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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 리차드 클라크로 인해 촉발된 '폭로정국'이 이제 막 시작된 미국 대선경쟁에서 워싱턴 정가는 물론 일반 미국인들의 '식탁화제'가 되어 미 전역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리차드 클라크는 지난 22일 <모든 적들에 대항해서(Against All Enemies)>라는 책을 통해 9·11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알 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이를 묵살했고, 결국 9·11이 일어나자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연관성을 상정해 무리하게 이라크전을 일으켰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화 의원들 "클라크 증언 일관성 없다"

먼저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 26일 리차드 클라크가 이번 증언에서 부시 대통령에 대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 2002년 클라크가 상하 양원 합동 위원회 답변에서 행한 증언 공개를 촉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네시 출신 공화당 상원의장인 빌 프리스트는 "2002년 증언 당시, 클라크가 부시 행정부의 9·11 대처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면서 "클라크가 그의 책과 지난주 조사위원회 증언에서 부시를 비판한 내용은 이와 크게 상반된다"고 비난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2002년 클라크의 의회 증언 내용의 공개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리스트는 "클라크가 책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특히 지난 화요일 증언 초두에서 클라크가 9·11 희생자들과 국민들에게 '참회성' 사과 연설을 행한 것을 가리켜 하나의 '연극'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프리스트는 "클라크는 국가를 대신해 사과할 권한이나 책임도 없으며,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만과 조작의 극치를 보여준 행위였다"고 맹렬하게 비판하고 "클라크는 그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정직하게) 답변할 일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원들은 클라크가 지난 2002년 상하 양원 합동 위원회에서 '선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위증죄 피소에서 조차 벗어나 있다고 안심하고 있으나 프리스트는 "클라크가 미디어 앞에서 (전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며 고소할 뜻을 비쳤다.

공화당 하원 대변인 데니스 해스텃 의원도 지난주 청문회를 "대선 기간 중에 벌어진 (계산된) 정치게임"이라며 "국가안보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9.11에 관련된) 가능한 많은 정보들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클라크의 증언에 대한 공개를 우회적으로 주장했다.

민주당 하원 정보위원회 의장인 포터 고스는 "이번 증언은 클라크가 전에 우리에게 제공했던 증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며 자신은 이미 당시의 클라크의 증언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모종의 조치를 취했다고 말햇다.

한편 민주당 의원들은 프리스트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의 위증 주장과는 달리 클라크가 2002년에 했던 증언과 이번에 했던 증언 사이에 불일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엇갈린 의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클라크 증언 불일치점 발견 못해"

플로리다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이며 이번 조사위원회 공동 위원장이기도 한 밥 그래햄은 "기억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클라크의 증언을) 회고해 보면, 당시 클라크가 증언한 것과 이번에 증언한 것 사이에는 아무런 불일치점이나 모순(inconsistent or contradictory)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래햄 의원은 자신은 클라크의 증언 공개를 전적으로 찬성하며, 대신 그의 증언 전체를 공개할 것과 2001년 9·11 사태 전후에 알카에다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취했던 모든 조치에 대한 정보도 동시에 공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지난 26일 민주당 상하양원 정보위원회 위원들이 2002년 클라크의 증언을 다시 읽어 본 결과 이번 증언과 "완전히 일치(fully consistent)"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워싱턴 포스트> 지에 밝혔다.

2002년 상하양원 합동위원회 멤버였던 민주당 하원 낸시 팰로시 의원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포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인격적인 살인에 가담하고 있는 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누릴 수 없으며, 언론의 자유는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면서 클라크에 대한 백악관과 공화당의 인신공격성 공세를 비판했다.

죤 록펠러 4세 상원의원도 빌 프리스트의 주장을 "근거없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한편 공화당 의원들이 클라크를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와중에 부시 행정부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 26일 PBS 텔레비전 '뉴스시간' 프로그램에 출연해 클라크의 증언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고 나서 놀라움을 안겨 줬다.

