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0 10:53최종 업데이트 23.09.2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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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국가보훈부장관으로 승진시키면서 지난 6월 5일 발효된 개정 정부조직법은 국가보훈부장관이란 표현을 꽤 많이 언급한다. 여타 법률들에 표기된 '국가보훈처'나 '국가보훈처장'을 '국가보훈부'나 '국가보훈부장관'으로 변경한다는 문구가 정부조직법 부칙 제7조에만도 40회 이상 나온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법률로 인해 보훈처는 보훈부로 승격되고 박민식 처장은 박민식 초대 장관이 됐다. 적어도 박민식 장관 입장에서는 이번 개정법률이 '박민식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민식 장관이 이번 정부조직법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가 있다. "국가보훈부장관은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제대 군인의 보상·보호, 보훈 선양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라는 제35조가 그것이다. 이 규정에 따라 박 장관이 해야 할 일은 보훈처장 시절보다 훨씬 강한 권한을 갖고 국가유공자 및 제대 군인에 대한 사무를 관장하고 이들에 관한 보훈을 널리 선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너무 엉뚱하다. 정부조직법은 그에게 국가유공자 보훈을 선양하라고 명령했지만, 그는 반민주행위자와 반민족행위자를 널리 홍보하고 있다. 반민주행위자 이승만, 반민족행위자 백선엽의 미화 및 선전이 그의 핵심 업무처럼 되어 있는 것만 같다.

도를 넘은 이승만 추앙
 

지난 18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박민식 보훈부장관 인터뷰 <이승만이야말로 86세대가 추앙하는 ‘혁명 투사’… 보훈의 가치, 미래에 있어> ⓒ 조선일보 PDF

 
이승만에 대한 박민식 장관의 선전·선양은 이미 도를 넘었다. 18일 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이승만을 86세대가 추앙하는 혁명 투사로까지 치켜세웠다. 1965년에 출생하고 1980년대에 대학생이 된 그는 자신도 86세대라고 자처하면서 "이승만이야말로 86세대가 추앙하는 혁명 투사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그런 뒤 "왕정을 반대해 공화정을 세우려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라고 호평했다. 

이승만은 독립협회 활동을 하다가 23세 때인 1899년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돼 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뒤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된 때인 1904년 8월 하야시 곤스케 일본공사 등의 도움을 받았다는 관측 속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박민식 장관은 그런 내력을 기초로 이승만을 왕정반대론자나 공화주의자로 평가했다. 박 장관의 말처럼 이승만에게도 진보적인 시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물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앞의 행적을 부정하는 나중 행적이 있을 때는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하고, 나중 것이 앞의 것보다 압도적으로 강할 때는 나중 것을 기초로 생애를 평가하는 게 상식이다. 권한이나 영향력이 별로 없을 때보다는 그것이 강했을 때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다. 박민식 장관은 '앞의 것'과 '힘이 없을 때'를 기초로 이승만을 평가했다. 이런 데서는 부실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이 1960년 4·19혁명을 일으켜 이승만을 끌어내린 것은 그가 당시 헌법 제1조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1954년에 개정되고 '제2차 개정 헌법'으로 흔히 불리는 당시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민주'에도 걸리고 '공화국'에도 걸렸다.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혹은 양민 학살은 다른 말로 하면 국민 학살이었다. 국민을 학살한 사람이 민주적 가치를 실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존중한 게 아니라 파괴한 반민주행위자였다. 

이승만은 장기 독재를 했을 뿐 아니라 친일파와 소수 재벌 및 특권층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또 자기 자신에 한해 중임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불법적 개헌을 통해 종신제 군주의 길을 터놓았다. 그는 '공화'와는 거리가 먼 사실상의 군주였다. 

박민식 장관의 평가처럼 이승만은 입으로는 왕정을 반대했지만 그의 몸은 왕정으로 한참 넘어가 있었다.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아 국민들의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이승만이 그런 인물이었다는 평가를 전문(서문) 첫 줄에서 못을 박았다. 이승만을 몰아낸 일을 '의거'나 '불의에 항거'로 표현했다. 박정희 집권기의 헌법 전문에서는 이승만을 몰아낸 일이 "4·19의거"로 표현됐고,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으로 표현됐다. 

