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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학생이 되어서 학교로 가는 길은 참 설렜다.
 오랜만에 학생이 되어서 학교로 가는 길은 참 설렜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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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던 일도 많던 비좁던 내 하루 
꾸지람과 잔소리에 익숙해진 우리들 

어른이 빨리 되고 싶던 
고등학교 그 시절엔 

친구들 모여서 여행도 가고 
공부도 좋지만 놀고 싶었죠 

그때가 좋을 때다는 말씀 
이젠 알 것 같아요

- 이장우, '청춘예찬' 노랫말 중에서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즐거웠었나? 실로 오랜만에 학생이 되었다. 등굣길이 참 설렜다.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가방 속에서 필통이 달그락거렸다. 그러나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반편성 배치고사(Level Test)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집주인 에드가 할아버지에게 시험 때문에 걱정된다고 했더니 별거 아니라고 그냥 즐기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시험을 즐겨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시험은 언제나 두려운 존재다.

매주 월요일은 새로운 강좌가 시작되는 날이다. 나와 같은 시기에 어학원에 등록한 학생들이 레벨 테스트를 받기 위해 강의실에 모여있었다. 여름 성수기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나이도, 국적도 정말 다양했다. 테스트를 하기 전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오리엔테이션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아주 쉬운 단어만 사용해서 중요한 내용을 전달했다. 쉽게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레벨 테스트 전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레벨 테스트 전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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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그 흔한 토익 공부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긴장을 많이 했다. 먼저 어휘력 테스트 시험이 있었다. 객관식 시험에 최적화된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내용을 정확히 몰라도 답은 맞출 수 있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그리고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썼다. 고등학교 입학사정관 업무를 하면서 지금껏 자기소개서를 수천 장을 읽고 채점했는데, 내가 직접 쓰려니 쉽지가 않았다. 초등학생들이 사용할 법한 문장으로 글을 이어갔다. 내가 얼마나 영어를 못하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러다가 초등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수가 생각보다 높아서 놀랐다. 심지어 같은 줄에 앉은 학생들 중에 내가 제일 높았다. 노란 머리 외국인보다 내가 높다니. 또 걱정이 시작됐다. 이러다가 너무 상급반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었다. 사실 기초반에 가면 쉽게 배울 수 있으니 좋을 테고,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걱정만 하는 내가 참 한심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마주 앉아 간단한 대화를 하는 말하기 시험이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늘 영어로 이야기를 해왔기에 아무래도 작문 시험보다는 나았다. 어쩌다 이곳 몰타까지 오게 됐는지 설명했는데, 앞에 앉은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어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는 그동안 영어로 자주 말했던 내용이라서 내가 생각해도 조금 유창하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반편성 배치고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상급반도 아니고 기초반도 아닌 intermediate(중급반)였다. 중급반이라곤 해도 어학원은 하급반 비율이 높아서 실제로는 꽤 수준이 높은 반이었다. 2개월 동안 수업 중에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그렇게 나의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5개 국어' 구사하는 프로레슬링 챔피언 선생님

프란체스코는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학연수 초반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선생님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첫 시간에 먼저 자기소개를 했는데, 같은 반 모든 학생이 첫 시간인 것은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기존에 계속 공부하던 학생들이었고 나머지 절반 정도가 나처럼 첫 시간이었다. 주 단위로 수강 신청을 하기 때문에 학생마다 어학연수 기간이 달라 어쩔 수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이기 마련인데, 프란체스코가 워낙 웃겨서 어색할 틈이 없었다. 첫날인데도 수업 내내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학생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웃으면서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위계가 없었다. 외국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이후 두 달 동안 몇 명의 선생님을 더 만났지만, 비슷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말하고 있을 때는 조용히 하라'는 스코틀랜드 선생님도 있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는 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호불호도 명확하게 갈렸다. 너무 나댄다는 것이 이유였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역시, 세상 어디나 교무실 분위기는 같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몰타 프로레슬링 챔피언 선생님 프란체스코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몰타 프로레슬링 챔피언 선생님 프란체스코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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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는 능력이 참 많은 사람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그는 어찌 보면 허당 같은데, 알고 보면 5개 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몰타에서 영어 강사를 하기 전에는 프랑스에서 불어 통번역 일을 했단다. 영어, 불어, 몰타어, 이탈리아어, 알제리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독일어와 러시아어도 배우는 중이라고 하니 지금껏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유럽 언어가 대부분 비슷해서 배우기가 쉽다는 말을 듣긴 했었다. 하지만 어학원에서 스위스의 독일 파트에 사는 친구와 프랑스 파트에 사는 친구가 서로 말이 잘 안 통했던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겨우 영어 하나를 배우는 데도 이렇게 힘든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심지어 프란치스코는 나보다 어렸다.

