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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을 받으면 검은 아이들은 파랗게 보여."
 "달빛을 받으면 검은 아이들은 파랗게 보여."
ⓒ <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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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 이 기사엔 영화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달빛 아래 흑인 소년들은 푸르게 보인다(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는 서정적인 제목의 희곡을 각색한 영화 <문라이트>. '왕가위를 좋아하는 흑인 감독이 만든 블랙 퀴어 영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평단의 폭발적인 지지 등의 수식어에 흥미가 안 생길 수 없는, 올해 가장 주목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흑인 게이 소년의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된 후의 3부로 구성된 플롯은 언뜻 보기에 퀴어-성장물로 읽히기 쉽지만 이 영화는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폭력적인 또래 무리에게서 도망쳐 낡은 건물에 숨어들어가는 꼬마, 그곳에서 마주친 어른 후안은 시종일관 다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 왜 집에 가려 하지 않는지 묻지만 꼬마는 묵묵부답이다.

꼬마의 어린시절은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침묵으로 가득차 있다. 결국 후안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자 그곳에 있던 후안의 여자친구 테레사에게 겨우 말을 뗀다.

"제 이름은 샤이론이에요. 모두가 리틀이라 부르지만."
"나는 너를 이름으로 부를거야."

테레사를 빼고는 모두가 리틀이라고 부르는 소년 샤이론, 그의 엄마는 마약 중독자이며 그의 학교 친구들은 그를 '호모'라고 놀리고 괴롭힌다. 어린 소년의 세계는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가끔 후안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다. 인간은 생각보다도 더, 주변 환경이, 사회가 억압하고 만들어내는 자아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그래서 1부의 제목은 꼬마가 불리는 그대로 '리틀'이다. 샤이론이 후안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 수영을 간 날, 물 속에서 그는 어떤 해방감을 느끼는 것만 같다.

 후안에게 수영을 배우는 샤이론
 후안에게 수영을 배우는 샤이론
ⓒ <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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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지나가는 할머니가 불러 세우더니 그랬어. 뛰어다니며 달빛을 잡으려고 하는구나, 달빛을 받으면 검은 아이들은 파랗게 보여, 파랗게. 그러니까 널 이렇게 부를게, '블루'"
"아저씨 이름은 블루인가요?"
"아니... 때가 되면 스스로 뭐가 될지 정해야 해. 그 결정을 다른 사람이 할 순 없어."

후안과 샤이론이 나누는 이 대화가 바로 영화 <문라이트>가 닿으려고 하는 종착점이자 샤이론이 염원하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라면 더욱 더, 소수자라서 더욱 더 그 결정은 힘든 일이다. 흑인, 빈곤 가정에 게이여서 받는 모든 폭력과 차별들에서 어떻게 한 명의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서 2부 '샤이론'에서도 샤이론은 역시 침묵할 뿐이다.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더 심각한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친구들은 여전히 그를 호모라고 괴롭히며,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이던 후안은 죽었다. 물에서 위안을 얻는 물의 아이 샤이론은 바닷가 앞에서 유일한 친구인 케빈과 마주친다. 그를 블랙이라고 부르는 친구이며 그가 숨겨온, 몽정의 대상이다.

"나는 가끔씩 내 눈물에 휩쓸려서 내가 그대로 물이 되어버릴 것 같아."

처음으로 터놓고 속 얘기를 하던 그들은 이내, 성적인 경험을 나눈다. 샤이론에겐 살면서 처음 느낀, 희열로 가득찬 격렬한 몸의 떨림이다. 물을 좋아하는 샤이론에게, 그럼 자신이 불을 알려주겠다고 말한 케빈은 말 그대로 샤이론의 마음 속에 불꽃을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여전히 그를 리틀이라 부르며 괴롭히고, 케빈마저 그를 배신한다.

3부 '블랙'에서 샤이론은 어른이 되어있다. 그것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불안한 눈빛의 비쩍 마른 소년과는 다르게, 근육질에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할 줄도 아는 거친 마약상이 되어있다. 케빈의 배신 이후 소년원에 들어가 새로운 사람, 거친 사람이 되어 나온 샤이론은 그래서 성장한 걸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를 숨기며 살던 그는 늦은 밤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케빈의 전화다. 불을 다루는 요리사가 된 케빈은,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한 곡의 노래 때문에 그가 생각났다는 말을 한다. 그 전화 한 통에 샤이론은 흔들린다. 이 영화가 로맨틱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절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샤이론은 소수자로서 받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을 했지만, 이 결정은 오히려 더 그를 꽁꽁 싸맬 뿐이다. 그래서 이 결정 또한, 사회가 준 강압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변화시키는 힘은 역시 사랑이다. 케빈의 전화를 받은 그는 그날 밤 몽정을 한다. 그 옛날 블랙이라 불리던 그 시절처럼. 사랑은 아래부터 시작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 않나.

