄하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러나 사실은 말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우리말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 <우리말과 글의 내일> 17쪽


그래요. 우리들은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익히거나 배우거나 외우지 않아요. 영어 낱말을 몇 만 낱말을 외우려 하면서도, 천자문을 외우려 하면서도 살갑게 쓸 수 있는 우리 말 천 낱말은커녕 백 낱말조차도 익히거나 외우거나 배우려 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토박이말로 나타낼 수 있다고 보는 낱말이 적어 보이고, 낯설어 보입니다. 제대로 헤아리지도 못하지만 옳게 가려 쓰지도 못해요. 그런 까닭 때문에 국어학을 갈고 닦는 이들이나 국어사전을 엮는 이들도 제대로 우리 말을 다루고 매만지지 못해요.

'까다롭다-어렵다', '쉽다-수월하다', '추레하다-더럽다-지저분하다', '맑다-밝다', '벌써-이미', '늘-노상-언제나', '대다-만지다-건드리다', '쓸쓸하다-외롭다' 같은 비슷하면서도 쓰임새가 다른 낱말을 제대로 나누어 풀이하거나 가르쳐 주는 교사도 없으나 국어사전도 없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나아가 정부에서도 이런 일을 안 하고 있어요.

.. 낱말은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리하여 풍부한 어휘를 자기 소유로 만들어야 한다. 풍부한 어휘는 우리들의 사상을 풍부하게 해 주고, 감정을 섬세하게 하는 데 봉사하기 때문이다 .. <우리말과 글의 내일> 17쪽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빛다르거나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쓸데없이 멋을 부리거나 젠체하는 말을 쓰지 않으면 되는 일이 첫째요, 우리 느낌과 생각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살가운 우리 말을 제대로 가려 쓰면 되는 일이 둘째요, 우리 느낌과 생각을 푸지고 넉넉하게 살찌울 우리 말을 꾸준하게 익히는 일이 셋째요, 말의 민주화와 나라와 문화의 민주화를 함께 일궈내는 일이 넷째이지 싶어요.

눈뫼 선생은 학문은 학문대로 갈고 닦으면서, 보통사람들(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기 생각과 마음을 잘 추스르고 담아낼 수 있는 말글 이야기를 꾸준하게 써서 내놓았습니다.

지금은 수많은 책 가운데 <한글과 민족문화>(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9 고침)라는 책 하나 겨우 만날 수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꼭 눈뫼 선생 책이 아니더라도 그 뜻과 일을 이어받아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새로우면서 더 젊고 더 힘차며 더 아름답고 알뜰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 더 낫지 않겠냐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1986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해서 쓰신 글 마지막 대목을 옮기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부디 저승에서는 마음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계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우리는 옛날부터 우리말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해방 뒤에 비로소 우리말 교육을 시작했으나 실패한 점이 많아 그 성과는 그리 좋지 않다. 그리고 한글이 있는데도-이 좋은 글자를 두고도- 굳이 한자를 섞어 써서 만백성이 쉽게 알 수 있는 길을 가로막으려는 사람이 아직 더러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체육에 많은 투자를 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는 교육에 더욱 큰 투자를 하여 두뇌를 더욱더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때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점은 콩나물 교실의 해소와, 교육자의 자질 향상과, 국어 교육의 충실과, 한글 전용의 정착이다 .. <이삭을 줍는> 536~537쪽

덧붙이는 글 | 우리 학문, 우리 말과 글을 갈고 닦으면서 살갑도록 하는 일을 평생 해온 눈뫼 허웅 선생입니다. 돌아가신 일을 안타까이 여기며 선생을 기리는 글을 써 봅니다. 부디 당신 뜻을 잘 이어받아 앞으로는 더 나은 일을 더 알뜰하고 힘차게 해나갈 젊은 뒷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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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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