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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을 찾은 한 초등학생이 '일본해(SEA OF JAPAN)'가 아닌 '동해(EAST SEA)'로 표기한 이탈리아 '조폴리 지오그라피카'(ZOFFOLI GEOGRAPHICA)가 만든 지구본을 관람하고 있다. 이 지구본은 외국 학술서적 전문 인터넷서점인 티메카코리아가 서울도서관에 기증했다. 2014.4.4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지난 2014년 4월 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을 찾은 한 초등학생이 '일본해(SEA OF JAPAN)'가 아닌 '동해(EAST SEA)'로 표기한 이탈리아 '조폴리 지오그라피카'(ZOFFOLI GEOGRAPHICA)가 만든 지구본을 관람하고 있다. 이 지구본은 외국 학술서적 전문 인터넷서점인 티메카코리아가 서울도서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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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나 해양의 명칭은 너무나 중요하다. 새삼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바다나 해양의 명칭은 영해를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어 국가의 경계로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혹은 영해가 아니더라도 국가홍보와 사람들의 공간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20여 년 전 북한이 느닷없이 동해에 미사일을 발사하자 필자가 해외유학 중이었던 현지 언론에서 낙착 지점을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를 실어, 현지인들에게 북한이 일본영해를 침략한 인상을 준 것이 이를 입증하는 한 사례다.

심상지리(心象地理, imaginative geography)개념에서 볼 때 근년 중국, 베트남,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이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중국영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남중국해'로 표기하니 부지불식간에 이 바다 전체가 중국의 바다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심상지리란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의 자의적인 공간규정을 가리켜 사용한 용어다. 당시 필자는 뜨악한 나머지 여타 세계 주요 국가들의 유력 언론들도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일본은 당연하고, 미국, 영국, 러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대만 등의 유력일간지들도 거의 모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주요국에서는 한반도, 일본, 러시아 연해주로 둘러싸인 동해를 일본해로 인식하고 표기하는 게 대세였다. 그렇게 된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역사의 산물이자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펼친 외교 노력의 결과다. 그 노력은 멀리 20세기 초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의 가치 알아본 일본, 명칭부터 '일본해'로 침탈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전부터 동해가 지닌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일본은 동해를 중심으로 한 일본제국의 건설을 꿈꾼 적이 있다. 일본은 한때 동해를 중심으로 환태평양경제권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했는데, 이게 시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1920~30년대 일본의 육군대장, 내각총리대신, 육군대신, 외무대신, 내부대신을 지낸 타나카 기이치(田中義一)는 동해가 지니는 군사 전략적, 경제적인 가치에 일찍 눈을 떴다. 일본이 만주를 집어삼키려면 일본열도, 한반도, 사할린, 및 연해주에 둘러싸여 있는 동해를 손에 넣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는 적의 함대가 대한해협과 치시마(千島)해협을 봉쇄해버리면 일본이 반드시 패하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이를 토대로 동해를 중심으로 한 국가전략을 수립한 일본은 동해를 일본해로 침탈한 것이다.

근대 이래 서구의 해외 진출 혹은 해외 식민지 경영은 모두 바다를 통해 이뤄졌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바다 그 자체가 중요한 침탈과 경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열강들 사이에는 특정 바다를 둘러싸고 분쟁이 잦았다. 바다 명이나 해양 명은 모두 발견자 혹은 영유권자의 영역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또한, 영해의 경계도 모호했으며, 육지와 달리 거친 바다는 해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상황이 반영돼 일제의 한반도 강압 지배가 한창이던 1919년 6월, 영국 런던에서 국제수로회의(IHC)가 개최됐다.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18개국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해양 지명의 국제적 표준화와 항해 안전 국제규범을 마련하기 위한 국제수로국(IHB) 창설이 결의됐고, 2년 뒤 1921년 해도 등을 개선해 전 세계의 항해를 쉽고 안전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모나코에 본부를 둔 국제수로국이 설립됐다.