현행 헌법의 "불의" 표현은 이승만 집권기의 정치체제를 뜻하기도 하지만 대통령 이승만 개인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헌법 전문이 이렇게 못을 박은 것은 이승만에 대한 딴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막는 측면이 있다. 국가기관이나 당국자들이 이승만처럼 행동하거나 이승만을 미화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박민식 장관은 이승만을 혁명 투사이자 공화주의자로 치켜세웠다. 헌법에서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을 정부 당국자가 당당하게 입에 담았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나뿐 아니라 다른 장관들도 나와 똑같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혁명 투사요 공화주의자라고 말한 직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료 장관들에게도 물어봤다. 놀랍게도 결론이 똑같더라.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 운동권 출신 원희룡 장관조차. 그런데도 방치해 온 것이다."

이승만을 '불의'로 규정하는 대한민국 헌법하에서 녹을 받는 장관들이다. 그런 장관들이 "놀랍게도" 한결같이 이승만을 존경하고 추앙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이들이 대한민국을 운영할 의향이 별로 없음을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하는 또 다른 대한민국을 작동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던 박민식 장관 같은 사람이 '이승만은 86세대가 추앙하는 혁명 투사'라고 선전하면, 이를 실제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 박민식'은 1980년대에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지만 당시 청년들의 주류적 사고는 달랐다는 점을 언급해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1986년 5월 28일의 이화여자대학교 백주년 기념식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지난 100년간의 핵심 구호들을 소개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다음날 발행된 <동아일보> 10면 중간 기사는 "2백여 명의 학생들이 일본 천황 또는 일제시대 순경에서부터 최근의 전투경찰, 운동권 학생 등으로 분장,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고유의 복장을 한 채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했다"고 한 뒤 "이승만은 물러가라, 한일협정 결사반대 등은 4·19, 5·16팀의 단골 구호"였다고 소개했다. 

4·19 및 5·16세대를 대표하는 퍼포먼스팀이 "이승만은 물러가라" 구호를 한 번도 아니라 마치 단골처럼 여러 번 외쳤다. 1980년대 대학생들이 이승만을 숭상했다면 이런 행사가 유명 대학 구내에서 벌어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에 대한 당시 학생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이 같은 사례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강조한 박 장관... 4.19까지 건드리나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7월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여 추모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민식 장관의 이번 인터뷰는 이승만 띄우기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의지가 이만저만이 아님을 보여줬다.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사실마저 부정하고 싶어 하는 윤석열 정권의 정서가 인터뷰에서 나타났다. 

박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 서거일, 탄신일에 국무회의도 빠지면서 참석했다"고 한 뒤 "건국 대통령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기념관이 하나 없나 자괴감이 들더라"라며 이승만기념관 건립의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이 말에 대해 <조선일보> 기자가 "정작 기념관 건립은 민간이 주도한다"고 지적하자, 그는 민간이 주도하는 형식을 띠도록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 기념관은 건립 비용의 30%만 행안부가 지원할 수 있다. 안중근·김구 기념관처럼 보훈부가 주도하면 100% 비용을 댈 수 있지만, 그러면 기념관 명칭에서 '대통령'자를 빼야 하는 딜레마가 있다. 다행히 국민모금 첫날부터 2000명 넘는 분이 3억 원에 달하는 성금을 보내주셨다고 한다. 국민들이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절감했다. 보훈부도 곧 '비밀병기'를 공개할 것이다."

'이승만 기념관'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강조하는 박민식 장관의 발언에 윤석열 정권의 의중이 담겨 있다. 

'이승만 대통령'을 강조하는 것은, 그를 대통령직에서 쫓아낸 행위가 잘못이었음을 드러내는 것과 연결된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이승만에 대한 선양을 넘어 또 다른 가치관의 선양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박민식 장관이 곧 공개하겠다고 말한 보훈부 비밀병기는 이승만 선양뿐 아니라 4·19 폄하와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승만을 대통령직에서 쫓아낸 것이 잘못이었다고 하는 건, 4·19혁명에 대한 도전 의식을 표출하는 일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가 아닌 소수지배의 세상을 열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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