감독이 '왕가위 키즈'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도 3부에서다. 그에게 전화를 걸고 담배를 피는 케빈을 찍는 몽환적인 화면에서부터 로맨틱한 기운이 시작되어 샤이론이 케빈을 만나기 위해 주를 가로질러 운전을 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꾸꾸루꾸꾸 팔로마(Cu Cu Rru Cu Paloma)는 생각지 못한 충격이며, 그래서 더 강렬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리고 케빈을 향해가는 샤이론의 자동차를 따라가던 화면은 이내 달빛 아래 파랗게 흔들리며 뛰노는 흑인 아이들을 보여준다.

 케빈이 내놓은 음식을 앞에 두고 둘의 시선은 허공에 얽힌다.
 케빈이 내놓은 음식을 앞에 두고 둘의 시선은 허공에 얽힌다.
ⓒ <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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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이 일하는 식당에 찾아가 십년 만에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을 슬로우로 잡아내는 카메라는 너무 솔직해 귀여울 지경이다.

"여긴 어쩐일이야? 아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여기 온 게 중요하지."

사람들이 무서워하던 마약상 샤이론과는 다르게, 케빈 앞에서 그는 어색하고 멋쩍어보인다. 멍해져서 그의 말에 대꾸마저 잘 못한다. 그 옛날의 블랙처럼 보인다. 케빈은 샤이론을 위해 '셰프 스페셜'을 요리해 주겠다고 한다. 케빈이 요리하는 주방 신을 카메라는 천천히, 낭만적으로 훑는다.

감독 젠킨스는 "나는 단 한번도 흑인 남자가 흑인 남자를 위해 요리 하는 장면을 영화에서건, 어느 미디어에서건 본 적이 없다"며 장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애정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관계는 친밀하게 발전한다. 케빈이 냄비를 젓고 밥을 푸고 치킨을 굽고 고수를 써는 모든 장면은 그래서 충분히 임팩트있게 보여진다.

"그 장면은 초당 24프레임으로 리얼하게 찍기보다 슬로우모션으로 촬영하기를 택했어요. 그 신은 사실 60초도 안 넘을거에요."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를 본 이는 알겠지만, 샤이론이 꼬마일 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음식을 해준 건 대모 역할을 한 테레사와 케빈 뿐이다. 요리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케빈이 내놓은 음식을 앞에 두고 둘의 시선은 허공에 얽힌다. 케빈은 샤이론이 떠올랐다는 노래를 튼다.

Hello, stranger 안녕, 낯선 사람
It seems so good to see you back again 당신이 돌아온 걸 보니 정말 좋네요
How long has it been? 얼마만이죠?
It seems like a mighty long time 정말 오랜만이에요
Oh-uh-oh, I my, my, my,  I'm so glad 저는, 저는 저는, 너무 기뻐요

샤이론이 3부에서 내내 틀고 다니던 거친 힙합과는 다르게 유치할 정도로 낭만적이다. 샤이론이 그렇게 거부했던, 멋쩍고 수줍은 감정의 세계다. 샤이론은 그날 밤 케빈의 집에 따라가고, 케빈은 그를 위해 차를 끓인다. 냄비의 물이 파란 가스불 위에서 끓기 시작한다. 물의 소년 샤이론에게 불을 보여준다고 했던, 불꽃을 만들어 주었던 케빈은 다시 한 번 그를 변화시킨다. 아니 본래의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는 촉매제가 된다.

"이제까지 내 몸을 만진 건 너 밖에 없었어."

샤이론의 이 취중고백에 이제까지 그가 숨겨왔던 마음이 담겨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 정했다고 생각했던 샤이론도, 지금의 거친 모습이 진짜 그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샤이론은 그렇게나 샤이론이 되고 싶어했지만, 사실 샤이론은 케빈 앞의 블랙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화 내내 소수자의 힘든 생을 견뎌낼 뿐이던, 그래서 다른 성장물과는 다른 이 영화는 마지막에서야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 질 수 있는 용기, 소수자로서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의 사랑을 통한 아주 작은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씨네밥상 레시피] 케빈의 chef's special

 아로스 꼰 뽀요와 쿠바식 검은콩 요리
 아로스 꼰 뽀요와 쿠바식 검은콩 요리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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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식 닭고기요리와 쿠바식 검은콩요리
(ARROZ CON POLLO& CUBAN BLACK BEAN)

영화에서 케빈이 해 주는 요리는 스페인과 멕시코, 남미 등지에서 많이 먹는 가정식 닭고기 요리인 아로스 꼰 뽀요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닭고기와 밥 정도 된다. 영화에서는 맨밥에 양념에 재운 닭을 팬에 구워 얹고 쿠바식 검은 콩 요리를 곁들여 서빙되는데 본래는 밥과 닭고기에 여러 양념을 해 냄비에서 같이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의 빠에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양념은 토마토, 오레가노, 파프리카 파우더, 쿠민, 칠리파우더, 마늘 등이 주가 되고 취향에 따라 샤프란 등 다른 양념을 넣을 수 있다. 파프리카 파우더와 쿠민 등의 향신료가 생소해 보일 수 있지만 칠리 콘 까르네 등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향신료로 멕시코나 남미 요리를 좋아한다면 구비해두면 좋다. 커리에 더해도 좋고 의외로 쓰임이 다양해 필자도 항상 구비해 둔다.

