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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작은 녀석에게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부탁을 했습니다.

"반장하지 마라."
"........"
"왜 대답을 안해? 하지 마. 알았지?"
아들은 대답 대신 문을 쿵 닫고 나가버립니다.

아들이 반장이면 좋지 왜 하지 말라구 하느냐구요? 아들 반장인 죄(?)로 엄마가 학교에 치러야할 공식, 비공식적인 의무들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머니회 등의 모임을 반장 엄마가 맡아 일년간 꾸려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학교행사를 다른 학부모들보다 우선 또는 앞장서서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다보니 그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물질적 부담이 작지 않습니다.

또 이런 일의 경우 잘 되면 본전이고 잘못되면 욕을 먹기 십상이라 대단한 조심성도 요구되는 아주 불편한 일입니다. 물론 어머니회에서 하고 있는 일련의 학교지원 활동들은 앞으로 자율적인 범위내에서 잘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반장하지 마라"

지난주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 녀석은 굉장히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죠. 반장이 돼 버렸거든요. 안 한다고 그랬는데, 자꾸 그러다가 선생님한테 꾸중만 들었어요. 뽑아준 친구들에게 미안하지 않냐면서."

마치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듯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로서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아냐 잘했어. 우리 아들 인기 좋은 모양이네. 기왕 맡았으니 잘해봐. 엄마도 열심히 도울께."

반장이 되어 기뻐해야 할 아이가 엄마가 부담스러워할 것이 걱정돼 미안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공연한 말을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평소보다 더 큰소리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입니다. 시장을 보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아들친구의 엄마를 만났습니다.

"아이구 그집 아들 반장됐다면서. 한턱 쏴야지. 거저가 어디 있어. 그래서 뭐 보냈어요? 우리애 반에는 어제 피자 들어왔다고 하던데."
"네? 아직 못했는데."
"아직이라니? 애들이 기다릴텐데. 그거 몇푼한다고. 빨리 넣어줘요. 공연히 아들 곤란하게 하지 말구."

생각해보니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1학기 2학기 반장선거가 끝나고나면 늘 간식을 먹고 왔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반장 엄마가 보냈다는 간식을 먹고 즐거워했던 우리 아이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반 아이들 역시 간식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간식 넣어야하니?"
아들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안해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괜찮아요.하지 마세요. 안해도 돼요."
"그럼 다른 반은?"
"다른 반? 들어온 반도 있고. 에이 잘 몰라요. 엄마 맘대로 하세요."

공연히 가슴이 덜컥 하고 내려 앉습니다. 눈치없는 엄마 때문에 아들이 곤란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햄버거를 들고 학교로 가다

더 미룰 것 없이 다음날 가까운 햄버거집에 가서 아이들 수대로 햄버거와 음료수를 사서 학교로 향했습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없어서 못먹겠습니까. 단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도시락이 아닌 색다른 간식을 먹는 것이 즐거운 것이겠지요. 즐거워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저 역시 기뻤습니다.

마침 정규수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라 아들과 함께 건장한 아이들 몇 명이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 먼저 드리고 먹어라."
저의 당부에 아이들은 말합니다.
"오늘 선생님 출장가셨어요."
"그래? 그럼 잘 먹어라."
"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은 90도로 허리를 접어 개구지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며칠 후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에 간 김에 담임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어머니들이 모두 가신 후 저를 따로 조용한 곳으로 부르신 선생님은 무거운 목소리로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햄버거. 어머니가 넣으셨나요?"
"네."
"왜 넣으셨나요?"
"그게 반장도 되고. 애들한테 고맙다고."
"저한테 미리 알리지도 않으시고…."
"뭐 그런 것까지 알리고 그래야 하나요?"

"아니죠. 어머니. 애들이 반장되었다고 먹을 거 돌리고 그러는 건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보세요. 대통령도 탄핵이 되는 때에 아이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다른 반도 그랬다고 하고 저도 그냥 관행대로 한 것뿐인데. 죄송합니다."
"어머니, 나쁜 관행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시기 전에 꼭 저하고 의논해 주시구요. 어머니 마음을 알았으니 이번만은 넘어가겠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용석이와 탄핵에 대해 이야기 해보셨나요?"
"그게 얼굴 볼 새가 없어서요. 그냥 간단히 알려는 주었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오늘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부모님과 토론을 해보라고 했으니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중요한 문제라서 나중에라도 대입에서 논술주제로 이용될 수도 있는 내용이거든요."

면담을 끝내고 교문을 나서며 씩 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선생님께 변변한 변명 한마디 못한 채 꾸중을 들었지만 왠지 기분은 신선한 새벽바람을 맞은 듯 상쾌했습니다.

눈앞의 현실만 보고 아이를 그르칠 수 있었던 학부모의 잘못을 따끔하게 꼬집어주신 선생님이 너무나 감사하고 그런 선생님 아래서 바르게 지도를 받게 될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저를 야단치시던 분은 초임후 몇 년 안되신 나이 어린 처녀 선생님이셨지만 지금까지 두 아이를 초중고등학교에 보내면서 만나본 어느 선생님보다 성숙한 교사관을 가지고 계신 분인 듯했습니다. 저렇게 바른 생각을 가지신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 곁에 계시는 한 우리 아이들의 장래는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의 그 초심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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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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