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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결과가 의미하는 것

아직 중앙선관위 최종발표를 남겨두고 있지만, 이번 제17대 총선에서 드러난 결과는 열린우리당의 과반(152석) 확보와 한나라당의 선전(121석), 민주노동당의 약진(10석)과 민주당(9석) 및 자민련(4석)의 몰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총선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선 '차떼기'로 대표되는 부정부패와 국민의사를 무시하고 대통령 탄핵을 강행한 '오만한 야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다. 특히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의 몰락은 국민적 심판의 신랄함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음으로, 지역주의 투표 행태의 재현이다. 한나라당은 영남권(경남·경북·울산·부산·대구) 68석 중 63석을 싹쓸이했고, 열린우리당은 호남·충청권(충북·충남·대전·전북·전남·광주) 55개 의석 중 44개 의석을 휩쓸었다. 대한민국이 '동한민국'과 '서한민국'으로 갈릴 판이다.

그 다음으로, 양당제에 진보정당이 가미된 새로운 의회 구조의 정착이다. 민주노동당은 지역구 2석에 비례대표 8석을 더해 결코 무시하지 못할 의회내 세력으로 부상하게 됐다. '50년 전통'의 민주당을 제치고 제3당이 된 것은 물론, 정당투표에서 전국적으로 10%대의 고른 득표를 하며 13%대의 지지율로 국회 운영의 한 축이 되었다. 가히 17대 국회는 '새로운 국회 운영의 시험대'라 볼 수 있겠다.

이상의 결과들이 의미하는 바와 그에 따르는 향후 전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근소하게나마 과반수를 획득함으로써 탄핵소추로 인해 직무정지 상태에 있던 노 대통령은 '정치적 복권'이 되었으며,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도 보다 신속하게 진행돼 조만간 '법적 복권'이 되리라 본다.

또한 집권 1년 동안 보수야당·수구언론·심정적 반대자에 발목 잡혀, 제대로 된 권력조차 누려보지 못한 대통령으로서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정치적 재신임을 얻은 것과 같다.

우리 국민은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의회쿠데타'를 결코 승인하지 않았으며, 노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 4년을 보장해 주었다. 왜 그러한 선택을 하였는가? 그것은 첫째, 부패구조의 청산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획득
'식물대통령'의 회생과 개혁에의 국민적 열망


'차떼기', '서청원 탈옥', '대통령 탄핵' 등 일련의 야당 행태를 보면서 국민은 더 이상 낡고 부패한 구세력에 대한 희망을 접었고, 새롭게 정치 개혁을 주도해 나갈 힘을 대통령과 여당에 주었다. '믿어볼 테니 제대로 한 번 해보라'는 것이다.

둘째, 하지만 그러한 신임은 '유보적'이다. 열린우리당의 '턱걸이 과반수'와 38.27%의 정당득표율이 의미하는 바를 곱씹어봐야 한다. 밑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뿌리깊은 반노 세력, 보수주의·지역주의 세력과의 끊임없는 전투가 예정돼 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앞으로의 지난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줌과 동시에 (정동영 의장이 인터뷰에서 말했 듯) 국민의 뜻에서 벗어난 행태를 보일 때는 언제라도 신임을 철회할 수 있다는 냉정한 속내를 보여준 것이리라.

탄핵 사태 직후, 열린우리당이 의석수 200석을 넘길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있었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 그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닌 듯했다. 그러나, 박근혜 바람과 거여견제론과 정동영의 노인폄하 발언 등이 이어지면서 총선 정국은 요동쳤고 수십 년 동안 이 나라를 동서로 갈라온 지역주의의 망령은 이 틈을 비집고 어김없이 등장했다.

거여견제론도 박근혜 바람이나, 편파 방송 논란도 정동영 발언으로 표출된 '노인층의 분노'도 사실, 지역주의 망령이 자신의 화려한 재등장을 은폐하는 가면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를 하고 서청원을 '탈옥'시키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고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기서 과거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본다. 노 대통령은 그의 정치 이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지역주의 망령에 '온몸을 던져' 맞서온 사람이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분당하면서 내세웠던 큰 명분 하나도 지역주의 청산을 통한 전국 정당화였다.

역사는 가정을 허용치 않는다지만, 탄핵 이후 총선까지 열린우리당을 중심에 놓고 다음 몇가지 가정을 해보고 싶다.