집에서 직접 만든 치킨 육수를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간편하게 시판 고체형 치킨 스톡을 사용했다. 쿠바식 검은콩 요리는 검은콩에 고수 줄기와 커민, 오레가노 등을 넣어 끓인 것으로 콩이 으깨질 정도로 푹 삶아 내기도 하지만 콩의 씹는 맛이 살아있는 정통 버전으로 준비했다. 포인트는 소금간은 다 끓이고 맨 마지막에 하는 것, 미리부터 소금을 넣고 삶으면 콩이 다 으스러진다. 다 된 아로스 꼰 뽀요와 검은 콩 위엔 고수를 듬뿍 올리고 라임을 한 조각 곁들여낸다. 남미 요리답게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영화에서처럼 와인을 곁들여도 좋겠다.

아로스 꼰 뽀요(3~4인분 기준)

재료 : 닭다리 6개(안심이나 가슴살 등 다른 부위 대체 가능), 토마토홀 1½컵, 쌀 1컵, 양파 ⅔개, 피망 ½개, 다진마늘 1½큰술, 시판 고체형 치킨스톡 1개, 화이트와인비네거 1큰술(현미식초 등으로 대체 가능), 오레가노 2작은술, 쿠민·파프리카파우더·칠리파우더 1작은술씩, 월계수잎 1장, 맥주(라거종류)·물 1컵씩,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올리브유·고수 적당량

1. 닭다리는 깨끗이 손질한 뒤 다진마늘 1큰술, 오레가노 1작은술, 화이트와인비네거 1큰술, 소금 1작은술을 넣고 잘 뒤적여 냉장고에 넣고 1시간 가량 재운다.
2. 양파와 피망은 잘게 다진다.
3. 달군 냄비에 올리브유를 붓고 재운 닭다리를 굽는다. (냄비는 바닥이 두꺼운 주물이나 무쇠냄비 등을 추천한다.) 냄비에 오레가노 1작은술, 쿠민, 파프리카파우더, 칠리파우더를 뿌려가며 굽는다. 닭다리의 표면이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지면 접시에 잠시 옮겨 담는다. 한번 더 익힐거라 속까지 다 안 익어도 된다.
4. 향신료가 남아있는 같은 냄비에 다진마늘 ½큰술, 양파, 피망, 월계수잎을 넣고 향을 내며 볶다가 쌀을 넣어 투명해질 때까지 5분 가량 볶는다. 쌀알이 투명해지면 토마토홀, 맥주, 고체형 치킨스톡을 붓고 뚜껑없이 한 소끔 끓인다.
5. 쌀이 반 정도 익고 맥주의 알코올이 날라가면 물을 넣고 잘 섞은 뒤 닭다리를 올려 뚜껑을 닫아 20분 가량 약불에서 뭉근히 끓인다. 쌀이 다 익기 전에 바닥에 눌러 붙지 않도록 중간 중간 체크해가며 바닥을 젓거나 물을 더한다. 모자란 간은 소금, 후춧가루로 더한다. 국물이 완전히 졸아들고 밥이 부드럽게 다 익으면 불을 끄고 뚜껑을 닫은 채 5분간 뜸을 들인다.
6. 밥과 닭고기를 보게 좋게 접시에 담고 고수를 올려낸다.

쿠바식 검은콩(3~4인분 기준)

재료 : 마른 검은콩 200g, 양파 ⅓개, 고수 줄기 부분 5대, 쿠민·오레가노·설탕·올리브유·화이트와인비네거(현미식초 등으로 대체 가능) 1작은술씩, 소금 2작은술, 물 5컵, 후춧가루 약간

1. 검은콩은 깨끗이 씻어 충분한 양의 물에 넣어 3시간~하룻밤 불린다. 빨리 불리고 싶으면 베이킹소다 1작은술을 더하면 3시간이면 충분하다.
2. 양파는 잘게 다진다.
3. 냄비에 물 5컵과 불린 검은콩, 다진양파, 고수줄기, 쿠민, 오레가노, 설탕, 올리브유, 화이트와인비네거를 넣고 뚜껑을 닫아 중약불에서 1시간 30분 가량 끓인다. 중간에 물이 다 졸아들면 더 부어가며 콩이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끓인다.
4. 콩이 부드럽게 익고 국물이 졸아들면 소금으로 간한 뒤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아 5분간 뜸을 들인다.
5. 접시에 담고 후춧가루를 뿌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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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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