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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파밀리아 론칼 알베르게는 시설이 좋고 다행이 심하게 코고는 사람이 없어 잠을 푹 잤다.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하면 걷는 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새벽에 잠을 깨어 시계를 보니 4시다. 순례길을 걸으며 거의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난다. 여기서는 TV도 보지 않고 보통 10시 정도면 잠이 들기 때문이다.

조용히 일어나 식당으로 가서 일기를 썼다. 새벽 5시 30분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섰다. 조용한 거리를 혼자 산책한다. 알베르게 앞 성당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도로를 조금 걸어 언덕 위 자비의 성모마리아 성당으로 갔다. 여기에서 보면 팜플로나 야경을 볼 수 있다. 여명이 밝아 오는 도시 풍경이 아름답다.

야경은 삼각대가 있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배낭 무게 때문에 가져올 수 없었다.  알베르게로 돌아가 배낭을 정리하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뒤 출발한다. 마을을 벗어나니 바로 밀밭길이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밀밭이 싱그럽다. 스페인의 들판은 거의 지평선이다. 이 지평선에 밀밭, 사료용 풀을 제배한다. 이렇게 규모가 큰 농사를 짓고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아담한 마을에 살면서 경쟁보다 서로 돕는 모습이 더 자연스레 생겨난 것 같다.

스페인 사람들은 만나면 포옹을 하고 얼굴을 어긋 맞대며 키스를 한다. 순례길을 마치고 찾은 산티아고의 한인 민박집 아주머니도 스페인에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아이들 학교 보내고, 이웃과 서로 경쟁하지 않으며 사는 게 편하고 좋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끝없는 밀밭길을 걸으며 여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다
시수르 메노르의 새벽 풍경 ⓒ 이홍로
언덕위 성당에서 바라본 팜플로나 새벽 풍경 ⓒ 이홍로
끝없이 펼쳐진 밀밭길 ⓒ 이홍로
밀밭길을 걷는 순례자들 ⓒ 이홍로
밀밭길을 걷는 순례자들 ⓒ 이홍로
사리키에기 성당 ⓒ 이홍로
1시간 정도 밀밭길을 걸으니 사리키에기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있는 성당에서는 순례자 여권(크리엔시알)에 도장도 찍어 준다. 성당 옆에는 식수대가 있어 물도 보충하였다. 다시 밀밭길이다. 왼쪽 페르돈봉에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데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도 소리가 들린다. 산 아래에는 아름다운 집들이 있는데 풍력발전기 소음은 없는지 괜히 걱정한다.

언덕을 힘겹게 올라간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모자가 날아가 버린다. 페르돈봉에 오르니 순례자 형상을 만든 조형물이 있다. 순례자들은 여기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잠시 쉬어 간다. 맞은편 도로가 트럭에서는 커피, 빵 과일을 놓고 순례자들에게 팔고 있다. 우린 여기에서 커피 한 잔씩 사 가지고 아래 바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빵 등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였다.

길 옆에서 휴식을 취하며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는 걷는 순례자들이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지나간다. 우리가 양파 와인을 먹는 모습을 보고 그런가 보다.

길이 험한 내리막길을 지나니 길 왼쪽에 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사진을 찍고 내려가면서 한국인 대학생 셋을 만났다. 한 학생은 심하게 다리를 절둑이며 걷는데 "괜찮느냐?"고 물으니 "참고 걸을 만하다."고 한다. 이제 초반인데 체력 관리를 잘 해야 800km 완주를 할 수 있다.

페르돈봉에서 1시간 정도 걸으니 우테르가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 스페인 마을들은 도로가의 집들 앞에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우리는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게트빵에 하몬, 잼, 버터 등을 넣어 점심을 먹는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이렇게 점심을 해결한다.
밀밭 넘어로 팜플로나가 보인다. ⓒ 이홍로
산 위의 풍력발전소 ⓒ 이홍로
순례자 조형물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 ⓒ 이홍로
푸엔테 라 레니나로 가는 길 ⓒ 이홍로
끝없이 펼쳐진 유채밭 ⓒ 이홍로
손주와 함께 멋진 조각을 하는 할아버지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걷는 길은 기분이 좋다. 그러나 무거운 배낭 때문에 어깨는 아프고, 며칠 전부터 오른쪽 발목이 아파 걷는 것이 고달프기도 하다. 특히 점심 후 뜨거운 햇살 아래 걸을 때가 그렇다.