한나라당의 선전과 민주당의 몰락, 민노당의 약진
여전히 맹위를 떨친 지역주의, 그 끝을 보다


첫째, 탄핵 가결 이후 터져나온 국민적 분노에 안주하지 말고, 즉 "대통령을 지키자"만 부르짖지 말고 그 대통령을 지켜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개혁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지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둘째, 공천잡음이나 당내분란 등 안일하고 오만한 모습이 아니라 진짜 민주적이면서도 일사분란하게 대오를 갖추고 국민의 심판을 구하는 정당의 모습을 보였더라면?

셋째, "어르신들께서도 탄핵의 부당함을 잘 아시고 정치개혁을 지지하신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번에야말로 투표장에 더 많이 가셔서…"라고 했더라면?

그래도 한나라당이 영남권을 싹쓸이하고 국토가 양분되는 결과가 나왔을까? (여기서 노인층 폄하발언이 실제 투표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20∼30대의 투표율은 많이 오른 반면, 50∼60대 투표율은 떨어졌다니, 이것이 어쩌면 열린우리당의 득표에 결과적으로는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은 총선과정에서 미래지향적인 이슈를 생산해내지도, 대오를 정비하고 당당하고 겸손한 자세로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수구분열주의 세력의 책동에 빌미만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로 여전히 국토의 동쪽을 그들 구세력의 영지로 떼어주고 말았다. 그것을 어찌 '실패'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에, 궤멸적 타격을 입은 민주당과 눈부신 약진을 한 민주노동당의 현란한 대비에서 우리는 지역주의 극복의 희망을 본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5석(전남), 정당투표에서 7.1%로 4석 등 겨우 9석을 얻어 민주노동당에 이은 제4당으로 전락했다. 물론 민주당의 패배야 예정된 일이었으니 몇몇 당사자 외에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닐 지 모른다.

민주당 실패의 표면적 원인은 탄핵 가결 주도와 그 과정에서 한민공조로 기존 지지층에게 씻을 수 없는 실망과 모멸감을 안겨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구냉전세력과 야합한 50년 민주정당'에게 민심은 더 이상 희망을 걸지 않았고, 국민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깨어진 밥그릇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이전투구하는 모습에 전통적 지지층마저 발길을 돌렸다.

한편, 그 이면에는 한나라당의 부활을 경계하는, 영남에서의 몰표에 대응하여 새로운 대안세력을 세우려는 호남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있었다.(물론, 이것이 영남의 지역주의에 대항한 호남의 역지역주의이고, 그래서 영남은 그르고 호남은 옳다는 얘긴 아니다). '지역주의에 희생된 지역정당'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적으로 10%대의 고른 득표를 한 민주노동당의 눈부신 선전과 원내진출은 지역주의 극복의 단초를 제공해 준 점에서도 높히 평가할 만한 일이다. 지역이 아닌 이념과 정책에 따른 지지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현실화하는 모습에서 지역주의 망령의 끝자락을 보았다. '대표적인 지역정당'이었던 자민련의 몰락은 새삼 말해 무엇하랴.

'궁극의 승리'를 기원하며

우선 신바람나는 개혁 정치의 모습을 보고 싶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신임을 바탕으로 낡은 정치 관행과 부패 구조를 청산하고 새정치를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한 정치개혁을 국민의 공감대 속에서 과감하게 추진하길 기대한다. 사람을 바꾸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무엇보다 제도와 법을 개혁하자. 국보법, 정간법 등 수십년 묵은 악법도 이번 기회에 꼭 개정하자.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는가!

한나라당은 총선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내쫓김을 당한 처지다. 120석을 얻었다고, 차기 대선에서 유용하게 팔 수 있는 '상품'(박근혜 대표)을 얻었다고 해서 또다시 발목잡기나 하는 낡은 정치를 반복한다면 다시는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 참에 제발 스스로 그토록 주장하는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민주노동당은 원내 제3당으로서 의석수 이상의 몫을 해줘야 한다. 정당정치의 요체는 이익정치요, 이념과 정당정책에 따라 국민들이 이합집산(!)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스스로 정체성을 지키되 대의 앞에 작은 차이는 무시할 수도 있는 지혜로운 처신을 바란다.

17대 국회에서는 '지역'을 볼모로, 낡은 정치, 경제를 갉아먹는 부패한 정치가 발붙일 수 없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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