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1 13:10최종 업데이트 23.12.1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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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5개월여의 끈질긴 추적. 검찰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벌여온 하승수 변호사의 '추적기'를 가감없이 전합니다.[편집자말]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다. 누적 관객수가 곧 7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필자도 얼마 전 영화를 봤다.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 중 하나는 전두광(황정민 분)이 육군참모총장(이성민 분)에게 현금다발이 든 가방을 주려고 하는 장면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금고에 들어있던 돈인데, 마음껏 쓰라'면서 전두광이 현금가방을 건네려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검찰 특수활동비 금고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돈의 성격은 다르지만, 현금으로 뭉칫돈을 전달하려는 장면이어서 검찰 특수활동비가 연상되었을 수도 있고 '금고'라는 단어에서 연상이 되었을 수도 있다.

전두환(영화 속 전두광) 전 대통령과 '금고'라는 단어는 최근에 다시 연결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씨가 전두환의 연희동 자택에도 금고가 있었고, 그 속에 현금다발이 쌓여 있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검찰 특수활동비 금고
 

ⓒ 최주혜

 
필자가 검찰 특수활동비가 '금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6월 23일 검찰로부터 1만 6700쪽의 자료를 수령한 이후였다. 그날 시민단체 활동가들, <뉴스타파> 기자들과 함께 특수활동비 자료를 수령한 이후에 자료를 보니 막막한 심정이었다. 온통 가려져 있었고 돈을 쓴 날짜와 금액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패턴을 읽어내기 위해 애를 쓰다가, 문득 필자의 머리 속에 2017년 4월 있었던 '돈봉투 만찬'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이 부하 검사들을 데리고 회식을 하다가 서로 상대방의 부하검사들에게 특수활동비로 돈봉투를 돌린 사건이었다(그날 돈 봉투를 받은 검사 중 1명이 이원석 현 검찰총장이다).

이 사건 때문에 이영렬 전 지검장이 면직되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파격승진을 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판결문을 보면 뭔가 단서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이영렬 전 지검장에 대한 형사판결문을 찾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판결문 속에서 '금고'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영렬 전 지검장 형사 1심 판결문 중에서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검장 비서실에 '특수활동비 금고'가 있었고, 돈봉투 만찬 사건이 있었던 2017년 4월 21일 이영렬 전 지검장은 비서실 소속 검찰주사에게 100만 원짜리 봉투 2개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검찰주사는 금고에서 현금 200만 원을 꺼내 돈봉투 2개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지검장 시절 비서실 금고, 어떻게 됐을까

판결문을 읽으면서, '2017년 4월 서울중앙지검장 비서실에 있던 금고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금고를 버리지 않았다면,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한 윤석열 지검장도 금고에 현금을 넣어두고 썼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두 가지 점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첫째, 2017년 9월 검찰총장은 '돈봉투 만찬' 사건의 후속조치로 내부 공문을 내려보내면서 현금 사용을 자제하도록 했다. 그러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집행된 특수활동비 38억 6300만 원은 전액 현금으로 사용됐다. 이 정도 규모의 현금을 쓰려면 어딘가에 보관을 해야 하는데, 책상서랍에 넣어두기에는 너무 많은 금액이다.

둘째, 집행패턴을 봐도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4번의 명절을 앞두고 2억 5천만 원을 떡값으로 돌렸다. 예를 들어 2018년 설 명절을 앞두고 2월 12일 48명에게 7100만 원을 돌렸다. 이 말은 그 시점에 최소한 7100만 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정도 규모의 현금을 보관하려면 금고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검찰총장 시절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10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법사위 국정감사를 앞두고 회의장 앞에서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를 총괄지휘하는 한동훈 검찰 반부패강력부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렇다면 검찰총장 시절에는 어땠을까? 이미 밝혀진 것처럼, 대검찰청의 경우 특수활동비를 관리해야 하는 운영지원과에서 '집행내용 확인서 생략'이라는 제도를 악용해서 거액의 특수활동비를 현금화한 후에 검찰총장 비서실로 전달해서 사용해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현금화해서 비서실로 전달된 액수가 2018년 51억 원, 2019년 4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규모의 현금을 관리하려면 당연히 금고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특수활동비를 비서실 금고에 넣어 관리하는 것은 적법하고 정당한 일일까?

국고금관리법 시행규칙 제114조에서는 "현금 등의 직접보관"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내용을 보면, "출납공무원이 현금등을 보관하는 경우에는 견고한 용기에 보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주체가 "출납공무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청 내에서 특수활동비를 담당하는 출납공무원은 회계나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 소속(대검찰청은 운영지원과)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 비서실에서 거액의 현금을 금고에 넣어 놓고 관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세금을 관리하는 정상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초법·편법·탈법적으로 특수활동비를 관리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두환의 금고와 윤석열의 금고는 성격은 다르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19년 12월 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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