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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가까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정착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비정규직, 계약해지, 경력단절 모두 의도하지 않았지만 저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이제 직장 말고 창작에 다니려 합니다. 매일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매일 당황하는 직장인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대학을 졸업한 2008년부터 작년 2017년까지 10년 동안 8번의 사표를 냈다. 직장인과 백수 사이를 반복하며 정장과 청바지를 바꿔 입었고, 빌딩과 도서관을 넘나들었다. 어떤 때는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주변사람들의 부러움을 샀고, 어떤 때는 취준생으로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샀다.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다가도, 돈이 없어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조직에서는 항상 막내 사원이었고, 집안에서는 항상 장녀였다. 직장인과 백수. 그 간극 속에서 매년 청춘의 해를 넘겼다.

직장을 그만 둘 때마다 부모님은 나에게 말씀 하셨다.

"이 세상에 안 힘든 직장이 어디에 있니. 다 참고 다니는 거지..."

평생을 우직하게 노동했던 아버지를 나는 닮지 않았나 보다. 나는 정말 참을성이 없는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수많은 밤을 자책하며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청춘의 나는 죄 없는 죄인이었다.

'가난'이 끼어들면 선택은 급해진다

 나는 항상 마음이 급했다. 넉넉지 못했던 형편 때문에, 여유가 없었던 환경 때문에, 항상 남들보다 빨리 취직하고 돈 벌고 자립해야 했다.
 나는 항상 마음이 급했다. 넉넉지 못했던 형편 때문에, 여유가 없었던 환경 때문에, 항상 남들보다 빨리 취직하고 돈 벌고 자립해야 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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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마음이 급했다. 넉넉지 못했던 형편 때문에, 여유가 없었던 환경 때문에, 항상 남들보다 빨리 취직하고 돈 벌고 자립해야 했다. 부모님은 늙었고, 힘들었고, 나를 챙겨줄 재간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뭐든 동시에 했다. 가난은 나를 멀티플레이어로 만들었다.

여대생인 내가 제일 갖고 싶었던 것은 비싼 옷도 가방도 아닌 '여유'였다. '여유' 속에서 내 꿈을, 내 일을, 내 삶을 '고민'하고 싶었다. 가난 속에서는 고민도 사치가 된다. 여유가 없던 나의 환경은 고민보다 생활이 앞서 있었기에, 친구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돈을 걱정해 진로를 고민할 수 없었다. 인생의 고민 중에 가난이 끼어들면 선택은 급해진다. 어디든 빨리 취업해야했다. 절박은 여지가 없다.

빨리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 빨리 한 취업도 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체기 가득했던 이십대의 나날들. 매일 매일 답답했다. 나와 맞는 일이 아니어서, 계약직이어서, 나의 경력은 좀처럼 쌓일 줄을 몰랐고 이력서만 점점 쌓여갔다.

회사를 그만두기도 잘했지만 들어가기도 잘했기에, 나의 문제이기도 했고 나의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항상 칭찬을 받았다. 일도 잘했고 싹싹했고 성실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사표를 냈고, 이직을 했다.

주어진 일들과 역할은 잘 해냈지만 대학생 내내 돈과 가난에 밀려 '나'를 고민하지 못했기에 직장을 다니면서 '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이 늦었다. 이직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재미없는 일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생각했고, 다니기 싫은 직장을 다니며 가고 싶은 공간을 꿈꿨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꿈,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늦은 고민들은 넘쳐났고 나는 휘청거렸다. 직장인이 휘청거리면 사표밖에 잡을 게 없다.

그렇게 들락날락. 10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며, 다녔던 직장의 절반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서 그만두었고, 나머지 절반은 뒤늦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지만 계약직이어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의지와 어쩔 수 없음 사이에서 그렇게 8번의 이직이 만들어 졌다.

