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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수 시집 <쉬!> 표지 사진
ⓒ 문학동네
대구 시단을 대표하는 문인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쉬!>가 도서출판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1945년 경북 성주 출신의 문인수 시인은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마흔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한 그는 그 늦은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한국 시단의 어느 누구보다도 시작(詩作)에 몰두해왔다. 문인수 시인의 시에 대한 집중(集中)의 삶을 두고 주변의 동료 시인들은 "그의 삶은 마치 시마(詩魔)에 들려있는 듯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인수 시인의 시작에 대한 집중의 삶은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져 왔다. 그동안 그가 펴낸 시집으로는 첫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1986)를 비롯하여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문학아카데미,1990), <뿔>(민음사,1992), <홰치는 산>(만인사,1999), <동강의 높은 새>(세계사,2000)가 있다.

시인(詩人)이란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한 문학평론가들이 흔히 내놓는 답변은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보통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삶의 이면(裏面)을 들여다보는 견자(見者)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늘 길 위에 서 있는 자(者)다,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문인수 시인이 꼭 그렇다. 그는 끝없이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며, 길 위에 서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거기서 문인수 시인의 시는 태어난다.

저것들은 큰 웅변이다.
시꺼먼 바윗덩어리들이 그렇게
낮은 산자락
완만한 경사 위에 무겁게 눌러앉아 있다. 그러나
인부들은 느릿느릿 풀밭을 다듬다가 가장 널찍한
바위 그늘로 들어가 점심 먹고 쉰다. 쉬는 것이 아니라
나비 발 아래마다 노오란 민들레
낮별 같은 꽃이 연신 피어나느라, 반짝이느라
바쁘다. 지금 아무것도 죽지 않고
죽음에 대해 허퍼 귀 기울이지도 않으니 머쓱한
어른들처럼
군데군데 입 꾹 다문 바위들
오래 흘러왔겠다. 어느덧
신록 위에 잘 어울린다.

- '고인돌 공원' 전문


위 시를 보면 시인은 지금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전북 고창에 있는 고인돌 공원에 서 있는 모양이다.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무겁게 눌러앉아 있는 시꺼먼 바윗덩어리들과 죽음에 대해 귀 기울이지 않는 어른들 그리고 낮별 같은 민들레와 새로 온 신록을 한 데 버무려 넣어 삶과 죽음의 비의를 건져 올리고 있다. 그것은 “입 꾹 다문 바위들”이 “큰 웅변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문인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쉬!>의 많은 작품들도 이른바 ‘길 위’에서 얻어진 게 많다. 그 길은 앞에서 본 전북 고창 고인돌 마을과 동해 바닷가인 영덕 화진포, 남해 땅끝 마을, 매물도, 강원도 영월 청령포, 서해 변산반도 채석강, 그리고 외국인 인도에까지 이르고 있다.

인도 기행에서 얻어진 시편들은 ‘인도 소풍’이라는 부제를 단 14편의 연작시로 시집 4부를 구성하고 있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언제나 길 위를 떠도는 문인수 시인, 그 스스로 “나는 섬, 2박 3일 떠돈 섬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땔감으로 쓰는, 건디기라는 쇠똥덩어리가 있습니다.
쇠똥에 찰흙과 지푸라기 같은 걸 잘 섞은 다음
커다란 쟁반만하게 주물러 널어 말려 쓰는데요,
이 일은 주로 여인네들이 합니다. 그러니 이 쇠똥덩어리 마다엔 어김없이
눈 깊어 안타까운 그늘,
그 무표정한 얼굴의 야윈 손자국이 낭자하게 말라붙어 있지요.

현지의 어느 작은 마을 호텔 앞에서 그날 새벽
할 일 없는 한 사내와 손짓 발짓
상통하며 이 건디기불을 피워 봤는데요, 나는 문득
함께 못 온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돈 번다고 혼자 고생만 하는
늙은 아내의 월급 봉투에도 물론 이런 손자국
무수히 말라붙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매운 연기를 피해
이리 저리 고개 돌리며 자꾸 이 사내와 함께 찔끔거렸습니다.