파월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클라크는 대 테러전 분야의 전문가로 나라를 위해 매우 훌륭하게 봉사해 왔다"고 칭찬한 뒤 "클라크의 책이 (9·11 전후의 내막을) 완벽하게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가 어떤 나쁜 동기에서 그 책을 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파월 장관은 "나는 클라크의 증언에 공세를 취하는 그룹의 일원은 아니다"면서 "책은 그냥 책이고, 누구든지 그 책을 읽고 그 내용이 정확한지 어떤지 판단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자유"라고 공화당의 비판 그룹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클라크-라이스, '사실' 논쟁의 핵심 인물

클라크의 책과 조사위원회 증언을 통한 폭로 이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치열한 공방에서 논쟁의 핵심은 과연 부시 대통령이 9·11전에 알카에다를 테러전의 주적으로 삼고 이에 충분히 대비를 해 왔느냐는 것과 이라크 위기의 사전 조작 여부이다.

이 논쟁의 핵심에 앉아 있는 인물은 대 테러전의 '황제'로 불리는 리차드 클라크와 9·11 당시 그의 상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수석 보좌관이이다. 이들의 증언 내용은 9·11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직무유기를 입증하거나, 이를 부인할 필수 요건이 된다.

그러나 클라크의 2002년 증언 내용 공개와 라이스의 공개 증언에 대한 민주당원들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요구는 9·11에 대한 국회 조사 문건들이 비밀에 붙여져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과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백악관은 그동안 9·11 발생 전후 부시 행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에 대해 중대한 국가 안보 기밀의 누설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라이스 안보담당 수석보좌관의 공개 증언을 거부했다. 다만 그녀로 하여금 조사위원회 앞에서는 비공개로 다시 증언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백악관은 클라크의 증언을 비롯, 2002년에 행해진 9·11에 대한 의회 증언들의 공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백악관 관리들은 라이스의 2001년 9·11에 대한 공개 증언과 클라크의 2002년 의회 증언 내용 공개 여부와 시기에 대한 결정은 CIA, 국방부 등과 협의 후 내려질 것이라며 우선은 한 발을 빼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민주당 의원들이 클라크의 증언 내용 공개와 라이스의 공개 증언에 비교적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공화당 의원들은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이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입장에서는 클라크와 라이스의 증언이 공개돼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질까봐 걱정이고, 공개되지 않아도 대선 기간 내내 '의혹' 공세에 시달릴 것 또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프리스트를 포함한 공화당 의원들이 백악관에 클라크의 2002년 증언내용의 공개 요구를 한 것은 백악관과 사전 협의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고 단지 자신들의 결의 일 뿐이라고 <워싱턴 포스트> 지에 밝힌 것은 바로 공화당의 이런 고민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공화당

공화당 의원들은 일단 공개 결정 권한이 백악관에 있기 때문이라며 이같은 태도를 변명하고 있지만 혹 터져나올 지 모를 '악재'를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때문에 클라크의 증언을 공개하라는 그들의 주장이 아직은 정치공세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30년 가까이 국가안보와 대 테러 분야에서 일하면서 그 분야의 '도사'로 인정받은 클라크가 구체적이고 상세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공화당은 이를 뒤엎을 만한 실증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클라크의 증언에 대해 계속해서 '승진을 못한데 대한 보복', '케리로부터 자리를 보장받으려는 것', '계산된 상술'이라며 뜬구름 잡기식 정치 공세만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이 일찌감치 클라크의 상관이었던 라이스 안보 보좌관의 공개 증언과 클라크의 2002년 공개 증언을 주장하고 있고,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도 정치적일 망정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거부 태도는 부시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내세워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품게 만들고 있다.

그동안 클라크와 백악관 측 공방을 지켜보고 있던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27일 대선 유세에서 "클라크의 증언이 거짓이라면 부시 행정부는 즉시 고소하라" 고 다그친 것은 이러한 여론의 풍향을 감지하고 나온 공세로 볼 수 있다.

결국 클라크의 증언 공개나 라이스의 공개 증언에서 클라크가 이번에 벌인 9·11폭로가 '완전한 사실'로 드러나 부시 대통령의 '직무유기'로 결판이 나는 경우나, 정황적으로 '상당 부분 사실임이 인정된다'는 여론이 형성된다면 부시의 백악관 재입성 계획은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뉴스위크> 지가 이번 사태를 대선가도의 "폭풍 경보(Storm Warnings)"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라크의 책은 출간 사흘 만에 최대 신간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워싱턴, 뉴욕 등지의 서점가에서는 일찌감치 품절됐다. 다른 지역 도시에서도 75%가 팔려나가 출판사(Free Press) 측은 재판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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