그뿐만 아니라 프란체스코는 몰타 프로레슬링(PWM : Pro Wrestling Malta) 현 챔피언이었다. 영화 <반칙왕>의 주인공 임대호가 내 앞에 실제로 있었다. 프로레슬링이라니.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그의 멋진 경기 영상을 직접 보고 나서야 환호성이 터졌다.

그는 프로레슬러답게 온몸에 문신도 많았다. 한 달 뒤에 그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낮보다 밤에 훨씬 유명한 그야말로 슈퍼스타였다. 관중들은 프란체스코를 '챔피언 돈(DON)'이라 불렀다.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내 삶을 돌아보니 그가 참 부러웠다.

프란체스코는 같은 교사로서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수업을 시작하면 언제나 두서없이 장난치고 농담을 했다. 한참 웃고 떠들다 보면 그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날 배워야 하는 문장이었다. '이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되나?' 무릎을 쳤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학연수를 하면서 외국 선생님들은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는지 자세히 보게 되어 참 좋았다.

나는 학생 입장에서 수업 내용도 필기를 했지만, 교사 입장에서 수업 참관록도 같이 썼다. 프란체스코는 매시간 수업 도입과 전개가 정말 훌륭했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타고난 능력자이거나, 수업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후자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했던 수업을 떠올리니 얼굴이 붉어졌다.

'몸으로 말해요' 신입생 환영회

매주 월요일 파쵸빌에서는 웰컴 파티가 열렸다.
 매주 월요일 파쵸빌에서는 웰컴 파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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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쵸빌은 수십 개의 클럽이 밀집해 있는 젊은이들의 거리다.
 파쵸빌은 수십 개의 클럽이 밀집해 있는 젊은이들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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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은 언제나 그 주에 새로 시작하는 학생들을 위한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물론 기존 학생들도 파티에 참여할 수 있다. 몰타의 파쵸빌(Pacheville)은 수십 개의 클럽이 밀집해 있는 젊은이들의 거리다. 내가 있던 어학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학원에서 매주 월요일에 파쵸빌에서 웰컴 파티를 열었다. 웰컴 파티는 당연히 미성년자들은 참여할 수 없다. 학원 측에서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맥주 2병을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제공했다. 그 이후는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두 모여서 인사를 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춤이라고 해봐야 나는 그저 고개를 살짝 흔들고, 어깨를 조금 으쓱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같은 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같이 춤을 추고 나면 훨씬 빨리 친해졌다. 공유할 거리가 있으니 이야기하기도 편했다. 교실에서는 서툰 영어 때문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웰컴 파티에서는 그런 걱정이 없었다.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어차피 대화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친해지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마주 보고 춤을 추며 몸으로 이야기하면 됐다.

파쵸빌은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외국 친구들은 모두 정말 잘 놀았다. 음주와 가무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 두 시간 서 있으면 다리도 아프고 슬슬 지겨워지던데 다른 친구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놀았다. 파쵸빌 때문에 몰타로 오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다.

수업에 지각하는 친구가 있으면 늘 첫 번째 질문은 "어제 파쵸빌 갔었니?"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두 번째 질문이 필요 없었다. 몰타는 영어 공부하기에도 좋지만, 신나게 놀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어학연수 기간을 숙취와 늦잠으로 채우지 않으려면 자기가 관리가 꼭 필요했다. 

토론 수업에서 나온 질문 '개고기 먹어봤니?'

토론 수업은 항상 '비정상회담' 같았다.
 토론 수업은 항상 '비정상회담' 같았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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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 수업 중 절반 이상은 토론 수업이다. 많이 듣고 많이 말하는 것만큼 좋은 외국어 공부는 없으니까. 게다가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 한 반에 모여 있기 때문에 수업 시간은 늘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같았다. 토론을 이어가면서 영어 실력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아주 넓어졌다.

토론 주제는 옷이나 음식 같은 가벼운 주제부터 역사와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토론을 하면서 매일매일 인식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꼭 영어가 아니더라도 어학연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참 많이 성장시켰다.

하지만 늘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빠짐없이 나오는 질문이 개고기였다. 정말 호기심으로 묻는 친구들도 있었고, 때로는 경멸적인 어조로 묻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후자는 어학원 선생님이었다. 나는 개고기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리고 요즘은 한국에서도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개고기를 대하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개를 식재료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한국인들이 비난받아야 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도 있었고 절대로 납득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토론이 시작되면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대체로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었다.

"개는 사랑스럽고 귀엽잖아."
"단백질은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으면 되잖아."
"(자기 집 강아지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떻게 먹을 수가 있니."