1시간 정도 걸으니 오바노스 마을이 나온다. 성당 앞에 할아버지와 손주가 순례자 목상을 조각하고 있다. 손주는 목상을 잡아 주고 할아버지는 조각칼로 조각을 하신다. 조각상은 거의 완성된 모습이다. 순례자상을 조각하면서 신앙심이 더 깊어지기도 하겠고, 이것을 보면서 걷는 순례자들을 생각하며 즐겁게 조각상을 만드실 것이다.

이곳의 성당은 '세례자 산 후안 성당'으로 성 야고보의 상이 있는 곳이다. 오늘은 여기에서 2Km 정도 더 걸어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만 걸을 계획이다. 멀리 보이는 마을이 레이나이다. 입구의 아름다운 성당이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걸으며 알베르게를 찾아 보기로 했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니 여기도 아름다운 성당이 나온다. 한 마을에 왜이리 많은 성당이 있을까? 성당에 다니는 친구에게 물으니 정확한 대답은 아닌지 모르지만 "봉건 시대 지방 영주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사람들에게 확인시키고,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성당을 많이 지었다."라고 답한다.

조금 더 걸으니 아르가강이 나오고 아름다운 레이나 다리가 나타났다. 마을의 끝까지 와 버린 것이다. 도로 맞은편을 보니 알베르게 안내 표지가 보인다.  (R.P. santiago apostol Albergue) 언덕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되는 알베르게지만 시설이 좋고, 저녁도 정말 맛있었고, 정다운 사람들도 만난 알베르게이다.

2인 1실 침대여서 친구와 둘이서 편하게 쉬었다. 지금까지는 수십명이 함께 자는 침대였는데 오랜만에 호텔같은 알베르게에서 쉰다. 샤워를 하고 빨래도 한 뒤 잔디밭 벤치에 앉아 일기를 쓴다. 친구는 책을 읽고 여유로운 오후가 너무 즐겁다. 저녁 배식은 7시부터라고 한다. 잠시 쉬었다가 6시에 시내에 나갔다 오기로 한다. 빛이 좋을 때 아름다운 레이나 다리도 찍고, 시내 마트에서 내일 먹을 빵과 과일도 사와야 된다.
성당 앞에 손주와 함께 순례자 목상을 만드는 할아버지 ⓒ 이홍로
광장과 성당 ⓒ 이홍로
푸엔테 라 레이나 시내 ⓒ 이홍로
언덕에서 바라본 푸엔테 라 레이나 풍경 ⓒ 이홍로
아르가강의 레이나 다리 ⓒ 이홍로
아르가강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례자들 ⓒ 이홍로
푸엔테 라 레이나 시내의 꽃가게 ⓒ 이홍로
석양의 레이나 다리 밑은 연인들의 휴식터

오후 6시 알베르게에서 카메라만 들고 레이나 시내로 산책을 간다. 오후 6시면 여기는 해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뜨거운 햇살이 있는 오후다. 8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으니 말이다. 언덕을 내려가며 바라보는 레이나 시내가 아름답다.

오래된 건물, 아르가강 위의 아름다운 레이나 다리.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다. 강을 건너 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다리 아래 잔디밭에는 젊은 연인들이 선탠을 하며 책을 읽고 있다.  우리도 여유를 부리며 잔디밭에 눕고 싶었지만 슈퍼에서 내일 점심 거리를 사가지고 저녁 7시까지 알베르게에 돌아가야 저녁을 먹을 수 있다.

마트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오는데, 작은 꽃 가게가 보인다. 우리나라 꽃 가게처럼 비싼 꽃은 없지만 수수하고 편한 꽃 가게이다. 구경을 해도 괜찮은지 물으니 구경하라고 한다. 스페인의 주택들은 대부분 창에 작은 베란다가 있다. 이 베란다에 대부분의 집들이 빨간꽃을 가꾸고 있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오후 7시 알베르게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야채 샐러드, 파스타, 쇠고기 스테이크 등을 와인, 맥주와 같이 먹는데 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내 앞에는 독일 청년이 앉았고 그 옆에는 콧수염을 기른 미국인은 나보다 한 살 더 먹었는데 보기에는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내 옆자리에는 네덜란드인으로 70세인데 몸이 노인같지 않게 단단하다. 그분은 자전거로 순례길을 달리는데 2주간 달릴 예정이라고 한다. 게다가 알베르게 잔디밭에서 야영을 한단다. 또 한 팀도 잔디밭에서 야영을 하는데 그들은 젊은 커플이다. 그들은 식사도 직접 해 먹기 때문에 이 자리에 없다. 저녁도 잘 먹고 한 방에 2인 침대에서 모처럼 편하게 잠을 잤다.
태그:#산티아고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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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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