일본은 미국, 영국과 함께 강력한 해군력을 유지하면서 동해를 자국의 영향 아래에 두기 위해 1929년 개최된 국제수로회의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결정을 이끌어내 1929년 초판부터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게 만들었다. 국제수로국의 이 결정은 당사국인 한국을 배제한 채 일본의 일방적인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처해 있어서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박탈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의 협약은 한국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무효이고, 협약을 새로 체결해야 한다. 더욱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관례상 '일본해'의 단독 표기는 적합하지 않다. 국가명만으로 지구상 바다 명칭을 표기하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1937년에 발간한 세계 공식 해도(海圖) 제2판에서 동해는 '일본해'로 단독 표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합체제 하에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체결된 다음 1953년 국제수로국에서 발간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 3판" 개정 시에도 '동해'는 인정받지 못했고, '일본해'로 단독 표기됐다. 당시는 한국이 일제식민통치에서 벗어난 뒤였지만 외교적인 힘이 미약한 약소국이었던 데다가 국제수로국에 가입도 못 한 상태였다. 한국이 국제수로국에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은 1957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67년 모나코에서 열린 제9차 국제수로회의에서 채택된 합의에 따라 국제수로국은 1970년부터 국제수로기구(國際水路機構,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약칭 IHO)로 새로 출범하면서 41개 회원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그 후 IHO는 1974년 바다명칭을 복수로 병기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

즉 관련국들이 합의해 공통의 명칭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에는 각국의 두 명칭을 병기한다는 원칙을 명시한 IHO의 'A.4.2.6 결의안'이 그것이다. 또 1977년에는 유엔지명표준화위원회(UNCSGN)가 당사국이 지명을 합의하지 못할 경우 서로 다른 지명을 모두 수용하는 것을 국제 지도제작의 일반 원칙으로 권고했다.

'동해'와 '일본해' 병기 추진은 한국 정부의 미봉책

하지만 유엔에 가입하지 못한 한국 정부로서는 공식 의견을 제기할 수 없었다. 또 국제적 영향력의 한계로 '일본해' 명칭표기 변경을 위한 조직적인 활동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1991년 유엔에 가입한 후 1992년부터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표기되어온 점을 감안해 동해의 단독표기 또는 '일본해'와 병기하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동해'의 영문 명칭을 'East Sea'로 정하고 국제수로기구가 세계의 공식 해도를 바꿀 때 '일본해'와 '동해'가 함께 표기되도록 힘을 쏟았다. 동시에 20년간 확산을 추진하면서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를 목표로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시종일관 일본해 단독 표기만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이 '일본해'로 단독 표기함에 따라 한국 정부는 우선 '일본해'와 '동해'의 병기를 수용하고 추진했지만, 한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해' 단독 표기이다. '동해·일본해 병기'는 잠정적으로 불가피하게 선택한 미봉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유엔의 지명전문가 그룹이 바다 명칭은 병기할 수 없고, 단독 명칭으로 표기해야 한다면서 '일본해' 단독 표기를 제기했다. 이에 한국이 동해 대신 '한국해'로 표기하자는 새로운 의견을 내면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리고 5년 전인 2012년 4월 제18차 국제수로기구 총회가 개막됐지만, 예상했던 대로 한국 정부가 주장한 '동해·일본해' 병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이 안건에 대한 논의 종결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세계 도처의 바다 명칭이 새로 수록될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제4차 개정은 차기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미뤘다.

이달 열릴 국제수로기구총회에서 동해 명칭 결정

이제 제19차 국제수로기구총회가 4월 24~28일, 5일간 모나코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3주 정도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 정부는 지난 번과 동일하게 동해·일본해의 병기를 요청할 예정이다.

세계 바다 명칭이 수록된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안 논의과정에서 일본이 동해의 '일본해' 단독 표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동해의 명칭 결정 문제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제수로기구는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해양분야에서 입김이 강한 미국과 영국도 일본해 단독표기를 지지하고 있어 우리 정부의 안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전략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총회에 임하는 한국 외교부의 전략은 동해 단독 표기를 원칙으로 하면서 '동해·일본해' 병기까지는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일본해'로 표기되어온 점을 고려해 우선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시킨 뒤에 우리의 주장이 반영돼 병행 표기가 많아지면 단독 표기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런데 병기 표기는 '동해 명칭은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국내여론에 역행한다. 현실적으로 IHO와 일본이 이를 받아줄지도 의문인 데다 일본해와 동해의 병행 표기가 많아진다고 한들 이미 굳어진 일본해의 호칭과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된 관행을 바로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간외교단체 등에서 끈질기게 시정요청 및 홍보해온 결과 2000년 세계 주요 지도 중 약 3%에 불과하던 동해·일본해의 병행 표기 비율이 30%로 높아졌고, 2005년 이후에는 89%나 병기했다는 조사도 있다.

