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 2001년 8월에 잡지 <월간 중앙>에는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殺生簿 초안 최초 공개>라는 기사가 ‘이달의 특종’으로 소개되었다. 기사 내용은 1948년 당시 임시정부 국무위원·정치부장으로 있던 김승학(金承學)이 쓴 육필 원고가 바로 같은 해에 민족정경(政經)문화연구소라는 단체에서 펴낸 <친일파 군상>이라는 책의 초고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김승학이 임시정부에서 맡고 있던 직책을 감안해 볼 때 <친일파 군상>에 수록된 명단은 곧 임시정부 입장에서 정리한 친일파 ‘살생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월간 중앙>에서 보도한 내용은 <친일파 군상>에서 보다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거기에 수록된 이른바 친일파 명단에는 활동분야별로 분류된 친일행위자의 이름과 그 행위 내용이 몇몇 근거자료와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지원병 혈서지원자’라는 분류항목에는 당대의 인기가수였던 남인수(南仁樹), 박향림(朴響林), 백년설(白年雪) 세 사람의 이름이 혈서지원 날짜와 함께 보인다.

<친일파 군상>에 실려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세 사람은 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어 전선으로 가기 위해 혈서까지 써 가면서 지원을 한 것이 된다. 이러한 내용은 2003년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기획한 <굴욕의 노래, 친일음악>이라는 전시회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어, 자료집에서는 남인수와 백년설을 지원병 혈서지원자라고 규정해 놓았다.

그렇다면 과연 남인수, 박향림(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박향림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다), 백년설 세 사람은 정말로 혈서를 썼던 것일까? 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 사람을 지원병 혈서지원자라고 한 최초의 기록은 1948년에 나온 김승학의 원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추정되는 <친일파 군상>이다. 그러므로 혈서지원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친일파 군상>에 오류가 있는지 여부와 그 근거가 된 자료 등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선 <친일파 군상>이라는 책의 성격부터 살펴보자면, 이는 <월간 중앙>에서 표현한 것 같은 다듬어진 ‘살생부’가 아니다. <친일파 군상>의 서문과 범례에서는 책에 수록된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책 내용만을 가지고 친일파를 규정, 단죄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을 지원병 혈서지원자로 분류해 놓은 부분만 보아도 오류의 가능성은 여러 가지로 확인된다.

책이 간행된 1948년 이전에 이미 죽은 사람은 친일적 행위를 했다 해도 일단 그 이름을 싣지 않는다는 것이 <친일파 군상>에서 밝힌 전제임에도 불구하고, 1946년에 세상을 뜬 박향림의 이름은 그대로 올라가 있다. 또 여자인 박향림이 지원병으로 나서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것도 당시 실정에 들어맞지 않는 점이다.

지원병 혈서지원자 명단에 실린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대개 이름과 함께 나이, 주소, 혈서지원 날짜 등이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남인수를 비롯한 세 사람은 앞서 지적했듯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혈서지원을 했다는 날짜만 기록되어 있으니, 여기에도 역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지원병 혈서지원자 명단이 과연 어떤 자료를 근거로 해서 작성됐는지는 <친일파 군상>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범례에서 일제 말기 당시의 신문과 잡지를 참고했다고 한 점을 감안해 볼 때, 1940년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된 이후 유일한 한글 신문으로 존재했던 <매일신보>를 근거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몇 년 몇 월만이 아니라 날짜까지 기록한 경우라면 일간지가 가장 유력한 참고자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친일파 군상>에서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이 혈서지원을 했다고 한 날짜에 나온 <매일신보>를 보면 세 사람이 혈서지원을 했다는 기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단 공교롭게도 세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는 내용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오케레코드에서 1943년 11월 신보로 발매한 <혈서지원>(음반번호 31193)이라는 군국가요의 광고이다.

정리를 해 보자면, 남인수와 박향림, 백년설 등이 가수로서 <혈서지원>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원병이 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친일파 군상>을 펴낸 민족정경문화연구소에서는 단지 신문에 실린 <혈서지원> 광고를 보고서 그 날짜에 세 사람이 혈서를 쓴 것처럼 기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사가 아닌 광고를 근거로 했다면 이름 석 자와 날짜 외에 나이, 주소 등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아무래도 일제 말기 국내 사정을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임시정부 관련 인사들이 귀국 이후 자료를 다소 엉성하게 살피는 와중에서 발생한 오류로 보인다. 자료 검토가 철저하지 못했기에 여자를, 그것도 이미 죽은 사람을 지원병 혈서지원자 명단에 잘못 올렸던 것이다.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이 혈서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혈서지원>이라는 군국가요를 부른 것은 사실이니, 분명 민족에게 죄를 지은 것이기는 하다. 더구나 <혈서지원>은 일제 말기 군국가요 중에서도 가장 노골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日章旗) 그려 놓고 성수만세(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해군의 지원병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감격에 못 이기어 손끝을 깨물어서/ 나라님의 병정 되기 지원합니다
나라님 허락하신 그 은혜를 잊으리/ 반도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반도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핏줄/ 한 나라 지붕 아래 은혜 깊이 자란 몸/ 이 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대동아(大東亞) 공영권(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침/ 구름을 헤치고서 솟아 오는 저 햇발/ 기쁘고 반가워라 두 손을 합장하고/ 나라님의 병정 되기 소원입니다
(유성기음반에 실린 내용을 채록한 것이다)


제1절은 백년설 노래, 제2절은 박향림 노래, 제3절은 합창, 제4절은 남인수 노래, 제5절은 다시 합창으로 이루어져 있는 <혈서지원>은 인기가수를 세 사람이나 동원한 점에서 이미 나름대로 세심한(?) 기획의도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박시춘(朴是春)이 작곡한 곡조는 별다른 특징 없이 평이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조명암(趙鳴岩)이 쓴 가사는 군국가요의 극치라 해도 좋을 만큼 시종일관 군국 이념에 투철하다.

혈서지원을 한 것이나 <혈서지원>을 부른 것이나 잘못이기는 마찬가지이니 미주알고주알 따져서 가를 것이 있겠냐고 지적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엄정한 사실 규명 없이 친일 문제를 논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의 청산을 빙자한 또 다른 역사 왜곡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지난 역사에 대한 ‘다시 보기’는 비단 군국가요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노래를 찾는 사람, 노래로 역사를 쓰는 사람, 노래로 세상을 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