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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60킬로미터로 달려온 버스가 앞선 물체와 충돌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멈추서는 모습.
 시속 60킬로미터로 달려온 버스가 앞선 물체와 충돌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멈추서는 모습.
ⓒ 현대 상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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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안전벨트를 메 주세요.. 출발합니다."

40인승 대형버스 앞쪽 좌석에 자리 잡은 기자는 살짝 긴장됐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화성의 현대차 남양연구소 자동차 주행연습장. 기자를 태운 버스는 잠시후 한껏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 운전석 앞으로 멀리 소형 승용차 뒷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승용차 뒷 모습을 가상으로 만들어 놓은 물체였다. 그 물체를 기아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차인 모하비가 끌었다. 

버스 운전석의 속도계는 어느새 시속 60킬로미터까지 올랐다. 금세 기자 눈 앞으로 승용차 모형이 가깝게 다가왔다. 하지만 운전석의 현대차 연구원은 정지 페달을 밟지 않았다. 그리고 "타~탁~탁~"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차량 모형 앞 20여미터 앞에서 급정거를 시도했다.

어느새 달리던 버스는 속도를 한번 크게 줄더니, 재차 브레이크가 작동했다. 순간 기자의 몸도 약간 흔들렸고, 좌석 손잡이에 힘이 들어갔다. 충돌 직전 버스는 모형 차 뒤에 바로 섰다. 기자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긴급제동장치를 장착한 대형 버스가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승용차 모형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긴급제동장치를 장착한 대형 버스가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승용차 모형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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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주행도로 시험장에서 대형버스의 긴급제동장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승용차 뒷모습을 본떠 만든 물체를 SUV 차량이 끌고 가는 모습.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주행도로 시험장에서 대형버스의 긴급제동장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승용차 뒷모습을 본떠 만든 물체를 SUV 차량이 끌고 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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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동장치만 있었더라도...2019년부터 모든 버스등 장착 의무화 추진

이 버스를 세운 기술은 긴급제동장치(AEBS)다. 이 장치가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운전석쪽 카메라와 차 앞쪽의 레이더와 센서 등이 앞서 달리는 자동차를 인식하게 된다. 앞차의 모양과 거리 등을 판단해서 위험이 감지되면 스스로 차를 정지시키는 것.

최근 영동고속도로에서 수십여명의 사상자를 낸 버스 추돌사고에서 해당 버스가 이 장치를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전문가들은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 속도(당시 사고버스 속도는 시속 103킬로미터)로 달리는 차를 완벽하게 정지시키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이번처럼 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김장섭 현대상용차 상용선행전자개발팀 연구원은 "해당 버스에 AEBS가 장착돼 있었다면, 적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현대차의 AEBS 기술은 시속 15㎞ 이상 주행 시 작동한다"면서 "내 차의 속도가 앞차보다 빨라 차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면 1차적으로 빛과 소리로 운전자에게 경고를 알리게 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1차 경고에도 충돌 위험이 계속되면 감속에 들어가며, 충돌 직전에 이르면 차가 스스로 완전히 멈춰선다"면서 "만약 1.4초 이내에 충돌이 일어날 상황이라면 차가 스스로 급제동을 건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이미 이같은 장치를 넣은 버스를 출시하고 있다.

문제는 대형버스와 트럭 등에 이같은 장치를 아직 의무적으로 달지 않아도 된다는 점. 대신 이번 사고로 대형차의 긴급제동장치 등 안전장치 장착 의무화가 적극 추진되고 있는 정도다. 유럽에선 이미 작년부터 신차에 대해 긴급제동장치 장착을 의무화했고, 미국도 모든 대형차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17년 신차를 중심으로 버스와 특수차 등에 AEBS와 차선이탈경고장치(LDWS) 등의 장착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모든 버스 등에 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거대한 트럭을 마구 뒤흔들다

경기도 화성의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상용차 내구실험장면. 대형트럭인 엑시언트가 다양한 도로상황에 맞춰 테스트를 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상용차 내구실험장면. 대형트럭인 엑시언트가 다양한 도로상황에 맞춰 테스트를 하고 있다.
ⓒ 현대 상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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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상용부문은 이날 대형차 안전기술과 함께 엔진과 내구 실험실 등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상용차 연구 실험실은 국내 최대 규모다. 디젤엔진 실험실에선 수십여 연구원들이 6.3리터급 대형 엔진을 직접 작동시키면서 내구성을 체크하고 있었다. 또 대형 버스와 차량들을 직접 가져다 놓고 실제 주행상황에 따라 차량 내구성 실험을 직접 하기도 했다.

특히 기자의 눈에 띄었던 곳은 차량 내구실험실. 대형 트럭인 엑시언트가 가상의 도로위를 달리는 실험이었다. 거대한 트럭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자신의 몸을 비틀어댔다. 트럭 특성상 불규칙한 오프로드 상태에서 차량이 어떻게 움직이며, 균형을 잡고, 차량 각 부품들이 얼마나 잘 작동하면서 견뎌내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나천희 상용연비개발팀장(책임연구원)은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더 가혹한 환경을 가정해서 내구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벤츠를 비롯해 볼보, 만 등 유럽 대형 트럭 등에 비교해도 내구성이나 연료효율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 올 3월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화물차 상대로 실차 연비비교평가에서 현대차의 대형트럭인 엑시언트가 1위를 차지했다. 높은 연비 덕분에 출시 3년만에 1만대가 팔려나갔다. 나 팀장은 "엑시언트의 엘(L)엔진의 경우 중저속 구간에서 토크를 높이는 등 성능을 크게 개선했다"면서 "이 때문에 연비가 좋아져, 운행비용에 민감한 대형 트럭 고객들의 호응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임러, 볼보 등 버스- 트럭 강자에 도전장 내밀다

물론 유럽의 다임러와 스카니아, 볼보, 만(MAN) 등 100년이상 상용차를 만들어온 회사들과의 격차는 여전하다. 현대기아차가 승용부문에서 글로벌 톱 5에 들어갔지만, 상용차에선 10위권 밖에 있다. 유재영 현대 상용사업본부장(전무)은 "현대 상용차의 역사가 아직 짧다"면서 "우리가 독자개발한 상용차 엔진 등은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없는 기술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본부장은 이어 "국내 뿐 아니라 중국과 터키 등에서도 버스와 트럭 등을 현지에 맞게 생산해 판매할 것"이라며 "올해 10만5000대를 판매하고 오는 2020년엔 23만대 규모로 늘려 글로벌 5위권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유 본부장의 다짐이 현실화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한다. 세계 상용차 시장은 일반 승용시장과 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 상용차 연구진들은 나름대로 자신감에 차 있었다.

현대차 역시 향후 상용차 연구개발를 비롯해 판매와 서비스 등에 투자를 크게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날 기자를 맞이한 연구동에 내 걸린 현대 상용차의 구호는 '이제 상용이다'였다. 그들의 도전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현대차 상용은 자체 개발한 트럭 3종, 버스 6종의 라인업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유럽형 상용차 쏠라티, 중소형 트럭 마이티, 대형트럭 엑시언트.
 현대차 상용은 자체 개발한 트럭 3종, 버스 6종의 라인업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유럽형 상용차 쏠라티, 중소형 트럭 마이티, 대형트럭 엑시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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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 상용차, #A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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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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