몰타의 전통 음식은 토끼 요리다. 슈퍼마켓에 가면 가죽이 벗겨진 토끼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두 눈을 뜬 채 붉은 살점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토끼를 보면 항상 거북했다. 낯선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몰타 사람들이 토끼를 먹는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며칠 전 나에게 토끼 요리를 맛있게 하는 집을 알려준 아일랜드에서 온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비난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개 먹는 거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니니?"
"개를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뭐예요? 사랑스럽다, 귀엽다 말고요."
"그게 말이 되니? 개는 우리 가족이야."
"당신이 반려견을 키우기 때문에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건가요? 제가 집에서 토끼를 키우면 몰타 사람들은 토끼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나요?"
"토끼는 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먹으려고 개를 키웠어요."

그렇게 주고받던 대화는 엉뚱한 곳에서 결판이 나버렸다.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알제리계 프랑스 친구 미셸(Michelle)이 말했다.

"다른 동물들은 먹어도 되는데 개만 안 된다는 건 이상해요. 알제리에서는 낙타고기를 먹어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에요."
"낙타를 먹어? 그걸 어떻게 먹니?"
"우리나라는 낙타가 많으니까 낙타를 먹어요. 몰타는 토끼가 많으니까 토끼를 먹겠죠. 한국은 개가 많으니까 개를 먹지 않았을까요?"
"너희들 정말 이상하구나. 거북해서 도저히 이야기를 못 하겠다. 그만하자."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비유럽 문화권에 대하여 문화적 우월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폭력이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와 독일에서 벌어진 테러 소식이 들렸다. 정말 슬펐다.

"미쳤어, 밤 12시에 배달하면 그 사람은 언제 자?"

몰타는 오후 서너 시가 되면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그런 와중에 낮에는 피에스타(낮잠시간)도 있다. 심지어 우체국이나 은행은 영업시간이 오후 1시까지다. 일요일에는 당연히 모든 가게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

"한국은 밤 10시까지는 해요. 일요일이라고 쉬는 곳은 거의 없어요.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아주 많아요. 밤 12시에도 치킨집에서 배달을 해줘요."

별 생각 없이 한 이야기인데 다들 정말 놀라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특히 스위스에서 온 엘리(Ellie)가 했던 첫마디가 지금도 생생하다.

"미쳤어. 밤 12시에 배달을 하면 그 사람은 언제 잠을 자?"

미쳤다. 맞는 말이었다. 그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또, 플로리안(Florian)은 스위스에서는 밤 12시 이후에 배달을 하는 것이 불법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다 받았을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시간이나 장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와 달랐다. 나였다면 분명히 밤에 일하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는 배달하는 사람의 건강을 먼저 떠올렸다.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남들 잘 때 같이 자고, 남들 놀 때 같이 놀면서 사는 것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가장 큰 공부였다. (왼쪽부터 성은, 플로리안, 광표, 세은)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가장 큰 공부였다. (왼쪽부터 성은, 플로리안, 광표, 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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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경쟁(Competition)이란 주제로 이어졌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밤 12시까지 공부해.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또 공부해. 한국에서는 하루 4시간 자면 승리하고, 5시간 자면 패배한다는 말이 있어. 일 년에 총 8번의 경쟁시험을 치는데 4번은 학교 안에서 경쟁하고, 4번은 국가 차원에서 경쟁해. 그렇게 3년을 보내면 모든 학생들이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단 한 번의 중요한 경쟁시험을 쳐."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는데 아까보다 더 난리가 났다. 딱 한 명, 일본에서 온 미사키(Misaky)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사교육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기를 잘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자코모(Ziacomo)와 요한나(Yohanna)가 마침 고등학생이었다. 이탈리아는 여름 방학이 3개월이라서 몰타로 어학연수를 온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오후 2시면 학교가 끝나. 방과 후에는 그냥 놀아.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오후 수업이 있긴 한데 그것도 특별활동이야."
"학교 다니면서 경쟁(Competition)시험 쳐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대학을 갈 때는 치려나?"
"나는 이번에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간단한 에세이만 하나 썼을 뿐이야."

몰타는 모든 교육이 무료였다. 심지어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이었다. 학생들이 대학교로 진학해서 힘들게 공부하기보다는 빨리 취업해서 즐기며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란다. 정부는 몰타대학교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도 지급한다고 했다. 교육 문제가 우리와는 정반대로 불거지고 있었다.

나라마다 경제적 상황이 다르고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마냥 옳고 우리나라의 교육이 모두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판단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교육의 힘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 사는 나라들을 보지 말고 처참한 후진국들을 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조금 억울했다. 우리나라는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저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살고 있는데, 그래서 우리의 삶은 저들보다 훨씬 더 많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세상 사람 다 똑같이 살아. 쓸데없는 생각 하지마."

분명히,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 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몰타, #어학연수,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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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저에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성실한 여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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