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1 10:28최종 업데이트 23.08.01 10:28
  • 본문듣기

1923년 일어난 관동대지진. ⓒ 연합뉴스

 
100년 전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때 재일한국인들은 이중의 재난을 당했다.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재난은 일본인들과 똑같이 겪었지만, 사람들로부터 가해지는 학살은 재일동포들만 겪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게는 관동대지진으로 기억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관동대지진인 동시에 관동대학살(간토대학살)로 더 아프게 기억된다.

'조선인들이 혼란을 이용해 우물에 독약을 타고 폭행, 약탈, 방화, 여성 능욕, 폭탄 투척, 집단 습격 등을 자행한다'는 유언비어가 지진 직후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재일교포들이 분풀이 대상이 됐다. 지진 발생 당일인 9월 1일 밤부터 일본인들에 의한 한국인 학살이 자행됐다. 6천 명 이상의 한국인이 지진이 아닌 인간 만행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지진 발생 직후의 대혼란 속에서 한국인들을 겨냥한 유언비어가 그처럼 빨리 확산돼 당일 밤부터 학살이 벌어진 데는 일본 내무성과 경찰의 역할이 컸다. 내무성이 경찰 조직을 통해 '조선인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이 유언비어 확산과 대학살을 부추겼다.

2021년 8월 5일에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이 주최한 '만보산·조선화교 배척 사건 90주년 웨비나'라는 국제학술대회에 일본인 학자 니시자키 마사오(西崎雅夫)가 화상으로 참가했다. 그는 "유언비어를 뒷받침해준 것이 정부"였다고 말한 뒤 대학살의 끔찍한 실상을 보고했다.

"일본도로 베고 죽창으로 찌르고 쇠막대로 찔러서 죽였습니다."
"여자들 중에는 배가 부른 사람도 있었는데, 찔러 죽였습니다."
"10명 정도씩 조선인을 묶어서 세워놓고 군대가 기관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불타는 석탄 속에 조선인을 던져 넣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재난 뒤에 흔히 발생하는 민심이반과 사회질서 붕괴를 염려했다. 그래서 대중의 원망과 분노가 한국인들을 향하도록 유도했다. 군경과 더불어 민간 자경단이 한국인 학살에 나선 배경에는 그 같은 정치적 기획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 같은 사안에서 한국인을 동원한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그런 면을 보면, 일본 정부의 뻔뻔함이 이 사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관동대학살 인정, 하지만 추도는 거부? 
 

7월 31일자 인터넷판 NHK 기사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고이케 지사에게 추도문 송부를 요구> 캡처 ⓒ NHK 인터넷판

 
대학살 100주년을 한 달여 앞둔 7월 31일, 도쿄도청에서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도망치지 말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국인 희생자들을 위해 추도식을 거행해 온 일본 시민단체에서 나온 소리다.

지난 7월 31일 자 인터넷판 NHK 기사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고이케 지사에게 추도문 송부를 요구(関東大震災朝鮮人犠牲者追悼式 小池知事に追悼文送付を求める)'에 따르면, 추도식 실행위원장인 미야가와 야스히코(宮川泰彦) 변호사는 요청서를 도청(都廳)에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고이케 지사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달아나려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정확히 보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번 100주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관동대학살 50주년인 1973년, 일본인들은 도쿄도 스미다구 요코야미초공원에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를 세웠다. 그해 8월 6일 자 <동아일보> 7면 우하단 기사는 "동경 도내 일본인 단체 유지들은 당시 억울하게 폭동 주동 혐의를 받은 약 6천 명의 한국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비를 오는 9월 29일 제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추모비는 동경도민들로부터 약 4천만 원의 모금으로 동경 도내 스미다구의 진재(震災) 위령당 옆에" 세워진다고 덧붙였다. 자신들의 땅에서 한국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이 일본인들에게도 커다란 상처 되고 정신적 부담이 됐음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이번에 일본 시민단체가 추도문 송부를 촉구한 것은 도쿄도지사가 추도일에 맞춰 추도문을 보내주던 관행이 2017년에 끊겼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31일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고이케 유리코 지사는 그해 9월에는 추도문을 보냈지만 이듬해부터는 보내지 않고 있다.

