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성전환 남성 환영', '여대 허물어질 것' 2020년 2월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학생'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2월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트랜스젠더" A씨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는 '피해자로서 말하기'에 지친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을 처음 만난 순간,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온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여성으로 태어나 피해를 입은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차리고 분노를 표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썼다. 다행히도 나의 피해를 펼쳐놓고, 호소하고, 인정받는 과정을 충분히 거쳤다.

모든 여성에게 필요한 과정이고, 그 과정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을 피해자로만 여기는 것에 지치고 말았다.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내세우며 또 다른 소수자를 배척하는 움직임을 본 것이 가장 큰 계기였다.

트랜스젠더의 여대 합격 소식과 입학 포기 소식으로 SNS가 한동안 난리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던 학교에서 조롱과 혐오가 빗발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실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작년부터 학교 곳곳에 터프진영(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이 붙여놓은 스티커가 보이곤 했다. "페미니스트가 할 일: 여성인권 챙기기(O) 남성인권 챙기기(X) 게이/트젠(트랜스젠더) 챙기기(X) 동물 챙기기(X) 비건 챙기기(X)"라는 스티커를 보고 실소를 터뜨린 기억이 난다.

평등의 대상을 조각내어 생물학적 여성의 인권만을 '챙긴다'는 발상이 우스웠다. 거기에 웃기만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토록 무례한 움직임을 가볍게 여긴 탓에 트랜스젠더 동료 시민이 좌절을 경험해야 했고, 학내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함께하던 친구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대 단체 연합 성명문을 봤다. "성별변경 남성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를 환영한다"는 제목과 "많은 여자들의 적극적인 의사표시 덕분에 여자들의 공간과 권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글 아래에 다양한 이름의 페미니즘 모임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며 착잡했다. 그들이 말하는 여자들의 공간과 권리는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여자는 무엇일까. 과학적으로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생물학적 여성'만이 가부장제 사회의 피해자라고 강조하는 것은 장황한 혐오일 뿐이다. 페미니즘은 피해의 경쟁구도를 만들어서 '내가 가장 심한 피해를 겪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려는 신념이 아니다.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를 획일화하고 심지어는 예비범죄자로 만들어서 그 허상에 피해감을 느끼는 것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할 수는 없다. 피해를 호소하는 것이 타인을 배제하는 것으로까지 뻗어나가 누구와 싸울지를 잊고 서로를 끊어내는 것을 멈춰야만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소수자를 배척하는 것은 모순이다. 트랜스젠더가 기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반복하고 재생산한다며 부정할 게 아니라, 그간 주류의 페미니즘 운동에서 은폐되어온 트랜스젠더의 언어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개인이 감당하고 맞서야만 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우리는 타인을 온전하게 맞이할 기회를 잃고 무심한 나머지 무례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소수자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숙명여자대학교 학생 소수자인권위원회가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환영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성소수자 인권모임 무럭무럭이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환영했다. 숙명여자대학교 퀴어모임 큐훗이 모든 퀴어 신입생의 입학을 환영했다. 숙명여자대학교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가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 여성을 축하했다.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763명의 숙대 동문이 트랜스젠더 입학 예정자를 환대하고 지지했다. 나 또한 그 연서명에 함께했다. 피해에 잠식되지 않고, 피해 직시를 넘어 '여성'의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페미니즘을 위해서다. 앞으로도 기존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들이 지워지지 않고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연대하는 페미니스트이고 싶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