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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2003) 7월 2일 <오마이뉴스>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80년 7월 5일 <조선>"이라는 기사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 헌책방에서 뜻밖에 만난 신문 뭉치에 있던 재미있는 볼거리를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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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80년7월5일 <조선>

독재정권과 언론이 짝짜꿍이 되어 김대중씨를 사형선고까지 내렸던 얼토당토않던 군사재판 이야기가 하나 있었고, 최규하 대통령 하야 소식, 박정희 찬양 이야기를 신문 자료를 놓고 말했습니다.

▲ 서울 독립문 앞에 자리한 헌책방에서 만났던 신문 뭉치. 맨 위에 올라와 있는 신문 한 장 때문에 여러 만 원을 주고 이 신문 뭉치를 샀습니다.
ⓒ 최종규
헌책방을 부지런히 다니며 지난날 우리 흔적이나 역사 자료를 찾습니다. 지난해 6월 서울 독립문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꽤 두툼한 신문 뭉치를 뜻밖에 만났는데 그 신문 뭉치 맨 위에는 "金大中 內亂음모로 軍裁회부"라는 글씨가 아주 크게 적혀 있었고, 옆에는 "流血革命, 政府전복-執權 기도"라는 말과 "추종자 36명도 함께 送致 방침"이라는 말도 크게 뽑아서 실려 있었어요.

이 신문 뭉치를 찾았을 때만 해도 김대중씨 지난날 군사재판 판결을 놓고 권리를 되찾아 준다 어쩐다 말이 많았는데, 드디어 어제(1·29) 재판부에서 무죄 선고를 내렸더군요. 서울고법 형사3부에서 내린 재심 판결인데 "79년 12·12사태와 80년 5·18을 전후해 발생한 신군부의 헌정파괴 범행을 저지하려 한 행동은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이므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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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0년, 계엄사령부는 김대중씨에게 "보안법, 반공법, 외환법, 포고령"을 적용한다고 했고, 반국가단체인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조직했다고 말했습니다. 1980년 7월 5일치 <조선일보>는 "북괴노선 지지-의장 노릇 6년... 조총련자금 거액 받아"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국민연합 주축,복학생 450명 포섭, 학원소요 폭력화"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要職 미끼 12억 거둬... 전남대생에 5백만원 등 3억 뿌려..." 이렇게 기사로 나왔어요. 이 대목에서도 재판부는 "이미 사면됐고 관련 법령이 없어졌으므로 면소 판결한다"고 좀 어정쩡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때 <조선일보> 기사를 다시 읽어 봅니다.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 참인 것처럼 내보낸 <조선일보> 1980년 7월 5일치 1쪽.
ⓒ 최종규
.. 10·26 사태로 집권의 호기가 왔다고 판단한 김대중은 신민당 내 당권 투쟁에서 열세에 몰리게 되자 신민당과 결별하고 사조직의 확대와 선동조종에 의하여 폭력적 극한 상황을 유발함으로써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만이 집권의 길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윤보선이 중심이 되어 온 국민연합을 탈취, 자기 지배 하에 두기 위해 공동의장인 윤보석, 함석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심복인 문익환, 예춘호 등으로 하여금 조직을 개편케 해 중앙위, 중앙상위, 집행부를 자파계의 복직교수와 복학생으로 메움으로써 학원소요의 배후조종과 민중봉기의 사령탑 기능을 담당케 했다.

이외에 장남 김홍일이 조직한 민주연합청년동지회(회원 4백 명), 민주헌정동지회(조직책 김종완,회원 2만 명), 한국정치문제연구소(김상현,회원 5천 명) 등의 사조직도 대폭 확충했다. <1쪽>


신문이 헌책방에서 뒹구느라 기사 몇 군데가 찢어져서 보이지 않는 곳도 있으나 대체로 줄거리를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보아도, 또 상식으로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주장이지만, 이때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은 전두환 쿠테타 정부(계엄사령부)가 내놓은 말을 그대로 기사로 실었습니다.

"자신의 집권을 위해 현정부 타도를 선동하는 한편, 자기 초상이 양각된 메달과 볼펜 등을 주고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심복 행동대원을 만들었다"는 기사에서는 소름이 돋습니다.