그가 2017년에 관행을 깬 것은 한국인 추모를 혐오하는 극우세력의 훼방 때문이기도 하고, 아베 신조 내각이 채택한 공식 입장 때문이기도 할 수 있다. 그해 5월 1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아베 내각은 한국인 학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채택했다.

이 입장 표명은 학살 사실을 인정하는 보고서가 일본 정부에 의해 삭제됐다는 아리타 요시후(有田芳生) 민주당 참의원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아베 내각은 사실관계 확인에 필요한 기록이 정부 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입장을 채택했다.

이처럼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이 파렴치하고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고이케 지사는 추도문을 보내던 관행을 없앴다. 이때 그가 내세운 명분은 이 문제와 관련된 일본 정부와 극우의 난처한 속내를 잘 보여준다.

지난 7월 31 일자 <아사히신문> '관동대지진에서의 조선인 학살, 추도식 주최자가 고이케 도지사에게 추도문 요청(関東大震災での朝鮮人虐殺 追悼式典主催者が小池都知事に追悼文要請)'에도 재차 보도됐듯이, 2017년부터 그는 "희생된 모든 분들께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으며, 개별 행사에 대한 송부는 삼가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지진 희생자 전체를 위한 추도문은 보낼 수 있지만 개별 피해자들을 위한 추도문은 보낼 수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매년 9월 1일마다 한국인들을 외면하고 있다.

2017년 9월 1일에 추도식을 훼방한 수십 명의 극우단체 회원들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주최 측을 위협했다. 한국인 대학살 자체가 거짓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6천이라는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 말이나 내뱉고 보는 극우세력의 특성을 감안하면 상당히 신중한 위협이었다.

관동대학살을 숨길 길이 없음을 인식하는 것은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다. 증거가 없다고 하지 않고, 정부 내에 관련 기록이 없다고 둘러대고 있다. 고이케 지사의 입장 표명도 이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일 관계 발전 위해선, 관동대학살 문제부터 이야기해야
 

2016년 1월, 일본 도쿄 중심가인 긴자(銀座) 거리에서 혐한 시위대 수백명이 '위안부 합의 규탄 국민 대행진'이라는 명목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동대학살을 가슴 아파하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그로 인한 긴장감이 일본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동시에 우려하고 있다. 이런 일본인들도 많지만, 일본 사회의 지배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나 고이케 지사, 극우세력이 보여주는 태도다.

이처럼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이 문제 해결을 훼방하고 있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문제 해결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 사안이 '과거'뿐 아니라 '현재' 및 '미래'와도 닿아 있기 때문이다. 백 년 전의 진상을 규명하고 유족들이 사과와 배상을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일본에 거주하거나 앞으로 일본을 오고갈 한국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이 문제의 해결은 매우 긴요하다.

지난 6월 13일 자 <요미우리신문> 기사 '관동대지진 100년, 유언비어·폭력 한번에 확대(関東大震災 100年 遺言暴力を一気に拡大)'에 보도됐듯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1923년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물자를 몽땅 빼돌려 피난소가 폐쇄됐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인터넷에 퍼져 외국인 혐오 정서가 급격히 확산됐다. 이 신문은 "100년 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에 <일본 근대학 연구> 제60집에 실린 노윤선의 '일본 지진을 통해 본 혐한과 혐오 발언-관동대지진과 동일본대지진을 중심으로'는 그런 유언비어가 외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한국인들을 위협하는 단계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논문은 "재일한국인을 배제하는 단계"로 확산됐다면서 "동일본대지진 이후 혐한 시위 건수가 늘어난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2009년에 30건에 불과하던 혐한 시위 건수는 2010년에 31건, 2011년에는 82건으로 늘어나더니, 2012년에는 301건을 기록하였다. 3년 사이에 10배가 급증한 것이다."

대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일본 정부의 조치를 촉구하는 일이 현재와 미래의 한국인들을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점은 동일본대지진 때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진정으로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길은 양국 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이번 8월에는 한일 두 정부의 접촉이 더욱 활발해진다. 18일에는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런 기회를 빌려 양국 정상 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양국 국민들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관동대학살 문제를 명확히 처리하고 불행의 싹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 더 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