먼저 한국 정부는 IHO에 동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제국주의 시대에 비인도적 침략행위가 있었음을 적극 알려야 한다. 또 일본의 일본해 단독 표기 주장이 국제적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부각해야 한다. 또 한국의 외교통상부가 IHO 회원국을 상대로 동해와 일본해 병기 노력을 기울였으며, 시민단체와 해외교민들의 노력으로 거둔 성과를 토대로 일본해가 18세기 말부터 국제적으로 통용돼온 것이라고 한 일본 정부의 주장을 논박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다.

그 근거로 한국의 고지도와 동서양 고지도를 비롯한 각종 문헌 자료에 '동해', '조선해'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일본에서도 19세기 말까지 '조선해'로 표기해온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한국의 문헌에는 기원전(약 2000년 전)부터 동해로 불려 왔다. 특히 광개토대왕릉비(411년)와 삼국사기(1145년)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동해'로 기록돼 있다. 최근엔 동해를 증명하는 고지도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조선해' 단독 표기했던 일본 자료

한국어업법규집 1909년에 출간된 <한국어업법규집>은 목차와 본문에서 모두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다.
▲ 한국어업법규집 1909년에 출간된 <한국어업법규집>은 목차와 본문에서 모두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다.
ⓒ 서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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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만들어진 '관허대일본사진전도' 등 일본의 많은 지도에도 '조선해'를 단독으로 표기했거나 '조선해'와 '일본해'를 병기했다. 조선해를 단독으로 표기한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필자가 발견한 일본의 해양 수산 관련 도서인 <한국어업법규집(韓國漁業法規集)>에도 목차와 본문에 모두 조선해로 기록돼 있다.

이 도서는 저자가 동경수산학회(東京水産學會)로 돼 있고, 발행자는 수산서원(水産書院)인데, 1909년에 출간된 것이다. 요컨대 적어도 19~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일본의 수산업자나 민간인들이 동해를 일본해가 아니라 '조선해'로 알고 있거나 표기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결정적인 자료다.

서양에서도 일본이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바다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가 만들어진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전에는 동해나 한국해, 또는 조선해로 표기된 지도가 대부분이었다. 1642년 독일에서 발행된 <세계지리학 입문>도 동해를 라틴어로 '동쪽의 바다'라는 뜻의 'MARE EOUM'라고 적어놓았다. 이는 서양에서도 동해라는 명칭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바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1646년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의 귀족이자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탐험가 겸 지도 제작자로서 최초의 세계 해도인 '바다의 신비'(Dell'Arcano del Mare)를 제작한 로버트 더들리(Sir Robert Dudley)가 그린 고지도에도 'Mare di Corai', 즉 '한국해'로 나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바다의 신비'의 '아시아 해도 17장'(Asia Carta ⅩⅦ)으로 일본과 한반도 해안선을 비롯해 '한국해'와 '일본해'(Mare di Giappone) 등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현재의 동해 해역을 '한국해'로, 일본 가고시마 남단 해역은 '일본해'로 표기한 것으로 돼 있다.

1721년 영국 왕실지리학자 세넥스가 제작한 인도와 중국 지도에도 'EASTERN SEA'로 표기됐다. 이밖에 러시아·프랑스·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다수의 지도도 '동해'로 돼 있다. 1760년 대영제국이 세계 표준화를 위해 만든 지도에는 동해가 한국해(Sea of Corea)로 표기되어 있다. 한국의 고지도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독일·영국·러시아 등의 서양 지도들이 동해 해역을 '동해'라고 표기한 것이다. 이처럼 18세기까지 동·서양의 고지도에는 동해 해역을 '조선해' 또는 '동해'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제19차 국제수로기구총회에서도 일본해로 단독 표기된다면 상당 기간 이를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에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라는 최소한의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S-23 개정판 발간을 저지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성원을 함으로써 외교적인 총력전에 힘이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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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립 정치대학 역사연구소 역사학 석사, 박사(중국근현대사, 중국공산당사, 중국-외국관계사, 한국전쟁 전공), 경향신문 기자(출판국), 중앙대학 강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책임연구원, 해군발전자문위원 역임, 현재 중국공산당 창건사 연구중심(중국 상해) 해외특약연구원, 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지역연구원 중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