- '인도소풍, 말라붙은 손' 전문


이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인도 소풍’ 연작시들은 대부분 타즈마할 궁전 같은 길 바깥의 화려함보다는 ‘빨래궁전’ ‘모닥불’ ‘똥덩어리’ ‘굴렁쇠’로 대표되는 길 안쪽의 어둠을 품고 있다. 서민들의 삶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빛은 언제나 촉촉한 물기로 젖어있다. 이 시도 그러하다. 시인은 인도 하층민들이 땔감으로 쓰는 쇠똥어리 건디기에는 "눈 깊어 안타까운 그늘"을 가진 여인네들의 야윈 손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걸 보며 돈 버느라 함께 오지 못한 아내를 생각하고 있다.

늙은 아내의 월급봉투에도 이런 야윈 손자국이 있다는 걸 인식하며 시인의 눈빛이 젖어들고 있다. 어찌보면 참 단순한 내용의 작품인데도 강렬한 서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시에 드러난 서정적 주체의 절실함과 솔직함이라고 하면 어떨까.

‘건디기, 쇠똥덩어리, 어김없이, 낭자하게, 상통하며, 찔끔거리다’ 이런 일반 시인들이 쉽게 사용하지 않는 또 거센 어감의 시어들을 과감하게 사용함으로써 절실함과 솔직함의 서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얼른 보면 전체 시행에서 툭툭 불거져 나온 듯한 이런 시어들의 사용은 시인의 높은 책략의 시적 전술이다. 고수(高手)의 솜씨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
밤마다 파도 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이다.
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 소리는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아 너라는 冊,

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

- '바다책, 다시 채석강' 전문


달북 문인수 시인의 몸이 머무는 곳마다 결 좋은 서정시가 태어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문인수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쉬!>의 대표적인 명편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은 시인이 서해안 변산반도 아랫녘 격포항에 있는 책석강이라는 ‘길’에서 얻어진 작품이다. 중국의 시선 이태백의 낭만적인 죽음을 불러들인 그 강과 같은 이름의 채석강.

격포항 우측 닭이봉 기슭에 수성암 단층을 이루고 있는 단애(斷崖)를 두고 시인은 '아 너라는 冊'이라 부른다. 그래서 시인은 파도가 된다.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아 시인은 이 무진장한 그리움으로 울고 또 운다. 이 끝없는 그리움의 파도 소리로 바다책이 만들어진다. 시인은 이렇듯 풍경과 무진장 연애를 걸고 있는 도저한 낭만주의자다.

문인수 시인의 시를 불러내는 길이 먼 거리의 여행지(旅行地)인 것만은 아니다. 그 길은 시인이 살고 있는 동네 골목길에 핀 민들레꽃이기도 하고(「밝은 구석」), 찰칵, 현관문을 여는 순간(「밝은 날 명암이 뚜렷하다」), 탈이 난 엄지발톱 위(「발톱」), 집 근처 학교 운동장(「집 근처 학교 운동장」), 겨울 포도밭 포도나무 넝쿨(「철자법」), 새끼 염소의 끊임없는 티격태격의 뿔 위(「각축」), 말이 되지 않아 집어던진 구겨진 에이포 용지(「꽃」)이기도 하다.

시집 겉표지에서 문단의 선배 시인이며 지기(知己)이기도 한 김명인은 문인수의 시를 두고 다음과 같이 상찬(賞讚)의 말을 얹어두고 있다.

“문인수의 시편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이에 파묻히는, 제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몰두와 통찰이 스며 있다. 그의 북질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이 되어 마침내 마음을 쓰다듬으니, 누더기를 깁느라 자신도 누더기가 되어본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너덜너덜함을 애써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중략)젊지 않은 나이에 노래를 익혀 어느새 득음(得音)의 경지를 열어젖힌 그의 내공은 그 동안의 각고가 간단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시인은「自序」에서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도대체, 끝장낼 수 없는 시여”라고 탄식하고 있지만, 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 그 때마다 그의 노래는 더욱 넓고 깊어갔다. 달북 문인수 시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몸 위의 현(絃)은 갈수록 팽팽하고 손놀림은 더욱 정교하여 그는 이제 한국 시단의 중심이다. 도대체 늙지 않는 그 노래의 비법이 무언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문인수 시집 <쉬!>(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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