스물두 살 때부터 썼던 이력서는 십년이 지난 서른두 살에도 여전했고,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는 언제까지 떼야 하는지 지겨웠다. 이십대의 이력서는 당당하고 삼십대의 이력서는 부끄럽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사십대의 이력서는 어떨까? 아휴 그땐 진짜 쓰지 말아야지. 혼자 곱씹는다. 시기(時機)는 감정도 변화시킨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그리도 말씀하셨나 보다. "다 때가 있다."

직장인이 되어 휘청거리는 것보다는

 나 또한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먹었다면 죄 없는 죄인이 되어 주눅 들지 않았을 텐데, 돈에 밀려 조급함에 밀려 체하지 않았을 텐데
 나 또한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먹었다면 죄 없는 죄인이 되어 주눅 들지 않았을 텐데, 돈에 밀려 조급함에 밀려 체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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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 지난 후. 내가 썼던 이력서는 모두 절박했고 다녔던 회사들에는 충실했지만 휘청거렸던 나의 청춘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한 직장을 그만두고 다음 직장을 얻을 때까지 휴대폰을 정지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괴로워하며 다음 월급을 위해 아등바등 지냈다. 미련했던 시간들. 백수인 내가 죄인 같았다.

그렇게 나는 또 백수의 간격을 빨리 줄이는 데만 급급해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닌 또 다른 '회사'를 찾았다. '직업'이 아닌 '직장'만 갈구하면 나처럼 이직이 잦다. 듬성듬성한 고민과 텅텅 비어있는 마음이 한 선택은 틀리기 쉬운데, 나는 그 틀린 선택을 여러 번 반복했다. 모두 '나'에 대한 고민과 확신이 비어있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서 청춘의 그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내 꿈을 위해, 청춘의 잠깐을 유예하는 시기를 두어도 괜찮다고. 청춘에는 지각이 없다. 다 제때다. 깊게 고민하고 방황하고 흔들리고 생각하다 선택하라고 말이다. 직장인이 되어 휘청거리는 것 보단 훨씬 낫다. 경험해 보니 그렇다.

쉽지 않지만 사회가 등 떠미는 잣대와 환경이 몰아붙이는 궁지에 나를 내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고민은 농익을수록 여지없는 선택을 만들고 삶은 여지가 없어야 깔끔하다. 한 사람의 직업이, 일이, 꿈이, 얼마나 얼마나 중요한 결정인데 대학만 나오면 정해지고 회사만 들어가면 해결이 될까? 절대 아니다. '빨리빨리' 졸업과 취업 사이에는 삭제해야 할 단어다.

하지만 훈수와 조언은 결국 방향이 잘못된 나에게 해야 할 말. 나 또한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먹었다면 죄 없는 죄인이 되어 주눅 들지 않았을 텐데, 돈에 밀려 조급함에 밀려 체하지 않았을 텐데, 나를 위한 여유의 시간을 견디고 두었더라면 내 청춘이 더 푸르렀을 텐데... 가장 후회스럽다. 후회는 쓸모없는 깨우침일 뿐이다.

그래서 그대들에게 선언한다.

"백수는 죄수가 아니며, 이직은 사직이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력서를 쓰고 있을 취준생, 이직을 마음먹고 있을 직장인과 함께 외치고 싶다.

"멋진 수트를 입다 청바지에 티를 입어도 주눅 들지 말고, 평일 아침 빌딩이 아닌 도서관에 들어가도 당당할 것!"

마냥 미룰 수는 없겠지만 청춘의 시기는 조금 미뤄도 되고, 미루는 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닌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도 이제야 알게 됐다. 내가 한 선택에는 시행착오도 따를 수 있고 부족도 잘못도 따라올 수 있다.

다만 반복되지 않도록, 그 '미룸'이 다음엔 '이룸'이 될 수 있도록 그 사이 사이 '나'를 깊게 고민해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깊게.

직장생활 10년이 지난 이제야 그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나는 미루고 미뤄서 마냥 청춘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다. 아! 얼마 전 UN이 재정립한 평생연령 기준을 보았다. 18세부터 65세 까지가 청년. 이렇게나 긴 청춘. 더 미뤄야겠다. 이룰 수 있도록. 그것이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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