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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어느 마트 앞에 걸린 한가위 인사 펼침막.
 시내 어느 마트 앞에 걸린 한가위 인사 펼침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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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같은 비문(非文,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늠름하게 쓰이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되세요'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글로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가겨찻집' 문을 연 게 2007년이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를 주절대면서 8년쯤을 보냈다.

아무리 그게 '대세'라 해도 '아닌 건 아니다'

아무도 청하지 않은 일을 8년간 이어간 것은 자신이 국어 교사라는 사실을 늘 확인하면서 살아온, 넘치는 자의식 때문이었다. 국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사람들의 언어 습관에 시비를 걸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그렇게 오지랖을 떤 것도 앞의 이유 탓이다.

8년간의 오지랖이 막을 내린 것은 지난 2015년이다. "'한가위 되세요', 진보 진영의 동참"이라는 글을 끝으로 메아리 없는 푸념을 그만뒀다. 기업체와 지방자치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말 쓰기에 유난스러웠던 시민사회단체에 이어 '교열부'라는 거름망을 갖춘 일간지마저 '한가위 되세요'를 태연하게 쓰는 걸 지켜보면서 푸념을 끝낼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 쓰인 말이 아무리 대세가 된다고 해도 아닌 게 '기'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무심히 '되세요'를 입에 달고 사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그게 턱도 없는 문장이라는 게 더욱 굳어지니, '사람들이 너나없이 쓰니까...' 하고 적당히 현실을 핑계로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거리 곳곳에 '어떠어떠한 한가위 되세요'가 박힌 펼침막이 슬슬 걸릴 때가 되었다. 아침에 시내 나갔다가 마트 앞에 걸린 펼침막을 보니 잊고 있었던 좀이 쑤셔온다. 예전에 쓴 글을 읽어보다가 다시 글을 시작하지만, 정수리가 뜨끈뜨끈하다. 누가 공식 감시자 구실을 맡겨준 것도 아닌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다시 하는 기분은 정말 '아니다'. 
 
 우리 동네 길가에 걸린 펼침막.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내용도 '편안하고 안전한 추석 되세요'다
 우리 동네 길가에 걸린 펼침막.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내용도 "편안하고 안전한 추석 되세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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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좋은 하루'나 '즐거운 주말', '행복한 쇼핑'이 되라는 인사가 일상이 되다 보니 어쩌다 콜센터 상담원의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끝인사만 들어도 기분이 새롭고 신선하다. 아, 개중에는 이런 인사를 하는 데가 있구나 싶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입에 붙은 '~ 되세요'가 왜 잘못된 어법인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뜻이 통해서 서로가 알아들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되묻는 이들이 많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가 말과 글을 굳이 배울 이유가 없어진다. 어법 없이 낱말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뜻은 그럭저럭 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법에 어긋난 "한가위 되세요"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의 서술어 '되다'는 앞에 보어(補語)의 도움 없이 쓰일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그 앞에 '기워주는 말'인 보어가 와야 한다. "그는 중학생이 되었다"에서 '되다' 앞에 쓰인 '중학생이'가 보어다. 이때, 보어는 주어와 동격이므로 '그(주어)=중학생(보어)'이 된다.

"한가위 되세요"를 분석해 보자. 생략된 것으로 보이는데, 주어는 뭘까? 주어가 흔히 생략되는 우리말에서 주어는 대체로 청자인 '당신'이다. 그러면 이 문장은 "당신은 한가위 되세요"가 되는데, '당신'은 한가위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주말'도 '여행'도, '시간'도 '쇼핑'도 될 수 없다. 

