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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편집자말]
구한말 조선에 머물었던 미 해군 중위 조지 클레이턴 포크는 '여지도(輿地圖)'라는 이름의 지도첩 하나를 수집했다(관련기사: 구한말 조선의 '역적'을 도운 미국인의 정체). 여지도는 1823~186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첩에는 세계지도, 일본 및 유구(琉球, 오키나와) 지도 등과 함께 조선팔도 지도가 낱장으로 실려 있다.

지도첩을 펴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조지 포크의 메모 때문이었다. 그는 조선 팔도의 모든 고을, 강과 산, 수많은 섬의 이름을 빠짐없이 영어로 메모해 놓았다. 또한 지도의 여백에는 지역별 특산물, 명승고적, 유적지에 대한 해설을 자세히 적어뒀다. 그 중 전라도와 유구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의 고을 이름까지 파악한 미국인
 
 '여지도' 중 전라도 부분.
 "여지도" 중 전라도 부분.
ⓒ 미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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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포크가 '여지도'에 명랑대첩과 관련해 메모한 내용.
 조지 포크가 "여지도"에 명랑대첩과 관련해 메모한 내용.
ⓒ 미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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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지도를 보자. 왼쪽 여백에는 전라도 관련 정보를 적어뒀다. 세곡 창고는 어디에 있고, 영암에서는 가장 좋은 빗이 생산되며, 종이는 전주산이 최고인데 그 옛 이름을 따서 완산지라 부른다는 내용 등을 메모했다.

왼쪽 하단 여백에는 명량대첩과 관련해 이렇게 기록했다.

"In the year called chong yu nyon I-Sun-Shin(Posthumous name=Chhung Mu Gong) fought & defeated Japs in naval battle." (정유년이라고 불리던 해에 이순신이 해전에서 왜군을 대파하다.)

조지 포크가 지도에 적혀 있는 한문을 참고해 보완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한문 글귀는 흐리기는 하지만 '丁酉忠武公破倭處(정유충무공파왜처, 정유년에 충무공이 왜군을 물리친 곳)'인 것 같다. 1597년 9월 16일 명량(울돌목)대첩의 역사를 조지 포크가 한문 글귀보다 더 자세히 기록해 놓다니 기이하다.
 
 조지 포크가 수집한 거북선 자료.
 조지 포크가 수집한 거북선 자료.
ⓒ New York Public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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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포크는 거북선 자료를 수집해 본국에 보내기도 했다(현재 뉴욕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위의 사진을 보자. 왼쪽에는 귀선(거북선)이라고만 적었는데, 오른쪽에는 전라좌수영귀선(거북선)이라고 썼다. 일반적으로 국내에 거북선 자료가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자료가 사료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 배 연구의 권위자인 김재근의 저서 <한국의 배>, <우리 배의 역사>를 들춰 보니 조지 포크의 거북선과 동일한 그림이 나온다. 정조 19년(1795) 왕명에 의해 <이충무공 전서>가 편찬됐는데, 그 첫머리에 거북선 그림 2개가 들어 있다고 한다. 비교해보면 조지 포크가 수집한 거북선 그림과 비슷하다.

조지 포크가 수집한 두 거북선 그림 사이에 뭔가 적혀 있다. 요약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충무공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이다. 임진년부터 난을 평정한 이후 오직 옛날에 만든 거북선 두 척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중 하나는 경상도 통영에 있고, 다른 하나는 전라도 좌수영에 있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치지 못한 상태이다."

다시 지도첩으로 돌아가자. 지도첩에는 일본도와 유구도도 들어 있다. 유구에 적힌 조지 포크의 메모는 매우 희한하다.

'琉球國(유구국) YuKuKuk', '寶庫(보고) PoKo'

이런 식으로 한국어 발음을 따서 적고 있다. '왕도'가 특히 흥미롭다. '王都(Wangdo)'라 표기하고 괄호 속에 'Soul(서울)'이라 적고 있지 않는가. 마치 유구를 한국 땅으로 여기는 한국인이 적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429년에 건국된 유구 왕국은 1879년 일본제국에 강제 병합됨으로써 550년의 역사를 접었다. 조지 포크가 지도에 지명을 적고 있을 때는 유구가 이미 일본에 복속된 지 5년 이상이 지난 시점이다. 그 사실을 조지 포크가 몰랐을 리 없다. 

조선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이방에 문호를 개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그는 어떻게 조선의 인문지리에 통달할 수 있었으며 조선 팔도의 모든 고을, 강산과 섬들의 한자 이름을 영어로 옮길 수 있었을까? 한문과 한자를 스스로 해독했거나 아니면 한국인과 소통하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단순히 미 해군 주재관으로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이런 작업을 수행했던 것일까.

원산이 일본 식민지라고?

1880년대는 약소국에 대한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탈 경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다. 당시 서양 제국주의자들과 일본은 우리 강토를 집요하고 정밀하게 측량해 지도에 옮기고 있었다. 인간이 지배당하면 그 이름이 창씨개명 당하고, 땅이 점령되면 그 지명이 창씨개명 당한다. 우리나라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도상에서 어떻게 창씨개명 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1895년 미국 군사정보국 발간 한국지도 제목. '코리아 즉 일본인의 조센'이라고 적혔다.
 1895년 미국 군사정보국 발간 한국지도 제목. "코리아 즉 일본인의 조센"이라고 적혔다.
ⓒ 미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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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미국 군사정보국 발간 지도 속 남해.
 1895년 미국 군사정보국 발간 지도 속 남해.
ⓒ 미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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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미국 군사정보국 발간 지도 속 원산과 제주도.
 1895년 미국 군사정보국 발간 지도 속 원산과 제주도.
ⓒ 미지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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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는 1875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지도를 바탕으로 미국 군사정보국이 1895년에 제작한 것이다. 지명 표기는 주일 영국대사관의 사토우(DR. EARNEST SATOW)서기관이 영역했다. 말하자면 일본, 영국, 미국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귀결되고 조선이 벼랑 끝으로 몰리던 상황이다.

지도의 이름을 '코리아 즉 일본인의 조센(KOREA OR CHO-SEN OF THE JAPANESE)'이라 적고 있다(여기에서 OR는 '즉'에 가깝다). 원산은 이미 '일본인 식민지(Japanese Colony)'라고 기록하고 있다. 섬뜩하다.

조지 포크가 기록했던 명량대첩의 해역 일대를 눈여겨 보자. 'Washinton Gulf'라 적혀 있지 않는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조선의 영웅 이순신이 미국의 영웅 워싱턴으로 대체된 것이다. 한라산은 '오클랜드 산(Mt. Auckland)'이 됐다. 조지 포크가 지도에 한국 이름과 역사를 새겼던 그때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이렇게 한반도의 역사와 정체성과 주권이 지도상에서 마멸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식민 제국주의 국가의 첨병 노릇을 한 것은 항해가와 군인, 그리고 외교관이었다. 그들은 약소국의 지도에 그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 땅의 주인이 대대로 불러오고 있는 이름 같은 건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미국의 군인이자 외교관이었던 조지 포크는 왜 한국의 모든 지명과 역사를 한국인이 부르는 그대로 지도 위에 새겼던 것일까? 유구국의 지명마저 한국어 발음을 따서 표기한 건 무슨 심사였을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나는 자료를 찾기 위해 워싱턴 미 의회 도서관으로 갔다. 그곳에 조지 포크의 자료 일부가 마이크로필름으로 저장돼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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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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