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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가 시작되면서 집밥이 늘고 있습니다. 집밥 노동을 포함, 요즘 벌어지는 주방의 변화를 '나의 주방이야기'로 다뤄봅니다.[편집자말]
아내와 결혼을 하고 난 뒤로 회사에서 퇴근을 하면 자연스레 이곳으로 출근한다. 칼질이 난무해도 괜찮고, 수돗물이 흘러도 상관없는 곳으로. 뜨거운 불을 피워도 불장난이 아닌 곳으로. 집안에서 유일하게 칼과 물과 불이 허락되는 곳으로. 오늘도 나는 저녁을 요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출근한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나는 주로 모니터 앞에서 어떤 카피를 써야 하나, 어떤 아이디어가 좋을까, 심각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주방으로 출근하는 나는 조금 다르다. 키보드 대신 도마를 움켜쥐고, 볼펜이 아닌 칼을 손에 든다. 멋진 광고를 만들겠다고 머리를 굴리는 건 머리 아픈 일이지만, 오늘 어떤 요리를 할지 궁리하는 건 지친 머리와 몸을 든든히 채워주는 일이다. 그래서 저녁마다 주방에서 하는 야근은 언제나 즐겁다.

이것은 그냥 볶음밥 레시피가 아니다
 
 오늘도 나는 주방으로 출근을 한다
 오늘도 나는 주방으로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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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메뉴는 냉장고 사정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계란찜, 닭볶음탕, 비빔국수 등 만들기 쉽고 먹을 때 기분 좋은 음식들을 주로 만든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메뉴는 다름 아닌 볶음밥이다. 최근 아내와 함께 2주 동안 재택근무를 했는데 거의 하루에 한 번 꼴로 볶음밥을 해 먹었다. 아내는 이런 나 때문에 볶음밥을 반강제로 먹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나에게 볶음밥은 언제나 옳으니까!

볶음밥의 가장 훌륭한 점은 무엇이든 넣고 볶으면 볶음밥이 된다는 점이다. 김치를 넣고 볶으면 김치볶음밥이 되고 계란을 넣고 볶으면 계란볶음밥이 된다. 만약 김치나 계란 프라이만을 반찬으로 밥 한 그릇을 먹는다면 어쩐지 한 끼를 때웠다는 느낌이 들지만, 재료를 넣고 밥과 함께 볶는 순간 이것은 볶음밥이 된다. 그럴듯한 요리 하나를 만들어 먹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재료를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볶음밥의 이름이 한없이 길어진다는 것도 좋다. 삼겹살과 김치를 넣고 마늘을 편으로 썰어 넣고 휘리릭 볶아내면 '마늘삼겹살 김치볶음밥'이 된다. 하지만 삼겹살과 김치와 마늘을 넣고 비벼버린다면? 그냥 비빔밥이 되어버린다. 비빔밥은 아무리 많은 재료를 넣어도 비빔밥이라는 한 마디를 넘어설 수 없다. 볶음밥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요리라는 것은 무릇 이름이 길어질수록 어쩐지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고급 레스토랑 메뉴판에는 '고소한 크림소스에 트러플 오일을 곁들이고 새우로 마무리한 크림 파스타' 같이 긴 명칭의 요리가 하나쯤은 꼭 있다. 그러니까 대충 만들어도 은근 고급스러운 음식이 바로 볶음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토록 무한하고도 매력적인 볶음밥의 세계에서 내가 가장 즐겨 만드는 것은 김치를 베이스로 한 볶음밥이다. 김치는 그야말로 완전식품이다. 각종 양념이 이미 버무려져 있기 때문에 별다른 재료 없이도 볶는 순간 풍미가 한껏 올라간다. 오랜 시간 푹 삭은 김치는 그냥 먹으면 너무 시거나 쿰쿰한 맛을 내지만 프라이팬에서 볶아지는 순간 매콤 새콤한 맛으로 돌변한다. 여기에 추가 재료들이 곁들여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우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게 썰어둔 파를 넣어준다. 중약불에서 몇 분 동안 볶아주면 파의 향과 맛이 어느새 기름으로 배어들어간다. 냉장고에 삼겹살이나 앞다리살 같은 돼지고기가 있다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에 파 기름과 함께 볶아준다.

고기의 고소한 향이 코를 찌르고 그냥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미리 썰어둔 김치를 투척한다. 밋밋한 고기가 김치라는 이불을 덮고 뜨겁게 프라이팬에서 서로를 포옹하면 어느새 볶음밥 토핑이 완성! 그렇다면 프라이팬이라는 침대에 밥이라는 주인공이 자리할 시간이다.

이때 간장 한 숟가락을 팬 위에 얹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간장이 팬에 눌어붙으면서 특유의 달콤하고도 스모키한 향이 지글지글 솟아오르는데, 그 순간 모든 재료들을 엎치락뒤치락 한데 섞어주면 불맛이 재료 곳곳에 배어들어간다. 그리고 가스불을 화끈하게 올려주면 밥과 재료들이 불맛 향수를 온몸에 뒤덮은 채 가까워진다. 하나가 된다.

서먹했던 재료들이 프라이팬 위에서 "우린 이제 볶음밥이 되었습니다!" 악수를 나누는 것이다. 조금 싱거운 느낌이 든다면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갈비양념' 소스를 살짝 부어주고 몇 분 더 볶아주면 끝이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이 순간을 건강하게 잘 버텨냅시다
 
 지지고 볶아도 맛있는 볶음밥처럼, 우리의 하루도 맛깔나기를
 지지고 볶아도 맛있는 볶음밥처럼, 우리의 하루도 맛깔나기를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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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은 수많은 재료들이 열정적으로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재료들이 프라이팬 위에서 만나는 순간 그럴듯하게 조화를 이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한 요즘, 지금 이 순간을 건강하게 잘 버텨내기 위해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게 필요하니까. 가끔은 냉장고 속 잔반들을 잔뜩 꺼내보자. 마음껏 재료를 썰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밥과 함께 신나게 볶아보자.

누군가에게, 혹은 오늘 하루에게 지지고 볶이며 지쳐버린 당신에게, 볶음밥은 이렇게 말해줄 테니까.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살맛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seung88)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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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콜콜 시시알콜>을 진행하며 동명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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