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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하다. 총선에서 참패한 박근혜 정부의 국면전환용 측면도 있는 것 같고,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앞두고 노조에 대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정부와 언론에서 연일 조선업 위기와 구조조정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김해연 경남미래발전연구소 소장이 밝힌 견해다.

경남도의원을 지낸 그는 2014년 7월 다시 작업복을 입고 조선소 노동자로 돌아갔다. 지난해 거제 고현에 '경남미래발전연구소'를 낸 김 소장은 "과연 조선산업이 위기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해연 경남미래발전연구소 소장(전 경남도의원).
 김해연 경남미래발전연구소 소장(전 경남도의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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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8일에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의 '빅3'가 당장 수주 가뭄에 시달리고 있지만, 기존 일감으로 최소 1~2년은 수주 없이도 버틸 수 있고,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소장은 지난 27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라슨'이 내놓은 조선사 수주 잔량 자료를 근거로 삼았다. 대우조선해양의 수주 잔량은 지난 3월말 기준 118척, 782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세계 조선소 가운데 압도적으로 가장 많았다는 것.

그는 "수주 잔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일감이 많다는 뜻으로,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며 "대우조선은 지난해 5조 원이 넘는 적자를 냈지만, 인력 감축과 자산 매각, 채권단 지원 등을 통해 올해 흑자로 실적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클라슨 자료에 의하면, 수주잔량 2위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3위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4위는 현대삼호중공업, 6위는 현대미포조선소, 성동조선해양은 16위, STX조선은 21위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전세계 조선물량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에 구조조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폐합을 통해 과감하게 손을 대자니 나중에 조선업 호황이 왔을 때 중국과 일본 업체들에 전 세계 시장을 속수무책으로 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총선 전에는 아무 말이 없더니"

김해연 소장은 2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나눈 대화를 통해 "정부고 언론이고 4·13총선 전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조선업 위기니 구조조정이니 한다"며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총선에서 참패한 것에 대한 분풀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거제의 경우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했지만, 야당 후보와 730여 표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많이 야당을 투표했다는 생각에 분풀이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이번에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들고 나온 것은 미뤄놓았던 숙제를 총선 뒤에 치려고 한다는 생각도 든다"고도 말했다. 그는 "총선 전에는 노동계가 이런 거 저런 거 하자고 제안했는데, 정부와 경영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총선 뒤에 구조조정 주장이 집중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사실상 정부 소유이다. 김 소장은 "산업은행이 작년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실사를 했다. 그래서 회사도 '자연감소' 등으로 인력 감축안을 만들었고, 그 정도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최근에는 그 분위기가 아니다. 실사하면서 부실을 떨어내고 4조 2000억 원을 지원했던 것"이라 주장했다.

조선업 구조조정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들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언론이 왜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정부에서 조선업 위기를 고조시키니까 당연히 따라가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구 하나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며 "그것은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조선업 위기에 대한 대처를 미리 세우자는 주장은 노동계에서 먼저 나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정부와 경영진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사업장까지 포함하는 '조선산업노조연대'를 결성했고, 이들은 집회를 열거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왔다.

김해연 소장은 "해운업은 모르겠고, 조선업 쪽에서는 '조선산업노조연대' 등 여러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 노동계는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노동자까지 포함하는 '총고용보장'을 요구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그런데 지금 조성되고 있는 위기 국면에서는 총 고용 보장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외국선주사와 계약 방식 달라져, 크레임 걸어 '곤혹'

거제 대우조선해양.
 거제 대우조선해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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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선업 위기가 아니냐는 물음에 김 소장은 "여러가지 요인을 살펴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해양플랜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짚었다.

"옛날과 요즘은 계약 방식이 다르다. 이전에는 외국선주사가 계약하면 계약금의 10%를 주었고, 중간에 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도크 설계에 착수하면 10%를 주었으며, 자재 구매를 위해 10%를 주었다. 그렇게 해서 인도 전까지 80% 정도를 조선소가 선주로부터 받았고, 나머지 20% 정도는 인도를 하고 나면 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인도할 때까지 10%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를 거의 다 만들어 가면 꼬투리를 잡거나 해서 크레임을 걸면서 돈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어느 회사 부품을 쓸 것인지도 선주사가 정하는데, 그 부품 납품이 늦어지면 전체 공정에 차질이 생기고, 결국 회사한테 부담이 되는 것이다."

김 소장은 "이런 계약 방식은 조선업체 간에 과당경쟁에서 나온 결과"라 지적했다. 중국 조선업체의 계약 방식과 비교해서 설명했다.

"중국 조선소는 배를 만들어 인도하고 나서 돈을 받는 방식으로 계약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 업체가 선주사와 그렇게 계약하더라도 정부가 보장을 해주는 것이다. '이란'에서 연 2조 원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중국 업체와 그런 계약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돈이 아니라 이란에서 석유를 받는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란 프로젝트가 우리한테 올 수 없다."

김 소장은 "조선업 위기는 유가 문제 때문"이라 했다. 그는 "유가가 너무 하락하니까 선주사들이 배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해운업도 침체한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실어 나를 물동량이 줄어드는데 누가 배를 만들겠느냐"고 했다.

낙하산 인사 문제, '부실 감춰 보너스 챙기기'

김해연 소장은 조선업 위기 원인의 하나로 '낙하산 인사'를 꼽았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이명박 정부 때 전임 사장은 전문 경영인이 아니라 낙하산이었고, 다른 임직원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했다.

"그 때는 수주 실적이 어느 정도냐가 임직원 선임의 기준이 됐다. 그렇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덤핑 계약을 해주고, 수주 수치만 높여 놓았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부담으로 온 것이다. 그때 산업은행도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책임 방기했다.

임직원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심했고, 지금도 많이 와 있다. 감사 등에 있어 '비상임' 직함을 쓰기도 한다. 비상임이다 보니 책임은 없다. 은행 근무 경력자들이 많이 온다. 우리는 그들을 '공수부대'라 표현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런 사람들이 와서 '개판'을 친 것이다."

김해연 소장은 "낙하산 임직원들은 조선소에 대해 실제 모른다. 직함만 갖고 왔다가 부실이 나더라도 그것이 공개되면 보너스를 받지 못하니까 숨기는 것"이라 주장했다.

노동 현장 분위기는 어떨까? 그는 "노동자들은 상당히 화가 많이 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와 경영진들이 잘못하거나 실수해서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라며 "노동자들은 일한 책임 밖에 없다. 우리는 결정권자도 아니고 일하기에 바빴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니까 화가 나는 것"이라 말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 누구라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문제가 생기면 전임 사장도 그때는 괜찮다고 하다가 그만 두고 나가버리면 끝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임 사장은 한 해 보너스를 수억 원이나 받아갔으니 분통이 터진다"고도 말했다. 김해연 소장은 조선업 성장의 '미래'를 강조했다.

"문제는 회사의 장래연속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손쉽게 사람만 자르면 될 일이 아니다. 복잡하다. 처음에는 경영진이 해당되지만 그 뒤에는 기술자들이 해당된다. 해양플랜트는 우리가 세계적으로 독주하고 있는데 잠시 어렵다고 해서 없애면 안된다.

기술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선주가 회사를 지명할 때 웬만한 기술이 없으면 실행하지 못한다. 조선업은 중소업체나 협력업체도 중요하다. 만약에 중소·협력업체가 도산하면 나중에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태그:#김해연, #경남미래발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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