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아이유의 골든디스크 대상 수상 장면.
 아이유의 골든디스크 대상 수상 장면.
ⓒ JTBC

관련사진보기

 
"사실, 아직 조금 많이 슬픕니다. 사람으로서도 친구로서도 뮤지션으로서도 너무 소중했던 한 분을 먼저 미리 먼 곳으로 보내드리고, 왜 그분이 그렇게 힘들고 괴로웠는지 그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고, 또 저도 전혀 모르는 감정은 아닌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많이 슬프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는데요."

지난 2018년 1월, 제32회 골든디스크 수상식에서 아이유가 수상소감으로 한 말이다. 당시 아이유가 애도의 뜻을 밝힌 고인은 뮤지션 종현이었다. 종현은 아이유의 발언으로부터 약 한 달 앞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이후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우울증이었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생전의 종현을 모르더라도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전혀 모르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는 아이유의 말처럼, 사실 오늘날 우울증을 겪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 됐다. 다만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에 우울증을 드러내는 게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점차 편견을 걷어내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우울증에 관해 자세하면서도 솔직한 고백을 담은 책 2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 권은 자신이 직접 겪은 우울증 치료 과정을, 다른 한 권은 우울증을 앓는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심정을 담은 책이다.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방문하기까지...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책표지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책표지
ⓒ 시공사

관련사진보기

 
MBC 김정원 기자는 자신이 쓴 책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에 경험을 솔직하게 담았다. 우울과 불안에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병원을 찾은 그는 가벼운 우울을 넘어 중등도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책의 내용은 진단 이후부터 마지막 진료까지의 과정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감정의 둑'이 한순간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어. 내 마음은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안감이 30~40미터 높이의 해일처럼 들이닥치는 거야. 조금씩, 조금씩 감정의 둑에 구멍이 나고 있는 걸 몰랐던 거지. 찰랑찰랑하던 물살이 둑을 한 번 넘고 나니까 소용돌이치며 마음밭을 완전히 휩쓸고 가버렸어. 중간중간 흙도 다지고 보강 공사도 해야 하는데 그걸 놓쳐버린 것 같아." - 본문 162쪽 중에서
 

처음 어렵게 병원 문턱을 넘어 진료실로 들어선 일, 약을 챙겨 먹으며 우울과 싸우는 일, 변해가는 마음을 바라보며 점차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하나 같이 무거운 내용이지만 저자는 딱딱하지 않은 문체로 덤덤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는 우울증 약과 상담, 생각 돌아보기 등 우울증을 겪은 이가 자신의 치료 과정을 공유하는 책이다. 비록 소개된 치료법과 설명이 전문적인 건 아니지만, 우울증 환자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데는 도움이 될 듯하다.

사실 우울증 환자를 괴롭히는 건 증상 자체이지만, 주변의 시선도 하나의 큰 난관이니까. 본문에서도 약을 먹을 때마다 쭈뼛거리며 몰래 정수기를 찾던 저자가 점차 출근 후 당당하게 약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두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다.
 
"우울증 환자. 이 간단한 다섯 글자를 인정하고 고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막막했다.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인터넷에는 우울증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글이 넘쳐났다. (중략) 환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 우울증 걸렸어요'라고 대놓고 책까지 쓰기가 뭣한 사회 분위기 탓일 거라고 생각한다." - 본문 177~178쪽 중에서
 

환각과 환청을 동반한 아내의 우울증... '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
 
 마크 루카치가 쓴 책 <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 표지 사진
 마크 루카치가 쓴 책 <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 표지 사진
ⓒ 걷는나무