'팔면봉'이라는 자리에서는 "유혈혁명으로 정부전복 획책, 이제야 알겠다. 왜 그토록 어지러웠는지를"이라고 기사를 쓰면서 사실이 아닌 일을 마치 사실인 듯 못박습니다. 그리하여 군사 쿠테타와 독재 정권 때문에 나라와 사회가 어지러운 현실 책임을 다른 데에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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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7월 5일치 <조선일보>뿐이 아닙니다. 전두환 찬양노래를 불렀던 기사는 또 얼마나 많으며, 박정희 찬양노래를 불렀던 기사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 1980년 7월 5일치 <조선일보> "팔면봉" 기사.
ⓒ 최종규
가만가만 생각해 보아요. 김대중씨가 정치 복권을 한 일은 무척 중요한데, 이번 일을 또다른 테두리에서도 돌아보면 좋겠어요. 김대중씨는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내란을 음모했다'는 군부 독재자가 내린 거짓 혐의을 벗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김대중씨를 '두 번 죽였다(익살꾼 정준하씨 말을 빌자면)'고 할 만한 신문기사에서는 명예를 되찾지 못했어요. 명예회복은 사법부 판결과 함께 그때 거짓 기사를 받아쓰기 했거나 외려 부풀린 신문기자들이 뉘우치고 사과를 하는 일까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궁금합니다. 그때 "金大中 內亂음모로 軍裁회부"라는 큰 글씨를 1면 머릿기사로 올렸던 <조선일보> 편집부장과 편집부 기자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말이에요. 하나 더. 지난날 계염사령부에서 포고문을 내놓은 사람들은 무얼 할까요? 그 사람들도 김대중씨를 비롯해 문익환, 함석헌 선생 앞에서 사죄해야 하지 않을까요? 계엄사령부 포고문은 마지막에 이렇게 끝납니다.

.. 김대중은 그동안 정부가 국민여망에 부응하여 새 시대를 향한 정치일정을 내외에 공약하고 이를 착실히 추진하고 있는 사실도 온갖 비방과 날조된 유언비어 유포로 국민을 현혹시켜 불신케 하는데 혈안이 되었을 뿐 아니라 특히 선량한 학생들을 선동하여 자신의 야욕 달성에 악용하는 등 그가 내세운 `민주회복' 주장이 한낱 내란음모와 정권탈취의 목적을 위장, 은폐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였음이 낱낱이 밝혀진 것이다...극소수 이와 같은 반국가적 망동분자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미명 아래 획책하는 이 엄청난 파괴적 행태와 선동에 국민 여러분과 특히 학생들은 다시 한번 경각심을 일깨워 현혹되지 않으시기를 당부드리며, 아직도 도피중인 관련자들은 하루빨리 수사당국에 자수하여 전죄를 용서받고 내일을 되찾도록 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언젠가 참이 드러나는 역사이겠으나 참이 드러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을 거쳐야 하고, 참 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흘러야 한다고, 또 참 많은 사람들이 아파한다고 거짓을 참이라 말할 수 없어요. 더구나 여기저기 흩어지거나 사라지는 수많은 역사 자료를 그대로 묻어둘 수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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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와 얽힌 또 다른 신문을 들춰봅니다. 1998년 1월 19일치 <조선일보>입니다. 1998년 1월 18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과의 대화'라는 걸 했습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뽑힌 뒤 신문 면수를 크게 줄이면서 움츠렸던 <조선일보>. 대통령 당선자 인기가 날로 치솟고 '국민과의 대화'까지 하니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그 때 <조선일보> 보도는 김대중 당선자가 한 말 토씨 하나까지도 녹음해서 다 챙겨 가면서 기사로 담습니다.

▲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뽑힌 뒤 했던 "국민과의 대화(1998.1.18)"를 <조선일보>는 그 이튿날 1쪽뿐 아니라 여러 쪽에 걸쳐 크게 내보냈습니다.
ⓒ 조선일보
지난 1980년, 내란을 음모하여 한반도를 '유혈폭동의 소용돌이로 몰아붙였다'는 사형수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뽑혔다는데, 그런 이야기를 <조선일보>에서는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내란음모자도 대통령이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건지, 아니면 그때 <조선일보>가 쓴 기사가 잘못되었다는 건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힘을 가진 이 앞에서는 언제나 고개 숙이며 쩔쩔맨다는 신문사 속성만은 엿볼 수 있어요.

책꽂이 한쪽 구석에 꽂아두었던 옛날 신문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둡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언론은 언론대로 자기가 가야 할 가장 바르고 곧고 옳은 길을 가야 해요. 바르고 곧고 옳은 길을 가지 않는다면 언론이 아닙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참말을 해야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권이 바뀐다 하여도 똑같이 옳고 곧은 목소리를 내야지요.

앞으로도 헌책방에서 또 다른 옛날 신문을 찾을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가끔씩 보이리라 생각해요. 앞으로 찾아낼 옛날 신문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어떤 묻혀진 이야기가 있을는지, 또 어떤 참말과 거짓말이 깃들어 있을는지. 헌책방을 다니며 옛날 신문 찾는 일은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hbooks.cyworld.com)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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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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