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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이번 의사파업과 명확하게 방향,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차수련 위원장은 단호했다.
ⓒ 남성희
여름부터 시작한 의사파업이 계절을 넘기고 있다.
의사와 약사, 정부, 그리고 시민단체.

의사파업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 의사와 약사가 아닌 의료인들. 간호사와 의료기사, 원무과 직원, 병원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병원에서 반수가 훨씬 넘는 이들에게 지금의 의사파업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보건의료노조 차수련(41)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 출신인 그녀는 올 5-6월 보건의료노조 파업 때문에 수배 중이다. 그녀는 몇 개월째 명동성당 입구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연락을 하고 명동성당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전화 연결된 차위원장은 의외의 말을 했다. 지금 명동성당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밖에 있을 거라고 했다.

인터뷰는 며칠 뒤에야 잡혔다. 9월 24일 일요일 저녁. 상계백병원 앞 커피숖에서 차위원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줄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된 시간에서 5분이 지났을까. 누군가 커피숍 안에 들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차위원장이었다.

이어지는 인터뷰 : 두 아이 엄마의 자진출두 "이번에 네번쨉니다"
관련기사 : 의사들은 국민에게 사과 안하나 - 유창선 기자

사실 조금 놀랐다.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다 마무리됐다고는 하지만 수배자를 인터뷰할 때 약속장소에 본인이 직접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자리를 옮기면서 차위원장은 아직 경찰에 알리지는 않았지만 이틀 뒤(26일) 자진출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첫 번째 질문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이번 의사파업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아니면 유보적입니까. 입장이 뭐죠?

"명백한 반대입니다."

차위원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의사가 아니라 누구라도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은 보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단체행동이라는 것은 목적과 방식이 정당해야 합니다. 이번 의사파업은 목적과 방식에서 정당하지 못한 면이 많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의약분업을 실시하게 된 것은 양심적인 보건의료 단체가 수십년간 노력한 결실입니다. 부수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많을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의약분업 자체를 무산시킬 수는 없습니다."

- 전공의들이 의약분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은 그렇죠. 그래서 지난 1차 파업과 이번 2차 파업이 다르다고 하는 건데. 하지만 결국 의약분업을 하는 과정에서 들고일어났던 문제입니다."


ⓒ 남성희
-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말입니까?

"그렇죠. 지금까지 정부를 상대로 의료개혁을 외치며 싸워왔던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보건의료노조 등 보건의료 단체들이 의사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잘못됐다고 하는 이유도 그런 겁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의사파업

-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은 뭐죠?

"의사들은 지난 1차 파업 때 전부다 손놓고 나갔습니다. 심지어 중환자실, 응급실까지도 교수들마저 손놓기로 결의했어요. 그때는 정말 나도 한 의료인으로서 너무 심하다는 분노감이 들었습니다. 2차 파업은 참의료진료단을 만들어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추석연휴에 바로 내 주변 사람이 다니는 회사에서 산재가 발생, 손이 잘렸습니다. 잘린 손을 들고 병원이 가니 서울의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답니다. 급한 마음에 나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봉합수술을 하는 병원에 연락하니까 자기들도 오는 사람들 다 돌려보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결국은 봉합수술을 하는 개인병원이 있어서 그리로 갔습니다. 이런 일을 접하면서 설사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투쟁을 하더라도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위원장은 87년 한양대병원에서 첫 파업을 했다. 그후 지금까지 13년 동안 수차례 병원에서 파업을 벌인 '병원파업의 전문가'다. 그런 그녀의 주장은 한마디로 '병원의 파업 방식은 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파업할 때도 우리의 방침은 예년과 같이 중환자실·응급실·분만실·수술실은 기본적으로 필요인력을 배치하고 일반병동도 최소한의 인력을 배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공식 지침이었어요.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생산이 중단되지만 병원이 파업을 하면 생명과 직결돼 있습니다. 특히 간호사는 대체인력이 있지만 의사는 대체인력이 없어요. 간호사가 백명 있어도 의사의 오더가 없으면 주사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약을 주면 되는지 뻔히 알아도 주면 안됩니다. 그러면 의사들은 그런 지위에 맞는 투쟁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 언론보도에 의하면 지난 9월 19일 보건의료노조에서 의사파업에 맞서는 파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는데.

"일부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의사들이 10월 7일 총파업을 하면 우리도 맞서서 파업을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의약분업 자체에 대한 본질을 훼손시키고 있어요. 벌써 임의분업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대통령 입에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고 하고.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의약분업 자체가 무산되고 의료개혁이 완전히 파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이 의약분업을 무산시키거나 훼손시키려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경고를 한 것입니다."


ⓒ 남성희
"의사들의 요구는 반 민중적이다"

이유야 어쨌든지 의사들은 그동안 정부와 약사들을 불신하고 미워했다. 그러다 이번에 의사파업을 겪으면서 의사들의 '주적' 명단에 시민단체와 언론이 추가됐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적극 지지하는 사회단체가 거의 없다. 주위에 '우군'이 없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를 인식한 개혁적인 젊은 전공의들은 한달 전쯤부터 노동단체나 농민단체를 접촉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 전공의들이 노동단체를 설득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접촉이 많았나요?

"많은지는 모르겠는데, 민주노총 지도부에 몇 개 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찾아갔었고… 전공의 대외협력팀들이 각 단체를 죽 도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보건의료노조에도 한번 찾아왔었어요. 그후에 전공의비대위에서 5개 추가요구안을 발표했을 때 그 진의가 뭔지 알고 싶어서 우리가 비대위에 공식적으로 면담을 요청해서 만났죠. 보건의료노조와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두 번 만났습니다."

- 만나서 무슨 말을 했습니까.

"명분과 정당성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전공의들이 나름대로 의료개혁을 주장하는 부분은 높이 사지만 지난 8월 30일 대정부 요구안을 보면 너무 반민중적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면 보건의료발전특위 문제를 봅시다. 의료문제와 관련된 사람은 의사도 있고 약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고 아주 많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수혜자인 국민이 제일 주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할 생각은 안하고 의사 수를 50% 이상으로 하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앞으로 보건의료발전특위에서 의료보험 수가 등 모든 보건의료정책이 결정될텐데, 반수가 넘으면 다 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의사들의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반민중적인 것이 어디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의료수혜자인 노동자·농민·시민들의 대표가 반수 이상 참여해야 합니다."

- 전공의 비대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보건의료 발전특위 문제는 다시 한번 토론을 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의사파업에 대한 민주노총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 남성희
"처음에 민주노총은 담당연맹인 우리처럼 잘 알지 못하니까 일부 헷갈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의사파업이 잘못됐다는 인식은 같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요구를 가지고 싸움을 하는 조직인데 의사들의 파업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우리가 계속 설명했어요. 단위노조 수련회 할 때 긴급 제안서를 만들어 전체 앞에서 설명하고 민주노총 지도부와 간담회도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파업에 대한 규탄과 대응을 명확히 하고, 정부에게도 일방적인 수가인상 등 의사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야합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 그렇다면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려는 일부 전공의들의 움직임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앞으로 전공의들의 의료개혁투쟁 과정에서는 같이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번 파업을 가지고는 명확하게 서로의 방향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는 아래 '이어지는 다음 기사'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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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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