관련사진보기

 
두 번째 책은 <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인데, 미국인 마크 루카치가 2011년 <뉴욕타임스>에 연재한 칼럼을 엮은 것이다. 저자 마크는 대학에서 줄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6년의 연애 끝에 결혼해 부부가 된다. 이후 해안가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마크는 교사로 취직한다. 아내도 마케팅 분야로 기업에 취직한 후 과장으로 승진에 성공한다. 마크는 자신이 줄리아와 꿈에 그리던 결혼 생활을 이어가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아내 줄리아가 직장을 옮긴 후 맡은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로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하다가 끝내 우울증을 앓게 된다. 줄리아의 우울증은 특이하게도 조현병 증세처럼 환각과 환청을 동반했다. 줄리아는 악마가 나타나 자신과 가족의 인생을 끝장낼 것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악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며 자살 충동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흔히 '조울증'이라고도 하는 양극성 장애는 극단적으로 즐거운 기분과 극단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오가는 증상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줄리아는 두 극단적인 감정을 모두 부정적으로 겪었다. 줄리아의 조증은 흔히 조증인 사람들이 겪는 자유분방하고 떠들썩한 기쁨은 아니었다. 줄리아가 겪는 조증은 빠른 속도로 편집증과 망상을 동반한 정신 질환으로 이어졌다." - 본문 285쪽 중에서
 

결국 그는 집 인근 병원 응급실에 아내 줄리아를 데려가는데, 이후 벌어지는 일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이었다. 짧은 검사와 치료 후 귀가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마크의 기대와는 달리, 응급실에서 정신과 전문 병원으로 옮겨진 줄리아는 폐쇄 병동에 72시간 격리 입원하게 된다. 가족 면회는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했다.

줄리아도 마크도 처음 겪는 일에 슬프고 힘겨워하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 책은 사랑하는 이가 우울증을 겪는 걸 곁에서 지켜본 걸 담았다. 그런 만큼 우리가 우울증 환자를 바라보는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고, 우울증을 겪는 이가 어떤 자세를 원할지 알려준다.
 
"나는 줄리아의 우울증을 불처럼 대했고, 늘 소화기 역할을 하려 했다. 줄리아의 감정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그 불씨가 파멸의 지옥이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 재빨리 대응하곤 했다. 특히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아무 때나 불쑥 튀어나오는 자살 이야기를 사람들이 듣고 거북해하는 게 싫었다.

(중략) 이번에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줄리아의 절망이 거실에 무겁게 내려 앉았다.

"신이 나를 버렸어." 줄리아가 말했다.
나는 침묵했다.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줄리아가 말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자 줄리아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내 말 들어줘서 고마워." 줄리아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자기 입술에 가져다 대고 키스를 했다." - 본문 170~171쪽 중에서

흔히 우리는 우울증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이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는 것조차 불편해하곤 한다. 저자 마크의 글 중 '아내의 우울증을 불처럼 대하며 자신이 소화기 역할을 하려 했다'는 묘사는 딱 그런 시선을 꼬집는 것 같다.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울증
 
 우울증
 "국내 우울증 진료 환자는 2017년 기준 68만 명을 넘어섰다. 우울증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 흔히 하는 실수로 '괜한 조언'을 건네는 일이 거론되곤 한다. 사실 필요한 건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일 텐데. 어쩌면 우울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우울증이란 마음을 약하게 먹어서 그런 거'라느니 '햇빛 쬐고 운동하면 다 나아진다'는 식의 말이 그렇다. '난 익사하고 있는데 넌 내게 물을 설명하고 있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정작 우울증을 앓는 당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저 공감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울증은 잠깐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 달리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생기는 '질병'이다. 의지를 굳게 다진다고 이겨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를 쓴 저자는 "국내 우울증 진료 환자는 2017년 기준 68만 명을 넘어섰다"라며 "우울증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썼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우울증은 인류를 위협할 10대 질환 가운데 3위를 차지했고, 2030년이 되면 1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우울증으로 2년 6개월 가까이 치료를 받고 있다. 책의 저자들 또한 자신이나 아내가 우울증으로 힘겨워할 줄 미처 몰랐듯이 나도 내가 우울증으로 이렇게 긴 시간 치료받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나 자신의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우울증'을 겪는 과정에 관해 조금 더 이해하고 편견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두 권의 책이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김정원 씀/ 시공사 펴냄/ 2019. 2. 20/ 1만3000원)
<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마크 루카치 씀/ 박여진 번역/ 걷는나무 펴냄/ 2019. 1. 7/ 1만4000원)


오늘 아내에게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 아픔을 마주하고 헤쳐가는 태도에 관하여

김정원 지음, 시공사(2019)


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 - 6년의 연애, 세 번의 입원 그리고 끝나지 않는 사랑의 기록

마크 루카치 지음, 박여진 옮김, 걷는나무(2019)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