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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도중에 돌아왔을 때의 모습. 좁은 원룸이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안락했던 집이다.
 여행 도중에 돌아왔을 때의 모습. 좁은 원룸이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안락했던 집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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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9월, 남아프리카 공화국부터 시작된 두 달간의 아프리카 종주를 마치고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울음을 터트렸을 때, 두 달은 생각보다 참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운 이유는 반가움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들은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얘기였다.

"오빠, 며칠 전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여기서 나가야 된대. 여기 전세계약, 그거 사기래."

순간 나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48도의 열풍이 몰아치는 아프리카의 사막에서도 끄떡없었던 나였다.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통화 너머로 전해들은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처음 전세계약을 맺을 때, 자신을 집 주인이자 이 건물을 지은 건설사 대표라고 소개했던 성아무개씨는 집 주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건물의 모든 전셋집은 이미 공매로 넘어가 다른 누군가에게 팔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집주인이 바뀐 셈이니, 방은 빼더라도 돈은 받고 나가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아홉 가구에서 공동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대응을 한다는 이야기에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싶어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세계일주를 하겠노라 직장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떠난 지 두 달째였다.

과연 법은 약자를 위한 것인가

멀쩡하게 도장이 찍힌 계약서가 있다. 그런데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날 수가 있는 것인가. 전세가 드문 서울 바닥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집이었다. 집주인이자 건설사 사장이라고 소개한 성씨가 집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등기부등본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애초에 성씨가 대표로 있는 XX건설에서 건물을 지었지만, 시공비를 지급하지 못해 집이 신탁회사로 넘어간 상태였다.

각종 증명서류들 문제의 계약서에는 양자의 도장과 확정일자까지 적혀있지만 이 모든 것이 법적 효력이 없었다. 심지어 집주인이 자신의 도장이 아닌, 건설사 도장을 찍은 것도 꼼수였다.
▲ 각종 증명서류들 - 문제의 계약서에는 양자의 도장과 확정일자까지 적혀있지만 이 모든 것이 법적 효력이 없었다. 심지어 집주인이 자신의 도장이 아닌, 건설사 도장을 찍은 것도 꼼수였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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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탁금이 불과 5000만 원이었기에, 내가 내는 전세보증금 7000만 원만 있으면 신탁이 풀리고 다시 성씨의 소유가 되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부동산과 성씨의 말이었다. 그래도 내가 주저하자 성씨는 선뜻 계약 대상이 아닌 다른 호수에 1순위로 근저당까지 설정해 주겠다고 했다.

결국 계약은 성사됐다. 내가 낸 7000만 원의 보증금은 신탁 해제에 쓰겠다는 전제였다. 그러나 그는 신탁을 해지 시키지 않았고 결국 집은 공매로 넘어가 시공사의 대표에게 헐값에 팔렸다. 세입자의 임차보증금에 대한 권리 다툼이 생긴 이유이다. 한국에 돌아온 다음날, 공동으로 선임한 변호사를 찾아가서 들은 내용은 이랬다.

"우선 김동주씨는 현재로서는 세입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첫째,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성아무개씨는 집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죠. 즉, 엉뚱한 사람과 계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이대로는 보증금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계약서가 유효하지 않게 되면 임대차보호법에 의한 그 어떤 것도 보장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나는 내가 설정한 근저당이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지만 현 세입자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집에 설정한 근저당도 1순위를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변호사는 내가 보증금을 받을 유일한 방법은 공매로 집을 산 시공사 대표, 박아무개씨와의 보증금반환청구소송에서 승소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기댈 곳은 변호사뿐이었다. 나는 거액의 선임료를 지불한 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직장은 이미 그만 둔 상태였고, 부동산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무죄?

그로부터 1년 뒤, 내가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2013년 3월, 최종 결심을 두 차례나 미룬 법원은 결국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변호사는 "유감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비극적인 현실이 들이닥쳤다. 판결에서 승소한 집주인 박씨가 강제퇴거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소송이 진행되던 지난 1년간의 거주비용을 월세로 전환하여 납부하고 퇴거하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1년간의 월세만이라도 면제해 달라고 비는 것뿐이었다.

