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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전인 2001년 9월을 기억하며 벽송사를 찾아갔습니다.
ⓒ 임윤수
벽송사는 지금으로부터 470여 년 전, 전북 부안군 송씨 가문에서 태어난 벽송대사, 송지엄 스님이 창건한 절이랍니다. 10살이 되기도 전에 사서삼경을 다 읽을 정도로 총명한 송지엄은 20살에 무과에 장원급제를 하였고, 장군 칭호를 받아 변방에 나가 수많은 전공을 세웠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터란 그 자체가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살벌한 현장입니다. 남을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살아가기를 모색하는 전장에서 송지엄은 인생무상을 절감하였고, 구도의 길을 걷고자 출가를 결심하여 계룡산으로 들어가 수행의 길에 들었다고 합니다.

▲ 산천은 의구하고.... 대나무 뒤쪽에서 자라고 있는 미인송과 도인송은 그대로였습니다.
ⓒ 임윤수
@BRI@운수행각, 떠다니는 구름이나 흘러가는 물처럼 발길 닫는 대로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도하던 중, 지엄의 나이 57세가 되던 해에 지리산에서 수도를 하고 있던 법계정심대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당시는 불교에 핍박이 가해지던 시기니 법계대사는 조선조정에서 자행하고 있는 척불의 화를 피하기 위해 법회 한 번 제대로 열지 못하고 지금의 광점동에서 싸리나무로 광주리를 만들어 내다 팔아 연명을 하고 있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구도의 길이며 수행의 방편으로 찾아온 지엄에게 지도는커녕 변변한 법문 한마디 해주지 않고 광주리 만드는 일만 시키고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를 않았습니다. 뭔가 대단한 가르침이나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송지엄이지만 3년여 동안 별다른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하루하루 잡일만을 반복하게 되자 대사의 문하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옛건물이 되어버린 간월루와 선방입니다.
ⓒ 임윤수
▲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하던 간월루와 선방이 뽀얀 나무기둥으로 된 새 전각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 임윤수
대사의 곁을 떠나기로 작정을 한 지엄은 대사를 찾아가 '이제는 떠나야 겠다'고 하직인사를 드리자 대사께서는 일언반구 이유도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왔듯 가는 것 또한 마음에 달렸으니 마음대로 하라'는 대답하더랍니다.

이렇게 하직 인사를 올린 지엄이 3년여 동안 광주리만을 만들며 생활을 하던 광점동을 뒤로하며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가고 있노라니 '지엄아, 너는 도를 받아라'하고 외치는 법계대사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며 그동안 보아왔던 대사의 일거수일투족이 가르침이었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뇌성 같은 소리에 깜짝 놀란 지엄이 다시 그 길로 돌아가 무릎 꿇고 경솔했음을 사죄하니 그동안 마음의 눈을 가렸던 미혹한 모든 것이 걷히며 정신이 청정해지고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청정해진 마음으로 용맹정진에 들어가니 물욕과 욕망을 버리게 되고, 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되니 법계대사로부터 '벽송대사'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벽송사의 또다른 이름 '백팔조사행화도량'

오고감을 막지 않고, 가르침과 가르치지 않음을 구분하지 않으며 벽송대사가 득도할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었던 법계정심대사는 벽송대사가 깨우침을 얻은 지 3개월이 된 후 어느 날 홀연히 열반에 드셨다고 합니다. 그 후 벽송대사는 자신이 깨우침을 얻은 곳에 절 하나를 세우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마음의 법비를 내리는 터전을 일구셨다고 하니 그곳이 바로 지금의 벽송사입니다.

▲ 보광전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던 법당에서도 세월을 느꼈었습니다.
ⓒ 임윤수
▲ 편액조차 원통전으로 바꿔 단 법당에서도 뽀얀 대팻밥이 느껴집니다.
ⓒ 임윤수
조정의 배불정책으로 그 존폐가 백척간두에 섰던 조선시대 한국 불교, 그 한국불교의 맥을 이어온 서산대사의 스승이 되는 부용과 경성과 같은 고승들이 바로 벽송대사가 흩뿌리는 불심의 자양분, 구도의 법비를 먹으며 벽송의 문하에서 자란 후학들입니다.

벽송사는 선교를 겸한 108분의 대종장들을 배출하니 일명 '백팔조사행화도량'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으니 벽송사는 벽송대사가 흩뿌린 한국불교의 법비를 싹 틔우고 키워준 한국 불교의 종터이자 온실입니다.

