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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은 탄핵에 대한 정치적 심판

이번 총선이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부당성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장이었음은 자명하다. 탄핵에 저항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은 지역구 5석에 정당득표율 7.1%로 모두 9석을 얻는 데 그쳐 당의 존립까지 걱정해야 하는 참담한 지경에 처했다. 한나라당은 비록 121석이라는 적지 않은 의석을 얻어 스스로 '선전'이라고 자위하고 있으나, 이는 영남지역주의와 시대착오적 박정희 향수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한 결과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당리당략에 의해 국정을 농단한 세력에 대해 국민은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문제는 총선 직후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탄핵철회론'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총선에서 확인된 민의를 겸허히 수용하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탄핵안을 철회하겠다고 나온다면 이를 거부할 이유도 명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탄핵철회를 위한 여야 대표회동을 제의하고 민주노동당이 이를 거들고 나섰음에도 한나라당은 딴청을 부린다. 박근혜 대표와 당직자들이 나서서 "헌재의 심판 결과를 지켜보자"고 한다. 맞은 사람은 화해를 하자는데 때린 쪽에서는 경찰서 가자고 잡아끄는 모양새다. 어처구니가 없다.

탄핵심판 전망 - 탄핵안은 인용될 여지가 있는가?

민의를 무시한 대통령 탄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아니, 탄핵안 자체가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탄핵문제는 이미 헌법재판소의 손으로 넘어가 버린 지 오래다. 여야가 탄핵안 철회를 합의하더라도 철회의 법적 근거가 없다. 헌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치적 선언에 그치고 말일이다. 실익이 없다는 말이다.

탄핵안 철회는 탄핵주도세력의 반성과 참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정치적 화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때린 놈'이 사과할 마음이 없단다. 경찰서 가서 따져보자고 한다. 그럼 맞은 사람은? 그래도 화해하자고 조를 것인가?

혹시라도 탄핵소추안을 헌재에서 받아들이기라도 한다면 큰일 아닌가. 그 가능성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우리 헌법은 제64조 1항에서 탄핵소추의 요건으로 대통령 등(고위직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로 규정하고 있다. 우선 탄핵소추 사안이 직무집행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명백하고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어야 한다. 정치적 무능이나 실정, 측근비리 등은 이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헌법학계의 지배적 견해이다.

야당이 제시한 사유 중 측근비리와 경제상황 악화 등은 애초부터 사유가 못되거나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사유는 되지 못한다. '모든' 법률위반이 다 탄핵사유가 되고 '사돈의 팔촌'이 저지른 개인적 비리도 탄핵사유라고 한다면 대통령 목숨이 '파리 목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이 그나마 탄핵사유가 될 만한 일이다. 만약 대통령이 이전의 군사독재 시대처럼 관권을 동원하여 야당을 탄압하고 여당의원의 당선을 위해 국가조직을 동원해 불법선거를 자행했다면 그것은 마땅히 탄핵사유가 될 것이다.

허나 대통령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특정 정당의 선전을 희망하는 발언을 한 정도로 탄핵받는다면 정치인으로서, 아니 대통령이기 이전에 국민으로서 가지는 정치적 기본권을 박탈하는 일이니, 이 또한 탄핵사유로 받아들여질 일은 결코 아니다.

노 대통령 기자 질문 '답변'이 과연 탄핵사유 되나

헌재 재판관의 보수적 성향이나 재판진행상 소추위원 측의 일부 주장이 받아들여진 점(증거조사, 증인신청) 등을 들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괜한 걱정은 아니겠으나, 그로써 탄핵안의 인용 가능성을 운운하는 것은 성급하다. 우선, 앞에서 본 것처럼 탄핵사유 자체가 성립하지 않거나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 첫째다.

다음으로, 탄핵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심판이 내려졌다는 점이다. 헌재가 판결에서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다고는 볼 수 없다. 헌재 자체가 '정치적 사법기관'이다.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현직 법관으로만 구성되는 대법원과 달리 헌재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그 구성에 관여하며,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탄핵심판 권한쟁의심판 등을 관장하고, 위헌법률심판 등에서도 법적 판단 외에 정치적 고려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헌재이다. 그러한 헌재가 이미 국민의 정치적 재신임을 얻은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또한, 재판관의 '보수적 성향'도 그리 문제될 일은 아니다. 헌재는 물론이고 사법부는 본래 보수적이다. 고금동서가 그러하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법부가 보수적이라는 말은 첫째, 이념적으로나 정치성향이 보수적이라는 의미와 둘째, 심판의 잣대로서 정의와 형평 외에도 '법적 안정성'을 중시한다는 말과 같다.

법률의 위헌판단이나 탄핵의 인용 등에 재적 3분의2(6명)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고자 하는 장치이다.

국정공백 상태를 하루속히 해소하기 위해 탄핵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탄핵철회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헌재에서 심판절차를 종료할지도 불분명하다. 헌재는 아마도 최종판단을 내리려 할 것이다. 헌정사에서 전무했고 후무할지도 모를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기회(?)를 쉽게 포기할 리 없는 것이다.

헌재의 최종판단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는 22일에 평의를 연다고 하니 대략 한달 안 쪽으로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정치권에서 탄핵철회 공방을 벌이는 동안에 심판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탄핵철회론의 함정 - 탄핵세력에게 주는 면죄부

탄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민의를 무시하고 탄핵을 강행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민에게 백배사죄하고 탄핵안 철회를 의결해야 한다. 문제는 '의회쿠데타 세력'에게 자칫 면죄부를 주게 된다는 점이다.

국민은 총선을 통해 탄핵소추가 잘못됐다고 선언했고,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재신임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헌정사 최초로 탄핵소추된 대통령이라는 멍에는 남는다. 만약 여야 합의로 탄핵을 철회하고 그로써 헌재심판이 종결된다고 하자. 야당의 탄핵소추는 정녕 부당한 것이었던가? 대통령 탄핵의 사유는 타당성이 있는 것인가? 만약 다음에 이런 사태가 재발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대통령과 민주개혁세력은 총선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이제 헌재 심판을 통해 법적 승리를 거둘 차례다. 탄핵철회는 '완전한 승리'의 기회를 박탈하는 자충수다. 만약 탄핵철회를 합의하게 되면 한나라당은 그 '양보'를 빌미로 새로운 요구를 할 것이고 '면죄부'를 얻게 될 것이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제17대 국회가 할 일은 너무나 많고 시대적 소임은 무겁기만 하다. '상생의 정치'는 필요하다. 극한대결의 정치에 신물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잘못을 무턱대고 덮고 갈 일은 아니다.

잘잘못을 따지고 옥석을 가리자. 국민의 신임과 열망을 바탕으로 낡은 정치를 일신하여 부패 무능 정치인을 퇴출시키자. 그리고 탄핵에 대한 법적 심판은 헌재에 맡기자. 헌재가 스스로에게 부여된 기회와 역사적 소임을 완수하길 기대하며 부당한 탄핵소추안의 조속한 기각결정을 촉구하자. 그것이 올곧은 '역사의 심판'을 위한 것임을 결코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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