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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2일 오후 2시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을 발표할 예정이다. 시국선언과 촛불집회 등으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2일 오후 2시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을 발표할 예정이다. 시국선언과 촛불집회 등으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국내 현안은 떠넘기고 13일부터는 미국방문길에 오른다. 그 사이 어떤 사달이 나도 모른다는 '아몰랑' 자세일까. 

이러니 야권에선 아버지는 군사쿠데타, 딸은 역사쿠데타냐 비판여론이 높다. 민주정부 10년간 역사교과서 문제로 틈만 나면 정권을 흔들어대던 보수세력이 마침내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쿠데타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은 물론, SNS 상에서는 욕설도 난무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말이 없다. 별스레 여기지 않는 눈치다.

대신 싸워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인가.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위 위원인 조전혁 전 의원은 "야당이 '군사 쿠데타의 딸이 역사 쿠데타 한다'고 폄훼했는데 역사 쿠데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한 역사'라고 했다. 그런 사관이 검인정 교과서에 오롯이 녹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필경 사자 명예훼손 감이다. 이대로 가면 이념전쟁에 기반한 진영싸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막말로 진흙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왜 박 대통령은 일언반구 말이 없을까.

몇몇 언론은 박 대통령이 오는 16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역사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면승부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대로 아예 역사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그냥 넘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까 적이 궁금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나라는 북한 등 소수 독재국가들이다.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OECD 국가들은 검인정을 넘어 자율로 교과서를 쓴다. 입만 열면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창의적 인재 상을 요구하는 박근혜 정부가 단일 교과서를 주장하며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별로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다. 더군다나 국정 교과서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제도 아닌가. 

그럼에도 굳이 현 시점에 박 대통령이 기어코 역사전쟁을 하겠다고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일각에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반민족 행위 그리고 독재의 흔적 지우기가 그 이유일 거라고 설파한다. 과연 그뿐일까.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명예회복 때문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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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한 지 넉 달도 되지 않은 지난 2013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교육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9월에는 "무엇보다 학생들이 보게 될 역사교과서에 역사적 사실 관계가 잘못 기술되는 일이 없어야 하고 교과서가 이념논쟁의 장이 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까지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할 때마다 논란이 반복됐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검토해 더 이상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지난해 2월에는 '교육·문화 분야 업무보고'에서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많은 사실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이 있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교육부는 이와 같은 문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인 역사 교과서 개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기로 작정하고 쏟아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교육부는 지난해 9월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검토'라는 토론회를 열어 찬반논쟁을 벌였는데, 7명의 토론자 가운데 무려 5명을 국정화에 찬성하는 토론자로 배치해 국정화를 위한 명분 쌓기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취임 후 임기 내내 역사교과서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하는 이유는 앞서 지적한 대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회복 차원일 수 있다. 박 대통령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는 얘기다. 아버지의 위대한 산업화의 역사가 친일과 독재라는 너울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불명예라고 판단할 수 있으므로.

그러나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다. 산업화는 산업화대로, 친일과 독재는 그 자체로, 역사로 기록하고 후대가 평가할 일이다. 아무리 국정교과서로 바꾼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과 독재는 지워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헛수고란 얘기다. 차라리 아버지의 그릇된 역사로 희생된 이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편이 국민에게 박수 받는 길일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런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역사학계는 물론 시민사회, 대학생과 청소년들까지도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기어코 자신의 임기 안에 국정교과서를 관철하려고 한다. 

총선 6개월 앞으로... 이념전쟁 편 가르기는 선거전략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가 1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 간 4자 공개토론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최고위원(오른쪽)이 이날 회의에서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새정치연합, 교과서 국정화 반대 한 목소리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가 1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 간 4자 공개토론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최고위원(오른쪽)이 이날 회의에서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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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선거다. 묘하게도 12일은 내년 4월 총선을 정확히 6개월 앞둔 날이다. 선거를 딱 6개월 앞둔 시점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을 이념갈등의 늪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 편 가르고 싸우기 딱 좋은 이슈가 바로 이념전쟁이다.

진보-보수, 좌우 이념갈등이야말로 선거에서 표를 가르기 쉽고 이른바 종북논쟁을 일으켜야 보수결집으로 새누리당 표를 모으기가 좋다. 어떤 측면에서 이념전쟁은 손쉬운 선거전술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선거 때만 되면 간첩사건이 있었지만 민주정부 10년간 이른바 북풍은 먹히지 않았다. 북풍이 먹히지 않자 종북을 내세웠다. 종북을 앞세워 정당도 해산시키는 판에 무엇인들 못하리.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총선 때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저 멀리 대구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보수의 새로운 깃발이 되고자 몸부림을 치지만 그조차도 밟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선거가 다가오는 해엔 늘 복잡한 정치계산이 있다. 이번에도 그렇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NLL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보수진영은 또 다시 이념전쟁의 늪으로 야권 전체를 끌어들이려는 것인지 모른다.

그럼 어떻게 싸워야 할까. 종북 프레임 대 친일 프레임. 우리 국민의 선택은 어디로 귀결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친일에 찬성하는 국민은 없다. 영화 <암살>에 천만 관객이 몰리는 이유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아베의 무성의한 과거사 반성에 비토했다.

매번 그랬듯이 이번에도 보수진영이 종북 프레임으로 선거전략을 짠다면 야권은 친일 프레임으로 맞서야 한다. 우선 어느 모임에서 "차라리 일본교과서가 양호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의 문제로부터 출발해도 좋다.

국사학자의 90%가 친북좌경이라고 밝힌, 검찰·공무원·새누리당에도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고 주장하는, 그런 사람을 놓고 한국사회의 미래를 논할 수 있는 것인가 묻고 따져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여중생들이 주도했던 것처럼 자발적 시민들이 역사 앞에 나서도록 길을 터야 한다. 그래야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박근혜 정부의 정치행위를 견제할 수 있다. 그것이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정치 도의다.


태그:#역사쿠데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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