"2주일 안에 집을 비우면, 월세를 면제해 주겠다"는 문서가 날아들었다. 그렇게 보증금을 전부 날린 피해자 9명은 거리로 나섰다. 며칠 동안 찜질방을 전전하던 나는 한동안 자살까지 생각하며 살았다. 정말로 심각했다.

  고소할 때 제출했던 그 많은 서류에 비해 달랑 한장으로 결과를 알려온 결과통지서.
 고소할 때 제출했던 그 많은 서류에 비해 달랑 한장으로 결과를 알려온 결과통지서.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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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없었다. XX건설의 대표 성아무개씨를 사기죄로 고소했지만 검찰에서는 "고의성 없음"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항변으로 검찰 대질조사까지 받았지만 "성씨가 처음부터 세입자들의 돈을 가로챌 목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워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가 막혔다. 법리 해석의 결과겠지만, 무려 9억 원이라는 피해액이 발생한 사건이다.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상태로 끝나버릴 수 있는 것인가. 법은 우리에게 "속은 너가 바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성씨는 임대차 계약서에 본인의 도장이 아닌 건설사의 도장을 찍는 치밀함을 보였다. XX건설은 이미 도산한 상태였고 성아무개씨의 사유 재산은 추징대상이 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치밀하게 준비한 사건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무죄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몇 개월이 지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저당권을 빌미로 성씨의 다른 집에 대해 경매신청을 했다.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1순위 보장이 안 될 확률이 높았지만 당시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의외로 경매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난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 법원에 배당 서류를 제출했다. 앉은 건지 누운 건지 알 수 없는 자세의 행정관은 이런 날까지 법원에 와서 귀찮게 하냐는 태도였다. 그는 서류를 두고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확인하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더니 잘못되면 다시 연락이 갈 것이란다. 그가 아무렇게나 한 구석으로 던져 버린 서류봉투가 마치 지난 1년간 내 삶의 무게 같았다.

어쩐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도망치다시피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렇게 나는 법원의 화장실에서 한참을 소리 죽여 울었다. 하루 아침에 전 재산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이 마치 '여행' 때문인 것만 같았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는 매일매일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찾은 경매법정이 내 집을 내가 되찾기 위한 것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찾은 경매법정이 내 집을 내가 되찾기 위한 것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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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4년 2월, 법원으로부터 편지가 날아들었다. 경매가 종료되어 배분을 하니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법정에 들어서던 배당일, 아직 겨울이었지만 등에서 계속해서 땀이 흘렀다.

"사건번호 타경8134, 김동주. 배당금 칠천만원. 앞으로 와서 확인하세요."

곧이어 "이의 없습니까?"라고 묻는 판사의 목소리마저 떨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 시간 뒤 통장으로 입금된 7000만 원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처음부터 근저당권을 내세워 성씨의 집을 팔았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 간단한 문제를 변호사도, 법무사도, 부동산도, 조사를 진행했던 수사관도,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다. 그 동안 내가 겪었던 그 수많은 고통은 결국 변호사의 말만 듣고 현실을 외면하려 했던 대가가 아니었을까.

누군가는 나를 보고 행운의 사나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참으로 슬픈 오늘날 세입자의 현실이다. 부동산과 계약을 맺었던 피해자들에게는 "부동산이 70%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동산 측에서 항소를 한 상태이다.

우리의 잘못이라면 그저 법에 무지했다는 것뿐이었다. 반대로 성씨와 공매로 건물을 매입한 박씨는 법을 잘 이용했다. 그 작은 차이가 우리를 '피해자'에서 '패배자'로 만들었다. 사건번호 타경8134, 생각하기도 싫은 이 사건을 다시 꺼낸 이유는 아직도 다른 피해자들의 힘겨운 싸움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부디 피해자 모두가 어두운 밤바다에서 빠져 나오는 날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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