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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은 비원인가? 창덕궁 후원은 조선 초기부터 후원(後苑)·북원(北苑)·금원(禁苑) 등의 명칭으로 불리다가 조선 고종 이후, 일제 때에는 비원(秘苑)이라고 불리었다. 자료에 의하면 가장 보편적으로 불리어진 명칭이 ‘후원’이었다.

▲ 동궐도 중 후원부분

창덕궁 후원은 흔히 불리는 비원이라는 이름처럼 비밀스럽고 남에게 공개되는 것을 꺼려하는 곳이 아니다. 일제 시대 때 일본인들이 마치 공원처럼 여기며 즐겼던 그런 곳은 더 더욱 아니다. 의미로만 보면 연산군 때의 후원이 비원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연산군 때에 후원은 가무를 즐기는 놀이터로 변했고 이런 것이 공개되는 것을 꺼려한 나머지 담을 높게 쌓아 후원은 말 그대로 비밀스러운 '비원'이었다.

▲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관광객. 이 모습을 보면 아직 후원은 금원이다
ⓒ 김정봉

그러나 창덕궁 후원은 놀이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휴식의 공간이고 궁궐 밖의 민간 정원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겨 있는 한국적인 정원이다. 한국인의 자연관과 사상, 철학이 담겨 있다.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하지만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냄새가 나는 비밀스런 곳은 아니다. 그래서 후원이 비원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창덕궁 후원은 정원(庭園)인가? 정원은 일본인들이 명치 시대에 만들어 낸 것으로 도심 속의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 작업을 통하여 만든 것이다. 이런 일본식 정원과 대조적인 명칭으로 고려 시대 때부터 사용한 원림(園林)이 있다. 원림은 동산과 숲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칸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씀, 창작과비평사) 참고)

원림의 성격을 띠는 정원의 역사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춘천 청평사의 문수원 정원이 그것인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이다. 이자현이 주변의 자연 경관을 최대한 살려 계곡에 수로를 만들고 물길을 끌어들여 정원 안에 영지를 만드는 등 방대한 규모의 정원을 가꾸었는데 아직도 그 영지가 청평사 입구에 남아 있다.

현재 원림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곳은 장흥의 부춘정 원림, 담양의 독수정 원림·명옥헌 원림·소쇄원, 화순의 임대정 원림이 있다.

▲ 명옥헌 원림. 잘 다듬어진 정원과는 달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려 운치가 있다
ⓒ 김정봉

한국 사람은 자연을 거역하거나 자연을 훼손하면서 정원을 꾸미지 않는다. 동산이나 계곡, 하찮은 길이라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 생긴 그대로 이용하고 용의 그림에 눈을 그려 넣듯 한 모퉁이에 건축물을 세워 자연 풍광을 한층 빛나게 하고 자연과 건축을 하나가 되게 한다.

창덕궁 후원은 인위적으로 조경을 한 일본식 정원과는 거리가 멀고 한국 전통 정원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개념적으로 후원은 정원이 아닌 원림인 것이다. 창덕궁 후원을 원림이라 하면 거기에 충실하게 따른 흔적이 부용지 영역에 남아 있다. 낙선재 옆으로 지나 계속 북쪽으로 전진하면 야트막한 언덕이 나오고 언덕 밑으로 네모난 연못이, 그 주변에 부용정과 주합루 등 건축물이 적절하게 자리하고 있다.

▲ 부용지 영역. 한국 정원의 특징이 그대로 담겨 있다
ⓒ 김정봉

동산에는 잘 다듬어지고 사시사철 푸른 나무 대신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낙엽 활엽수를 심어 놓았는데 이는 물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듯 계절이 바뀌면서 잎이 피고 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자연에 순응하려는 자연 순응 가치관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 늘 푸른 나무 대신 활엽수를 심어 놓아 자연순응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 김정봉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연못가에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난 듯 예쁜 정자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 부용정이다. 두 다리는 연못에 담근 채 연못 건너 북쪽 언덕에 자리한 주합루와 어수문을 바라보고 있다.

▲ 부용정 북쪽으로 주합루와 어수문이 자리하고 있다
ⓒ 김정봉

초급 답사자는 정자를 보면 먼저 정자의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을 애써 찾으려고 하고 고급 답사자는 정자에 앉아 주위 풍광을 즐긴다고 했다. 하나 이 부용정에서만은 고급 답사자도 초급 답사자가 된다. 부용정 안에 몸을 담고 주위 풍광을 느끼는 즐거움도 크겠지만 멀리서 보는 즐거움이 더욱 크다.

▲ 부용정에 몸을 담고 즐기는 맛도 있지만 멀리서 보는 즐거움이 더욱 크다
ⓒ 김정봉

화려한 듯하면서도 크지 않아 애틋함이 느껴지고 이름이 말해 주는 대로 탁한 물에서 깨끗한 꽃을 피워 내는 연꽃을 보는 것 같아 어여쁘다.

▲ 부용정. 이름대로 연꽃을 보는 듯하다
ⓒ 김정봉

부용정 창호를 통해서 북쪽을 보면 주합루와 어수문이 눈에 들어온다. 주합루와 어수문을 보고 있으면 건축물이 자연 속에 들어서 자연의 풍광을 이렇게 빛나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합루는 부용정과는 달리 규모를 마음껏 뽐내고 어수문이라는 정문을 두어 멋을 부렸다.

▲ 주합루와 어수문
ⓒ 김정봉

주합루 1층에는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이 있고 그 위층은 열람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부용지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주합루 정문 이름은 어수문(魚水門)인데 왕은 물이고 신하는 물고기이니,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이런 공간은 후원이 놀이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휴식의 공간, 사색의 공간이었음을 말해 준다.

한국 정원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 부용지다. 네모난 곳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연못(방지원도형)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천원지방)'를 뜻한다. 방지원도형 연못은 음양오행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명옥헌 원림의 연못이나 경복궁 향원지 등 우리 나라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방지원도형 연못
ⓒ 김정봉

창덕궁 후원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은 후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궐 밖 여느 정원에서도 볼 수 있는 한국적인 것들이다. 자연을 지배하기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를 끊임없이 꾀하고 자연을 거역하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는 궁궐 세계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외부의 사상이 궁내에, 궁내의 사상이 외부에 전달된 결과이다. 후원이 일반인들에게는 물리적으로 단절이 되어있을지언정 후원이 담고 있는 한국적 사상과 철학은 외부와 끊임없이 교류된다. 이래서 창덕궁 후원은 비밀스러운 '비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연의 일부이며 담을 넘어서 자연으로 번져 나가도록 한 순리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한국의 정원은 그 자체로 비원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창덕궁 후원을 더 이상 비원이라 부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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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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