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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오연호, 공희정 기자
정리: 이병한, 김미선 기자



화제의 인기코너 오마이뉴스 열린인터뷰에 14번째 손님으로 초대된 원희룡 한나라당 당선자(양천 갑).

원희룡 당선자는 오후 3시 30분 오마이뉴스 편집국에 도착했다.

3시 40분부터 5시까지 계속된 인터뷰에서 원희룡 당선자는 "개원과 동시에 정치개혁, 민생개혁과 관련한 법안 10여가지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원 당선자는 "그를 위해 한나라당 내 개혁그룹인 '미래연대' 소속 13명의 당선자가 긴밀하게 사전 조율을 하고 있다"고 했다.

- 당선을 축하한다. 고향이 제주인데, 당선 후 내려가 봤나.

"이번 주말을 이용해 다녀올 생각이다. 고향은 서귀포 중문이다. 한 2000가구 정도 규모다"

- 제주도 출마가 예상되었는데, 양천갑과는 무슨 인연으로 출마하게 됐나?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젊은 세대가 진출해야 한다는 의미의 연장이었다. 수도권에서부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개혁벨트를 구성하자는 고려속에서 그쪽에서 출마했다."

- 처음에 민주당으로 간다는 소리가 있었는데, 한나라당을 선택한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언론에 보도된 민주당행 이야기는 민주당 측에서 언론에 먼저 흘림으로서 기정사실화 하려는 뜻이었다. 민주당, 한나라당 양쪽 모두에 예전에 같이 활동했던 사람이 들어가 있었고 동시에 양쪽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있었다.

민주당측과 이야기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를 했는데, 그것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되지 못했다. 정균환 사무총장과 몇차례 만나 개혁방안에 대해 제안했지만 성의있는 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면 왜 한나라당이냐. 한나라당이 과거 군사독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일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화 운동세력이 일각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공천과정에서 개혁의지도 보여줬다. 젊은이로서 한나라당을 개혁하기 위해서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 입당하기 전 한나라당의 어떤 사람과 상의했나?

"김영선, 김부겸 의원이었다."

- 이회창 총재와도 만나거나 통화가 있지 않았나?

"몇차례 정치전반에 대한 문제를 놓고 단독으로 장시간 토론을 했다.두 번 정도다. 1월 13일 입당하기 3,4일 전 쯤이 두 번째고, 그전에는 한 달쯤 전이다. 시내 모처에서 만났었다."

- 그렇다면 한나라당행 최종 결심은 이총재와의 대화속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다. 이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구정치를 극복하는데 자신이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국가비전에 있어서도 투명하고 공정한 룰을 사회적으로 정착시키겠다면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젊은이로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점에 상당부분 공감을 했다."

- 민주당쪽과의 접촉은 어땠나?

"어느 한 정당을 '좋고 나쁘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볼때 여당은 '언로의 경색현상'이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하는 느낌을 가진 게 사실이다. 나의 제안을 불충한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 결과적으로 원희룡이라는 정치상품에 대해 민주당보다는 한나라당쪽에서 더 공을 들인 것 같은데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당과 야당의 입장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여당으로서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왜 안하느냐'고 했을 때 그것에 대한 답변이 궁색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야당입장에서는 '그렇지. 그럼 같이 해나가자'라고 할 수 있었다."

- 이회창 총재도 구정치인 못지않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직접 독대하면서 이 총재를 어떻게 보았나?

"좋게 말하면 때가 덜 묻었고, 나쁘게 말하면 정치기술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총재는 개혁의 내용은 부족할 지 모르지만 소신과 의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서민이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개혁의 내용과 칼라가 좀 미흡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회민주주의의 확립과 공정한 룰의 정립 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 양천 갑 민주당 후보 박범진씨를 눌렀는데, 표차이가 꽤 많았었다.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정치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변화의 열망에 부합하는 일관된 이미지 차별화 전략으로 나간 것이 주효했다. 처음에 15% 인지도로 시작했다. 저쪽은 90%가 넘고. 투표직전에는 인지도가 거의 비슷했고 인지도 상승과 지지도 상승이 같이 이루어졌다. 투표 10일 쯤 앞두고 역전했다."

- 보통 한나라당이 아파트쪽, 민주당이 서민주택쪽에서 많은 지지율을 보이는데, 이번의 경우는 어땠는가.

"양천갑은 10개 동이 있는데 5개 동이 아파트, 5개 동이 기존 주택이다. 중산층은 2대 1정도의 더불스코어로 이겼고, 기존 주택은 전부 이겼다. 5%내지 10%정도. 이제까지 기존 주택지역은 한나라당이 이긴 적이 없었는데 이번이 처음이다. 한나라당으로서 일종의 선거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학입시(서울대 법대), 사법고시에서 항상 수석이었는데, 실패한 경험이 있는가?
"많이 있다. 민주화 운동 때의 수많은 좌절의 경험. 공부에서 크게 좌절해본 적은 없지만, 민주화운동이나 돈벌려고 했을 때, 연애도 마음대로 안됐고...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경험은 많았다."

-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이다. 수석을 자주 했는데, 국민의 대다수는 학교다닐 때 공부를 못했던 사람들이다. 밑바닥 사람들의 비애를 알고 있나?

"대학 입학후 10여년간 민주화운동을 해왔다. 일당 2900짜리 공장 노동자 생활도 했다. 촌에서 커서 가난 속에서 자랐다. 그런 면에서 곱게 자란 백면서생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원희룡 열린인터뷰2 "정치, 문화 개혁법안 개원동시에 제출하겠다"


한나라당 서울양천갑 원희룡 당선자 이력

1964. 2. 14 제주 서귀포시 출생

1982. 2. 제주제일고등학교 졸업

1982. 3. 서울대학교 전체수석 입학

1989. 8.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92. 11. 34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1995. 2. 사법연수원 24기 수료

1995. 3. 1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형사 4부 (경제사범 담당)
- 공판부, 형사 5부 (교통, 안전사범 담당)

1997. 3. 1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검사
- 공무원, 환경, 경제사범 담당

1998. 3. 31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 강력부 마약사범 담당

1998. 8. 26 변호사 개업

1999. 4. 법무법인 춘추 변호사
- 소프트웨어 재산권보호위원회(SPC) 고문변호사
- KBS 방송자문변호사
- 한나라당 '미래를 위한 젊은 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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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