그런데 '한가위 되라'는 덕담을 건네면서 아무도 상대를 한가위로 만들 의도는 없다. 화자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나는) 다가오는 명절이 (당신에게) 넉넉한 한가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다가오는 명절이 (당신에게) 넉넉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어떤 조화를 부려야 "한가위 되세요"가 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하여 주어를 보어인 한가위와 같은 뜻인 '명절'이라고 본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되세요'는 명령형 어미다. 무정 명사인 '명절'을 의인화하지 않는 이상, 명절에다 명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의 분석. 주어를 청자로 봐도, 보어와 같은 의미로 보아도 어법에 어긋난 문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의 분석. 주어를 청자로 봐도, 보어와 같은 의미로 보아도 어법에 어긋난 문장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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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한가위 되세요"를 쓸 것인가. 상대방에게 하는 말로 '되세요'가 쓰일 수 있는 보어는 사람과 호응하는 낱말이어야 한다. 한때 유행한 "부자 되세요"나,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같은 문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 당신은 '부자'도 '훌륭한 사람'도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루, 주말' 같은 '시간' 관련어나 '쇼핑, 여행, 식사' 같은 '행위'를 나타내는 낱말 뒤에선 쓰일 수 없다. 그것은 인간과 호응하는 의미의 낱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과 호응하는 낱말인 '부자, 시인, 의사, 군인, 회사원, 교사' 등은 얼마든지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으레 좋은 뜻의 덕담으로 받아들이고 말아서지만, 만약 '한가위 되세요'라는 말이 잘못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이라면, 그건 덕담이 아니다. 화자의 본의와 무관하게 그의 인사는 상대방에게 '한가위'가 되라고 윽박지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한가위 인사는 "넉넉하게 쇠세요(보내세요)"로

그럼 어떻게 쓸까? 어법에 맞게 쓰기는 매우 간단하다. 내 뜻이 드러나게 하려면 '되세요' 대신에 '보내세요', '쇠세요', '지내세요' 등의 서술어를 쓰면 된다.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 → 한가위 넉넉하게 쇠세요.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 한가위 행복하게 보내세요.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한가위 즐겁게 지내세요.

'한가위'를 꾸미는 '넉넉한'·'행복한'·'즐거운' 등의 관형어는 '되세요' 앞으로 옮겨 서술어를 꾸미는 부사어로 자리바꿈을 했다. 그래서 훨씬 우리말 어법에 가까운 문장이 되었다. 문장에서 체언을 꾸미는 관형어는 서술어 앞으로 자리를 옮겨 부사어로 쓰이는 게 올바른 어법에 가까운 것이다.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와 같이 체언(명사·대명사·수사)을 꾸미는 관형어가 부쩍 쓰이기 시작한 것은 외국어의 영향이다. "참석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처럼 '많이'는 '해 주시기'를 꾸며야 외국어 번역처럼 어색한 문장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잠깐 볼일로 다시 시내를 다녀왔는데, 코로나19의 영향일까, 한가위 인사 펼침막이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앞서 얘기한 마트의 현수막 말고 정치인의 펼침막이 두어 개, 그리고 축협 명의와 아파트 주변에 걸린 펼침막이 다다. 뜻밖에 '한가위 보내세요'로 제대로 쓴 펼침막을 두 개나 만난 게 소득이다. 하나는 지역 축협에서 내건 거고, 나머지는 인근 아파트에 걸린 아파트 위탁 관리업체의 펼침막이다. 
 
 제대로 쓴 한가위 인사말. 지역 축협에서 내건 이 펼침막에는 '즐거운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라 쓰였다.
 제대로 쓴 한가위 인사말. 지역 축협에서 내건 이 펼침막에는 "즐거운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라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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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아파트 단지 안에 글린 위탁관리업체의 한가위 인사 펼침막. '보내십시오'를 '-요'로 쓴 게 흠이지만, 정중한 명절 인사로 손색이 없다.
 어느 아파트 단지 안에 글린 위탁관리업체의 한가위 인사 펼침막. "보내십시오"를 "-요"로 쓴 게 흠이지만, 정중한 명절 인사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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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십시요." 

축협의 인사말은 '명절'을 꾸미는 말로 '즐거운'을, 서술어 '보내세요' 앞에는 부사어 '행복하게'를 써서 제대로 된 우리말 어법을 따랐다. 업체의 펼침막은 '보내십시오.'를 '-요'로 쓴 게 흠일 뿐, 정중한 명절 인사로는 손색이 없다. 

'한가위 되세요'를 바로잡는 데 가장 중요한 단위는 언론이다. 그런데 몇몇 신문은 이미 강을 건너 버렸고, 그나마 가장 영향력이 큰 방송은 아슬아슬하게 바른 표현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 역시 '대중이 쓰는 말'이라면서 '한가위 되세요'의 물결을 따라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바른 말글살이를 이끌어야 할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한글 관련 단체들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언중들 개인의 사소한 실천에 맡겨진 셈이라면,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글날 앞에 맞을 한가위를 씁쓸하게 기다리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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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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