6.25 때 인민군과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다 전소

생자필멸, 태어난 자는 너나 할 것 없이 반드시 죽게 마련이니 스님께서는 세수 70을 넘기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적멸의 길, 열반에 드신 스님을 다비해 습과 한 수많은 사리를 염주와 함께 석불에 보관해 왔으나 6·25 전란에 소실되니 안타깝게도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있는 벽송대사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게 됐다고 합니다.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되어 쏟아지는 구름, 높은 하늘에 두둥실 떠있다 빗방울이 됨으로 대지에 생명을 주며 없어지는 구름처럼 벽송대사란 구름은 한국불교가 버텨나갈 수 있는 법맥의 빗방울로 벽송사를 남기셨으니 벽송사라는 절 이름만으로도 벽송대사 유혼은 세세천년을 이어 한국불교계에 전해질 흔적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배척을 당하던 조선시대, 지리산 첩첩 산중에 지어져 고승들을 배출하며 한국불교의 맥을 면면히 이어온 벽송사는 민족상잔인 6·25 당시 인민군이나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토벌하려는 국군들과의 교전으로 전각들이 불타고 수많은 인민군들이 죽는 등 근대사에 있어서도 고뇌의 중생사 만큼이나 수많은 수난을 겪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 그때는 산신각에서도 세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임윤수
▲ 새로 지은 산신각에서 세월의 흔적은 느낄 수 없습니다.
ⓒ 임윤수
장원급제로 장군이 되어 전장에 섰던 송지암, 죽고 죽이는 도륙현장에서 인생무상을 느껴 출가수행을 결행한 벽송대사가 창건한 벽송사가 다시금 근대사의 전쟁으로 소실되었었다는 사실은 끊이지 않는 역사의 반복이며 지금도 지리산 자락 곳곳에 남아있는 시대적 아픔의 흔적일 겁니다.

옛것은 어디로 가고 새것들만 보여

다시 찾아간 벽송사, 6년 만에 다시 찾아간 벽송사는 예전의 모습이 아닙니다. 전설을 쫓고 발길을 따라 찾아들었던 6년 전 벽송사에서는 세월이 느껴지는 빛바랜 단청을 입고 있는 전각들을 보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찾아간 벽송사에는 제 가치이며 역사인줄 모르고 세월의 때를 홀랑 벗어버린 새로 지은 전각들입니다.

덕지덕지 세월이 얹혀있던 기왓장도 보이지 않고, 오래된 단청조차 보이지 않으니 가볍게만 보이는 뽀얀 나뭇결들만 눈 끝에 매달립니다. 목욕탕에서 막 나와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나신들처럼 아직 단청조차 하지 않은 전각들을 이루고 있는 뽀얀 기둥과 뽀얀 서까래의 나뭇결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전각들뿐입니다.

보광전 편액을 달고 있던 법당이 있던 자리에는 원통전 편액을 단 새 전각 법당이 들어서 있으니 가일층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부처님 법당에 분별이 있을 수 없겠지만 주불에 따라 달라지는 편액조차 달라진 사연이 궁금해집니다.

▲ 멀리서 보이던 알록달록한 단청과 빛바랜 기와지붕도 이젠 볼수 없게 되었습니다.
ⓒ 임윤수
▲ 6년전 그대로의 모습인 범종루가 반갑기만 합니다.
ⓒ 임윤수
60년대 후반에 원응대사의 원력으로 중간되었다는 예전의 전각들, 간월루, 선방, 법당 그리고 산신각 까지 새로운 모습들을 하고 있으니 구면으로 찾아갔던 발걸음에 낯설 마음이 드리웁니다.

중건을 하여 반세기쯤의 세월이 흐르니 무정한 세월에 나무기둥이 썩기도 하고 낡기도 해 새로운 전각을 지어야 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중생의 마음엔 옛것에 대한 아쉬움이 멈추질 않습니다. 예전에 서있던 그 자리에 서서 눈앞에 보이는 새 전각들의 기둥과 서까래, 뽀얀 나뭇결 위에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옛 전각들의 알록달록한 단청들을 흘끔흘끔 눈 흘김 하듯 기억의 잔상으로 덧그려봅니다.

벽송사 뒤, 대나무 숲 뒤쪽에 있는 미인송과 도인송이 그대로인 것을 보니 옛벗이라도 만난 듯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해 집니다. 영원한 새것도 있을 수 없고, 영원한 헌것도 있을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사지만 터벅터벅 비탈길을 걸어 내려오는 발걸음엔 새것에 대한 기대감과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번갈아가며 뚝뚝 묻어납니다.

덧붙이는 글 | 벽송사에 다녀온 이야기를 2회로 나누어 올리며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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